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의 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2년을 되돌아보며 나눈 학교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생 학부모들의 이야기

초등학교 입학식이 아직 눈에 선한데 벌써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노심초사하며 학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름, 학부모로 산 세월이 12년이다. 그 12년 동안 아이와 함께 성장했고 이제 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며 뒤를 돌아보는 시간.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모여 지난 12년 동안 학부모로서 겪었던 많은 일들, 느꼈던 점을 함께 이야기해보았다.

인터뷰. 안영신(<지금 서울교육> 편집위원) / 정리. 채의병 / 사진. 이승준

12년을 버텨준 우리 아이들, ‘고맙다! 수고했어!’

안영신 오늘 모이신 분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자녀가 있으신 분들입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이 짧지 않은데 그동안 겪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12년을 ‘억압의 12년’이라고 말해야 할 만큼 교육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학부모로 보낸 12년의 세월이 어땠는지요? 감회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이금득 우리 세대는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라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잖아요. 그런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는 학교가 정말 필요할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제가 인권교육을 하면서 학교 현장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많이 생겼는데, 다시 가서 보니 체벌만 없어졌을 뿐 많은 것들이 거의 바뀌지 않고 그대로였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 안에서 아이가 버티는 걸 보는 게 엄마로서도 무척 힘들었어요. 학교의 부조리함과 억압적인 환경을 제가 실제로 느끼면서 아픈 아이가 그 안에 있는 걸 보는 게 감당하기 힘들었죠. 그런 어려움들도 있었지만 결국 졸업을 하는 딸을 보면서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12년을 잘 다녀줘서 고맙다, 그런 마음이었죠.

우진아 졸업식장에 갔는데 앞에서 선생님이 ‘졸업식을 진행합니다’ 하니까 아이들이 다 환호성을 지르더군요. 그 장면이 저에게는 의외였어요. 우리 때는 다 울었는데 말이죠. 저희 딸은 예술계를 지원했는데, 학교에서 진로 상담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잘 모르셨고, 진로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게 없으신 거예요. 결국 아이의 진로 상담을 학원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화가 났고 학교에 더 큰 실망을 하며 졸업하게 되었네요.

이금득 저는 입시를 겪으면서 차라리 선생님이 모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서를 쓰면서 황당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이가 가고 싶다는 대학이 있다는데 선생님이 다른 대학을 강요하신 거예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설득이셨겠지만 아이가 가고 싶다는 곳이 아니라 자꾸 다른 곳을 권하시니까 아이가 그 과정에서 선생님과 많이 부딪히고 힘들어했죠.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입시에서 아이의 의사결정이 존중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우진아 저는 아이가 물어보면 학교의 선생님이 정답은 아니지만 방향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교육현장에 계신 분이니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믿었던 거예요. 입시는 정보력이라는데 선생님들이 엄마보다 더 잘 아시지 않을까 생각해서 선생님과 상의하길 원했는데, 선생님이 그런 역할을 안 해주셔서 답답했죠.

이금득 저는 결국 학생 본인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조언은 할 수 있지만 강요할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죠.

송민기 입시 결과가 담임교사나 학교의 실적이 되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강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은 안정적으로 지원해서 합격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시는 것 같아요.

송민기 저희 큰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했어요. 2학년이 될 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포트폴리오 준비됐지, 수시 전략 준비됐지, 라고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아이는 학교가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때 둘째 아이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언니가 자퇴하는 걸 허락해주면 어떻게 하냐고 오히려 걱정했죠. 저는 학교가 싫으면 그만두어도 좋다고 이야기했던 사람이라 아이의 자퇴 의사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첫째는 고등학교 때 자퇴했지만 둘째는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고 있어요. 선생님에 대한 불만은 있어도 학교는 재미있다고 하니 아이마다 다른 것 같아요.

조지민 저는 열심히 하면 부모로서 밀어주겠다. 그런데 너희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죠.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아이는 전형적인 학교형 아이였어요. 그런데 교원평가하면서 물어보면 ‘매우 안 좋음’에 체크하는 항목이 많은 거예요. 선생님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버티고 있었구나 느끼게 되는 거죠. 또 저희 아이는 따로 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 오히려 시험 전에 학교가 아무 것도 안 해주는 거예요. 학교가 올스톱되니, 결국 학원에 가라는 이야기인 거죠.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들은 어쩌라는 건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부조리한 학교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안영신 12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즐거운 일도 있었겠지만, 아쉬운 점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네요. 화나고 속상한 일들,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일들이 있음에도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입장이라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요? 또 학교 혹은 선생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셨는지도 들려주세요.

조지민 저희 아이가 중학교 들어갔을 때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아이가 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학기 초에 수련회에 가는데 엄마들이 자기 아이가 그 아이랑 모둠이 되면 힘들 거라는 민원을 많이 넣었나 봐요. 결국 그 아이가 수련회를 못가는 거로 결정이 났고 나중에 강제전학을 갔어요. 그 과정에서 내 아이만 생각하는 엄마들의 태도도 문제였고, 학교의 선생님들이 대처하는 방식도 전혀 ‘교사’스럽지 않았어요. 그때 저라도 그 아이 편을 들어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리죠. 학부모 모임을 보면 엘리트주의를 형성하고, 안 해도 되는 것을 요구하는 일들도 많이 생겨요.

우진아 저는 아이들의 학창생활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가 직접 관심 있는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입학하기도 전에 학부모 상담을 하는 거예요. 학부모를 통해 학생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라 그것부터 불만스러웠죠. 제가 선생님께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1학년 때 선생님은 받아들여주셨는데 2학년 때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셨어요. 학교가 학생을 통제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벌점제도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손쉬운 수단이죠. 재킷을 잃어버리면 벌점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도대체 왜 벌점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한 거죠.

우진아 벌점제, 야간 자율학습 등을 통해 학생들을 강하게 통제하길 바라는 엄마들도 많아요.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는 거죠. 선생님들은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면서 자기네 원칙에 맞지 않으면 낙인을 찍으려 해요. 아이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아이가 이상하다고 판단해버리죠. 들으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학생들을 지지하고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조지민 교사들이 변화되는 시대에 발맞춰서 열린 사고를 해야 하는데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 계속 학생들을 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교사를 만날지 늘 조마조마하고, 복불복의 심정이 되는 거죠.

안영신 우리 사회의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문화가 학교에서 그대로 통하는 거겠죠. 잘못된 구조와 문화를 학교에서도 그대로 보아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잖아요. 대안도 생각해 보셨나요?

우진아 사립학교는 적폐가 심각하고 비리도 많습니다. 이사장 아들이 교장으로 왔다가 얼마 후 교사가 되어서 수업을 하는 일도 있는데 그런 상황을 보면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교육현실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송민기 공립학교도 만만치 않아요. 학교와 교사가 무책임하고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없어요. 그런 상황이 되다보니 점점 학교에 기대하는 게 없어지게 됩니다. 학교에서 무언가 가르쳐준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되어버린 거죠.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거고, 학원에 안 가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모든 게 입시에 집중되다 보니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거죠. 입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아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주체인 교사가 손을 놓아버리니 답답하죠.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대학을 안 가도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겠죠. 입시 때문에 전인교육을 못한다고 변명하는데, 그렇다고 공부를 확실히 가르쳐 대학을 보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지금은 학교가 무책임하다고 밖에 볼 수 없어요.

이금득 학교에 많은 걸 바라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공부조차도 학원에서 해결해야 할 만큼 교사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가장 화가 나요.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제대로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거니까요.

졸업생 학부모로 ‘우리 학교에 바란다!’

안영신 입시경쟁에서 이기려면 학생들이 돈다발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구조라는 점에 모두 공감하게 되죠. 돈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요. 학교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금득 저희 아이 학교에 대자보가 붙은 적이 있어요. 학교 내의 사안에 대해 학생이 대자보를 붙였는데 학교에서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했어요. 저는 의견을 표명하고 문제 제기를 하고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학교 문화가 너무 경직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선생님들끼리도 소통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교사들 간의 상명하복 문화가 바뀌고 수평적인 조직, 소통하는 조직이 되어야만 학교가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학교가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선생님이 ‘슈퍼갑’처럼 행동해서는 학교가 바뀔 수 없어요.

송민기 아이들은 관리 대상이 아니거든요.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그래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어요.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지금 혁신교육을 통해 변화 가능성을 찾아나가는 것이 다행이죠. 무엇보다도 민주적인 학교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학교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타협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 중심, 공부 잘하는 학생만 우대하는 것을 바꿔야 합니다. 학교에서 차별을 통해 경쟁을 강화하고 서열화하는 일만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죠. 꼴찌도 존중받을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해요.

조지민 큰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둘째는 아직도 2년이나 더 다녀야 하는데 그래서 걱정입니다. 학교를 다니는 게 견디고 버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사회가 줄 세우는 문화이다 보니 학교도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사회가 변해야 학교가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이 있고 가르침이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니까요.

우진아결국 나부터, 내가 있는 곳부터 바꿔야 하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함께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의미 있는 변화들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함께해야 할 일이 많으니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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