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계기교육 논란 넘어 서울형 보이텔스바흐 협약으로

글. 손동빈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부소장, 느림보학교 운영위원)

계기수업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절기나 국경일, 또는 중요한 정치 사회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소재로 한 교육 활동을 말한다. 계기 교육은 시민적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국가 기념일의 경우 시민의 정치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고, 전통적 농업사회를 반영한 절기의 경우 자연 질서 안에서의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하며, 국제기구 등이 마련한 날은 세계 시민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기회를 준다. 이렇게 보면 계기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실시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것이다.

그러나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계기교육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시교육청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기초로 진행한 민주시민교육 계기 교육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학교 현장에서는 반갑다고 하였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세월호 참사 계기수업을 두고서는 4.16교과서를 펴낸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그것의 사용을 금지한 교육부가 대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구교육청은 세월호 관련 수업 내용 설문조사를 벌여, 해당 학교의 학생과 교사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논란 과정에 등장하는 논리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다분히 논리적 이론적 요청에 근거한 것이다. 교육과 정치는 실제에 있어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공교육의 성립과정이나 민주시민교육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 교육목표를 보아도 그러하다. 교사의 수업은 그 자체가 이미 교사의 세계관, 인간관, 사회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당파적 가치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육의 비당파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여기서 독일 정치교육의 지침역할을 하는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tellsbach Konsens)’에 주목해 보자. 이것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정치 교육학자들이 보이텔스바흐라는 소도시에 모여 개최한 학회에서 논의한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 협약은 첫째, 정치적 견해를 강압적으로 주입함으로써 학생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금지의 원칙, 둘째,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이 수업 상황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논쟁성 유지 원칙, 셋째, 학생들은 현실의 정치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영향을 받는지를 분석, 평가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그런 정치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다양한 수단과 방안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치적 행위능력 강화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정치교육에 관한 최소한의 형식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협약을 지키는 교사의 중립성이 실제 가능한지, 민주주의적 지향이 생략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란과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기준으로 상호 토론하고 합의하는 기준을 형성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협약이 특히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것은 정치교육에서 특정 가치나 정치적 주장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과 학생을 독립적 정치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이다. 우리는 학생을 정치적 보호 대상으로 여기면서, 현실 문제로부터 분리시키고, 학생의 정치적 판단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학생을 대상화하고 교육 내용을 적극적으로 주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현장교사들은 계기교육을 골치 아픈 것으로 인식하여 무관심하고, 학생들은 언론이나 인터넷, 주변의 어른이나 친구를 통해 접한 사실이나 견해를 무분별하게 따라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민주시민교육의 부재이며 공교육의 주요한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하는 교육원칙, 즉 ‘서울형 보이텔스바흐 협약(서울민주시민교육선언)’을 마련하여 계기교육을 비롯한 정치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마침 서울시교육청은 ‘교복 입은 시민’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민주시민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제 민주시민교육의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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