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마음을 활짝 열고 학생이 걸어 들어오길 기다리기

글. 이윤승 선생님(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

성적 처리와 학적을 담당하느라 비담임의 보직을 맡은 지 2년째이다. 담임교사 를 항상 선호하긴 했지만 오랜만의 비담임이어서인지 여유가 생긴 것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 해가 되니 하루하루가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그 허전함을 채우고자 학교에 오면 쉬는 시간에 담임을 맡았던 때를 떠올리는 시 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추억만 하다가 담임으로 만났던 졸업생에게서 연락이 오 면 유난히 고마웠다. 그중 지금 소개할 두 학생의 연락은 반가움 이상이었다. 둘 은 친구였고 나와는 고3 때 담임과 학생으로 만났다. 1년 동안 우리 반의 결석 수는 전체 학급 중 압도적인 1등이었다. 그 둘의 역할이 대단했다. 둘 모두 제적 의 위기를 간신히 넘겼고 둘 중 한 명은 졸업식에도 오지 않아 졸업 후 한참이 지 나서야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아갔다.

1년 동안 그 두 명의 학생과 있었던 일은 학급의 나머지 학생들 모두와 겪은 일 보다 훨씬 많았다. 따돌림, 학교폭력, 학업중단의 위기가 그 둘에게 모두 있었 다. 이렇게 얘기하면 두 명의 학생이 문제가 많았던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전혀 그 렇지 않았다. 둘은 그동안 내가 만나온 어떤 학생들보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둘 중 한 명은 내가 그동안 만난 어떤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 도였다. 그런데 그 둘은 모두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다. 삶이 힘든 것이 아니라 바 로 학교가 그 둘에겐 힘든 공간이었다.

두 명 모두 학기 초 학교폭력과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었다. 친구들과 교사 모 두 그 둘을 힘들게 했다. 그런데 일이 모두 해결되었을 때에도 둘은 학교에 나 오기를 거부했다.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감정의 치유까지는 오래 걸 린 탓이다. 그래서 난 다그치기보단 기다렸다. 학생을 찾아가서 만나보고 전화를 자주 했다.

고3이라는 시기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학창시절인데 그 마지막의 기억이 나쁘기만 하다면 학 창시절의 모든 기억이 나쁘게 남겨질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 음을 매일 알렸고 나와 함께 즐거운 기억들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처음엔 아무 말 없던 학생들이 말뿐이더라 도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이 지켜지기까지 또 한참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변화는 조금씩 있었기에 기 다림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학생들이 점점 솔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아파서 못 갔다고만 하던 학생들이 조금씩 다르게 말했다. 신발은 신었는데, 버스정류장까지는 갔는데, 학교 근처까지는 갔는데 등등. 그렇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한 번은 학교에 꼭 올 거라던 학생이 오지 않았기에 왜 오지 않았는지 물으니 아침에 갑자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너무 예뻐서 같이 있고 싶어서 학교에 못 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 냥 웃었다. 그리고 다음에도 그런 이유라면 나도 결석을 인정해주겠다며 웃었다. 그리고 둘은 2학기 수능을 앞둔 시점에 다시 나왔다. 둘 모두 수능을 보았고 마지막 소풍 때도 함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바보 같다고 했다. 너무 받아주기만 한 것은 아니냐고도 했다. 2년이 지났고 둘에게 연락이 왔다. 둘 모두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다. 둘 모두 고맙다고 했다. 나에게 고맙다는 말보다 더 고마웠던 말이 있 다. 둘 모두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웠다. 학교가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남아 있 다는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학교에 오기를 그토록 힘들어했던 두 학생이 고마웠다. 교육은 1년 만에 결과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두 학생이 그 말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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