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프로듀스 101’ 교육학적 읽기

프로듀스 101은 우리 교육의 지금이다

글. 이형빈 팀장(강원도교육연구원 정책연구팀)

중고등학생들에게 올해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 가장 ‘핫’한 프로그램을 고르라면 대부분 <프로듀스 101>을 고를 것이다. 이는 걸그룹 지망생(소속사 소속 연습생) 101명이 출현하여 노래, 춤 등 각자의 기능을 보이고 시청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최종 11명을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는 최종 선발된 11명이 ‘IOI’라는 걸그룹을 결성하여 각종 TV 프로그램과 CF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방영 초기부터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 걸그룹’을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성한다는 취지에 따라 매회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투표에 참여를 했다. 하지만 특정인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악마의 편집’ 논란, 나이 어린 연습생들에게 부당한 조건을 강요한다는 ‘노예 계약’ 논란 등 부정적인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우리 학생들에게 알게 모르게 미치게 될 영향이다.

Pick me up – 나의 꿈을 뽑아줘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너와 나 꿈을 나눌 이 순간. pick me, pick me, pick me up!”

이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노래가 ‘Pick me up’이라는 노래이다. ‘pick me, pick me, pick me up’이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이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의 체육대회에서 이 노래가 응원가로 흘러나왔고, 심지어 지난 국회의원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유세차량에서 ‘pick me, pick me 새누리’로 개사되어 길거리에 울려 퍼졌을 정도였다.

나이 어린 소년들이 무려 백 명이나 나와 섹시한 끼를 발산하며 “나를 뽑아줘!”를 외친다. ‘국민 프로듀서’로 호명된 시청자들은 표를 던지며 이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들은 “꿈을 꾸는 소녀들”이지만 이들의 꿈은 자신이 아닌 타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나이/성’에 의한 권력관계의 위계 속에 ‘어린 소녀’들은 ‘어른 남성’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끼를 부려야 하며,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소녀들의 눈물’로 포장하여 증명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시청자들에게 내면화되면서 젊은이의 ‘노오력’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헬조선’의 구조는 더욱 공고화된다. ‘꿈과 끼’를 키우는 주체는 ‘내’가 아닌 ‘타인의 선택’이다. 이 견고한 구조 앞에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이라는 구호는 얼마나 무기력한가.

석차(席次)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와 학교의 구조를 연상하게 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석차이다. ‘석차(席次)’라는 용어의 어원은 ‘좌석의 순서’인데, 이는 학생에 대한 상대평가의 결과 산출되는 성적의 서열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 일제 강점기 때, 그리고 해방 이후 일부 학교의 관행에 따라 학생들을 성적의 순서로 좌석 배치하던 관행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와 관행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던 국가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정작 일본에서는 1894년에 폐지되었던 것이 분열 지배를 위한 식민지 통치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성취평가제 도입 이후 석차 제도가 폐지되었다. 물론 고등학교의 경우 과목별 등급(수능과 마찬가지로 9등급제)을 산출하므로 석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적어도 이제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석차가 폐지되고 절대평가가 도입된 지 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학교현장에서 석차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중학생들은 자기 반에서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지 알고 있다. 교사들이 암암리에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학생들끼리 성적을 서로 비교하며 석차를 따지는 경우도 있다. 외면적인 석차는 사라졌지만 내면적인 석차는 남아 있다.

<프로듀스 101>에는 ‘석차’, 즉 ‘좌석의 순서’가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다. 프로그램 진행 중간 중간 시청자 투표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발표되면서 연습생들은 자기 석차에 따라 피리미드 모양으로 배열된 좌석에 앉게 된다. 피라미드 구조의 좌석 배치, 그리고 고등학교 교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석차에 따라 좌석에 앉는 연습생의 모습을 우리 학생들이 바라보며 이러한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성적과 석차에 대한 신화가 완강하다. 내가 지금 1등급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수능 1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며, 네가 지금 9등급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수능 9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몇 차례의 시험으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구조를 혁파하고자, 이제는 내신은 물론이고 수능 시험에서도 절대평가가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험이란 단지 성적과 석차를 매겨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을 배분하는 절차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를 확인하고 학생들의 더 나은 성장을 지원하는 절차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석차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교육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이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석차에 대한 관념은 너무나 완강하다. 심지어 초등학교 학부모들조차 자기 아이가 몇 등인지 관심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포장하며 “Pick me up”을 외치도록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만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 신뢰하며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도록 도울 것인가. <프로듀스 101>에 나오는 예쁜 소녀들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교육자들의 숙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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