학교이야기

함께 천천히 걷는 길

글. 장금희 선생님(서울송천초등학교)

새 학년이 시작되면 나의 부끄럼 많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본 기억도 없거니와 교과서를 읽는 순서라도 돌아오면 가슴은 방망이질 치고, 다 읽은 후 자리에 앉으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던 유년의 기억은 ‘아픔’으로 새겨져 있다.

그런 탓인지 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에게 마음이 간다.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다수의 아이들 속에서 생활하다보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명랑하고 씩씩해서 제 몫의 사랑을 찾는 아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느 누구라도 한 학급의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싶은 욕구, 더 나아가 학급의 중심이 되고 싶은 욕구가 없겠는가? 단지 표현이 부족해서 기회를 얻지 못한 것뿐이겠지. 개인적인 성격 차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존재감은 느끼고 싶을 테니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돕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올해도 나의 관심 속에 들어온 몇몇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비교적 빨리 적응한 상준(가명)이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처음 하는 일은 시업식 날 등교해서 처음 앉아야 할 자리를 정해 이름표를 세워 놓는 일이다. 또한 좀 더 편안하게 친구를 만들어가라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짝을 정해서 말이다. 자리를 정해 이름표를 놓아두면 낯선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가 숨어들 듯이 앉을 수 있어서 어디에 앉아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겪어야 할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올 시업식 날에도, 일찍 등교한 아이들이 이름표를 찾아 자리에 앉았고 나중에 온 아이들도 자기 이름표를 찾아 앉았기 때문에 별다른 소란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씩씩한 남자 아이가 ‘남자끼리 앉아서 좋아요.’하고 소리치자 다른 아이들 표정도 밝아졌다.

다음으로 하는 일은 기다리며 관찰하는 일이다. 상준이는 체격이 큰 남자 아이다. 새 학년이 시작된 후 2주 동안 발표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수업 시간엔 반쯤 비스듬히 앉아서 교사와 눈도 잘 맞추지 못하였다. 말수가 적은 남학생일까, 아니면 아직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가끔 짝과 장난을 치는 거로 봐서는 아주 말이 없는 아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은 조금씩 말 걸기와 이름 알리기이다. 3월 학부모 총회 날, 공개 수업이 있었다. 학부모에게 있어 이 공개 수업은 일 년을 가늠하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기에 다른 날보다 더욱 긴장된다. 공개수업은 ‘봄에 피는 꽃’을 주제로 하였는데, 꽃 사진을 보여 주면서 어느 꽃이 마음에 드는지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서 모두 발표할거라 기대했다. 많은 아이들이 신 나게 발표하였다. 그런데 딱 4명의 아이만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 중에 상준이도 끼어 있었다. 난 4명의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서 꽃 사진을 가리키며 ‘ ○○야, 넌 어느 꽃이 마음에 드니?’라고 일일이 물어보았다. 교사의 집요한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은 소리로 ‘애기똥풀이오“, ’복수초요. ‘개나리요.’, ‘할미꽃이오.’라고 들릴 듯 말 듯 옹알거렸다. 작은 소리로 뱉은 대답을 난 큰 소리로 외쳤다. “○○는 애기똥풀을 좋아한대요.” 와아 웃음이 터졌고, 자기 이름이 불린 그 아이는 멋쩍은 듯 씨익 웃었다.

공개 수업 후 상준이 어머니와의 상담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전하는 상준이의 성격은 밝고 명랑하며 집에서는 아빠와 장난도 잘 치는 씩씩한 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학부모 공개수업 때의 느낌을 다소 들뜬 목소리로 전하셨다. “공개 수업 때 우리 상준이한테 말 걸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그 날 집에 가서 상준이 아빠한테 올해는 정말 잘 지낼 것 같다고 자랑했어요. 작년에 상준이는 별 말썽 일으키지 않고 자기 할 일 잘 하니까 야단맞을 일도 없는 아이라서 이름 한 번 불리지 않았어요. 마치 투명 인간처럼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상준이가 스스로 말문을 열었다. 하루에 발표를 세 번이나 한 것이었다. 알림장에 ‘오늘 상준이가 스스로 손을 들고 발표했어요. 자세한 것은 상준이와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써 보냈다. 교사에게 호의적인 어머니의 격려가 큰 역할을 했을 거라 짐작한다. 나의 메모를 보신 어머니의 답장은 이러했다. ‘메모 써 주셔서 아직까지도 가슴이 벅차요. 상준이 칭찬 많이 해줬습니다. 뭐라 감사드려야할지 몰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변화 있도록 집에서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상준이는 그 후로 꾸준히 발표도 하고, 모둠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역할놀이에서는 개그맨처럼 웃기는 말투와 행동으로 우리 반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또, 2학년 때는 뚱뚱하다고 놀림 받았던 자신을 이제는 ‘티라노사우르스’라고 내세울 정도로 자존감이 회복된 듯하다.

이제 남은 세 명의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조금씩 다가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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