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탐방

우리 손으로 만드는 우리 마을교과서

종암중학교의 마을교과서 만들기

자신이 공부할 교과서를 학생들이 만든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성북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업 중 하나로 시작한 ‘마을교과서 만들기’ 활동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모든 것을 직접 조사하고 탐사하며 정성껏 만든 마을교과서. 이들이 만든 마을교과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한아름 안고 마을교과서 발표회가 열리고 있는 종암중학교를 찾았다.

채의병 / 사진. 김동율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배운다!

지금까지 학생과 교과서의 관계는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교과서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웠다. 이런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 교과서와 학생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학교가 있다. 바로 성북구에 위치한 종암중학교(교장 신창진)다.

종암중학교 학생들은 ‘마을교과서’를 만든다. 일반 교과서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 학생이 배워도 상관없을 ‘보편성’에 기인한다면, ‘마을교과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성’을 기본으로 한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만드는 마을교과서는 방식은 물론이거니와 내용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을교과서’는 엄밀히 말하면 종암중학교만의 활동은 아니다. 종암중이 위치한 성북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만드는 마을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종암중학교 학생들은 지난 7월부터 시작해 2학기 내내 마을교과서를 만드는 활동을 이어갔다. 취재진이 찾은 2016년 12월 29일은 바로 그간의 결실을 발표하고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학생들이 만든 마을교과서를 보니까 우리 마을인 종암동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만든 교과서이니 의미가 더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으로 시작한 발표회는 학교는 물론 지역주민들과 함께해 더욱 뜻 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교과서’는 마을 주민들의 협력 없이는 만들 수 없다. 마을에 대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건 전적으로 학생들의 몫이었지만, 이를 지원하고 응원해주는 마을 주민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한 학기라는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교과서를 만들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라는 이야기다.

<종암 마을의 이해>. 종암중 학생들이 만든 마을교과서 이름이다. 마을교과서는 11명의 종암중 학생이 각자 맡은 단원을 책임지고 집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래서 단원도 모두 11단원이다. ‘우리 마을의 지리적 특징’, ‘역사 이야기’, ‘자연’, ‘사람들’, ‘마을 민주주의’, ‘경제’, ‘생활’, ‘마을에서 배우고 꿈꾸기’, ‘안전한 우리 마을’, ‘우리 마을 알리기’, ‘우리 마을과 미래’ 등 단원명만 봐도 벌써 종암동을 한 바퀴 둘러본 느낌이 들 정도로 알차다.

“학생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마을 곳곳을 탐방하고 때로는 체험활동도 하면서 집필한 교과서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보니 마을교과서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고요. 우리 마을과 지역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마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 만큼 ‘나’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도 한층 깊어진 것 같아 흐뭇합니다.”

마을교과서 동아리 담당 교사 최인재 선생님은 자신도 종암동이라는 마을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출퇴근하는 직장이 있는 동네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학교보다 큰 교육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만든 교과서이지만 교사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교과서이기도 해요. 마을교과서를 함께 만들면서 마을 주민과 교사 모두 마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학생들만 공동체 의식이 함양된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과 교사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합니다.”

마을교과서로 마을 민주주의도 한 뼘 더

종암중학교 마을교과서 만들기 동아리는 2학년 학생들로 이루어졌다.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교과서를 기획하고 자료 수집하는 일을 진행했고, 매주 토요일에는 직접 현장을 탐방하고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마을교과서의 내용을 튼실하게 만들어갔다.

특히 마을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은 ‘우리 마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집과 학교 또는 몇몇 친구와 노는 공간 이외에는 큰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종암동을 구성하는 모든 공간에 조금씩 관심과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지평이 넓어지다 보면 생각도 트이기 마련, 진행 중에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는 회의를 거쳐 아이디어 보드에 차곡차곡 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종암동의 대표적인 자연은 정릉천과 개운산입니다. 이곳에서 주로 생태답사가 이루어졌고요. 종암북바위축제나 종암한마당축제와 같이 마을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발로 뛰어 만든 내용은 다시 아이디어 보드에 붙여서 정리하죠.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교과서에 실을 내용으로 다듬어가는 겁니다.”

한 단원씩 책임을 맡아 집필하다 보니 마을교과서 만들기 동아리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종암동 전문가’가 됐다. 전문가가 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교과서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교과서 집필과 검토 과정 그리고 교과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각자’가 아닌 ‘함께’의 과정을 통해 교과서를 만들어나갔다. 자연히 책을 만드는 방법은 물론 협업의 가치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된 셈이다.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드는 교과서인 만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기획부터 발행까지 전 과정에서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다 보니 사회성이나 창의성, 인성 같은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어요. 함께 활동하면서 친구들과 관계도 좋아지고요. 마을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마을 안에서 배우고 관계 맺는 경험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도 닦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단 종암동뿐만 아니라 모든 마을에는 소중한 공간과 역사 그리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 덕택에 오늘의 마을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중요한 것들을 지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마을교과서를 만들면서 마을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어요. 직접 참여로 인한 마을 민주주의의 뿌리가 더욱 깊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 공동체 확산의 씨앗이 되기를

지난해 학생들이 만든 마을교과서는 올해 수업시간에 부교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 개념을 마을교과서의 실제 사례와 연계함으로써 교과에 대한 이해는 물론 활용도도 높일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또 처음 시도한 사업인 만큼 앞으로 진행할 다른 마을교과서 작업의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집필 과정을 체계화하여 정리했고 다른 학교와도 공유할 계획이다.

“이번 마을교과서 활동에는 종암중학교와 길음중학교만 참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결과물이 다른 학교의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나의 모델이 되는 거지요. 마을교과서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교과과정과 연결되지 않는 체험활동은 일회적이거나 단편적인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을교과서를 만든 종암중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 맞닿아 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활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발전 및 계승이 가능한 교육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교과과정은 물론 다양한 교육활동과의 연계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차원, 학교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 차원에서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게 최인재 선생님의 설명이다.

“마을교과서 만들기 활동은 구청과 주민센터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주시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구 차원에서 마을 교사가 멘토로 참여해 실무를 진행해주셔서 동아리 지도 교사의 부담이 크게 줄었거든요. 또 주민센터의 마을코디네이터가 자료 수집과 섭외에 큰 도움을 주셔서 원활한 진행이 가능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만든 마을교과서를 동이나 구에서 종합정보지나 홍보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을교과서 만들기 활동으로 학교와 마을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졌어요. 연계가 강화되고 소통의 창구도 넓어졌죠. 마을 안에서 교육 공동체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종암중학교는 지난 2016년 마을결합형 모델학교로 지정되었다. 마을교과서 만들기 활동 또한 마을과의 활발한 교류와 소통을 바탕으로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의 연장선상이다.

이를 위해 종암중학교에서는 다양한 마을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마을교과서 동아리는 물론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한 밴드반과 스피치연기반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배구 동아리는 종암중과 마을의 유기적인 연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활동으로 손꼽힌다. 단순히 마을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마을 주민이 함께 운동하는 화합의 장으로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가 마을 주민인 공방 활동 그리고 전교생이 참여하는 마을의 역사, 문화 자원을 체험하는 학급 캠프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마을결합형학교를 시작할 때는 공감대가 그리 넓게 형성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교직원들이 자율 연수를 다녀오거나 학부모 교육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죠. 처음에는 서로가 접근하기 힘들어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상호 간 꾸준한 노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이라는 작은 묘목이 깊게 뿌리내리고 더 튼튼한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라는 비료는 물론 그 근간이 되는 마을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종암중학교가 확인한 변화의 씨앗이 서울교육 전체에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마을교과서를 만들며 우리 마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졌어요.”

이선우 (2학년, 마을교과서 동아리)

“마을교과서 동아리 모집공고를 봤을 때 ‘이거다!’ 싶었어요.”

평소 동네 친구들과 마을에서 놀기 좋아했던 이선우 학생은 ‘마을교과서’라는 아이디어가 무척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마을 속의 보물을 찾는 느낌이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의견을 나누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 좋았어요. 개운산 둘레길 답사 갔을 때는 팽나무에 이름표 달기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때 길을 잃어버려서 친구들이랑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추억도 다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이선우 학생은 생태계 파트를 맡아 집필했다. 책임지고 집필하다 보니 자연히 자연에 대한 관심 또한 깊어졌다. 종암동 주민들과 함께하는 ‘북바위 축제’에 참가한 것도 자연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데 크게 일조했단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이렇게 즐거운 활동을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는 이선우 학생.

“마을교과서 만들기를 7월부터 시작했는데, 봄부터 했으면 더 좋았을걸, 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공부하고 학원 다니느라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한 것도 아쉽고요. 한 번 더 만들면 진짜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동네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겠죠?”

마을교과서를 만들고 마을과 한층 더 가까워진 이선우 학생처럼, 성북구를 넘어 서울시내 모든 학생이 마을과 더불어 호흡하는 그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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