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신영복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신영복 <더불어숲>

1997년 신영복은 세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더불어숲>은 단순한 인문여행서가 아니다. 역사를 만들어내는 수레바퀴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든 ‘우리’의 결과물임을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지연 주무관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

아주 먼 여행을 떠나셨지요? 도착한 곳은 어떤지요?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고 하셨지요. 처음으로 하늘을 만난 새처럼, 새날을 시작하고 있는지요? 그곳은 사람들 사이에 박힌 불신이 사라지고 갇혀 있던 역량들이 해방되는 봄의 나라인가요? 무성한 들풀과 풍성한 나무들이 서로를 넉넉히 포용하는 ‘더불어숲’에 머무시길 바라봅니다.

2017년 1월 15일, 누구는 그리운 마음이 눈물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아직도 식민의 잔재와 일그러진 근대화가 켜켜이 쌓여 악취를 흩뿌리고 있습니다. 그 속에 많은 나무가 저마다 떠날 수 없는 자리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세찬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목들이 ‘더불어숲’이 되고, 서로를 감싸며 손잡고 함께 광장의 촛불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습니다.

부제는 ‘세계 기행’이라고 하는데 왜 책 제목은 ‘더불어숲’일까요? 독자에게 “세계의 이곳저곳을 찾아가 그곳에 담긴 과거와 미래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습니다. 비록 좁은 엽서 공간이지만 당신과 함께 생각의 뜨락을 넓히고 싶습니다. 나는 물론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고 하셨지요. 지금 이 글은 새롭게 쓰일 많은 답장 중 하나입니다.

우엘바를 떠난 산타마리아 호가 간 서쪽에는 마야-아즈텍과 잉카가 있었습니다. <꽃보다 청춘>이 본 남미는 숨쉬기 힘든 고도와 당혹스러운 음식들로 얕게 기억됩니다. 당신이 들려준 라틴아메리카는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 땅의 최선이었고 그 세월의 최선이니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존중하는 일이라 하셨지요. 서구가 강요한 근대는 일방적이고 냉혹하기만 합니다. 그 역사는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시대의 역행으로 돌아왔습니다.

센 강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개선문에 올라 조명으로 빛나는 에펠탑을 찾으며, 루브르 모나리자와 고흐의 별 오르세를 거쳐 유람선을 타고 노트르담을 보면서 낭만에 취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파리는 혁명의 도시입니다. 1789년으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세계는 지금도 패권 의지가 넘칩니다. 자유, 평등, 박애는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며 역사의 다음 장에서 반복하여 되살아나리라고 자아의 단두를 거쳐 가면서 공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휴머니즘은 스스로 쌓은 욕망에서 독립하는 것이라는 아테네, 하늘을 나는 새는 뼈를 가볍게 한다는 잘츠부르크, 나를 넘고 세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베네치아, 반은 절반이며 동반이라는 희망봉과 로벤 섬, 그 자체로도 빛나는 각성의 리우, 현대 문명의 이유를 묻는 나스카,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애정이라는 이스탄불, 진보는 삶의 단순화라는 델리, 문화는 사람이라는 카트만두도 달리 알게 되었습니다.

도쿄의 지하철 야마노테선은 서울의 2호선과 꼭 닮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들에 의지하여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부를 반환하는 수탈 장물에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공모자가 가장 과격하게 공범을 비난하지요. 외부의 약탈자에게 협력하고 구걸하였던 역사가 아직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이중적 약탈의 대상자들에게 현실은 늘 반복됩니다.

상하이는 도약하는 현대 중국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공업화, 과학화, 현대화라는 근대사회의 도식을 수용하고 있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우려하셨지요. 한반도는 또다시 저강도 전쟁 상황을 인정해야 할까요?

16세기 말 왜란과 17세기 초 호란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있습니다. 중국이 창조적 고민을 통해 따뜻한 ‘더불어숲’을 만들기를 당신과 함께 기대해봅니다.

종착 여행지는 태산이군요. 중국 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혼이 돌아간다고 믿는 태산입니다. 태산은 산동 반도에 있다지요. 그 동쪽은 서해바다이고 더 동쪽은? 한반도입니다. 태산에서 일출을 기다리기에 여행을 태산에서 마무리하셨나 봅니다. 어두운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 태양을 띄워 올린다셨지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띄워 올린 태양, 끊임없이 불을 지펴 키워낸 새로운 태양을 먼 곳에서라도 함께 보시기를 희망합니다.

우엘바에서 시작하여 태산에서 마무리한 여행은 당신이 소중하게 보여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여행’입니다. 대학교 2학년 4.19 광화문에서 바로 옆 선배의 죽음을 겪은 대학시절과, 20년 20일의 감옥을 거쳐 그 후로도 오래 권력의 감시 속에 있었던 당신의 인생 여행이 겹쳐집니다. 낡은 인식의 틀이 깨지고 애정과 공감을 실천하여 자기 소외를 극복하는 여행은 좋은 공부였습니다.

샘 오취리라는 가나에서 온 흑인 청년이 있습니다. 한국 이름은 오철희랍니다. 한국어 중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단어일까요? ‘우리’랍니다. 캐나다 유학 중 비슷한 차별을 느꼈던 한국 친구가 어려울 때 가장 많이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겼다’와 ‘우리가 이겼다’는 다르다고 하셨지요. 입장이 같은 ‘우리’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철희나 촛불시민이나 비슷하겠지요?

‘손잡고 더불어’ 어둡고 엄혹한 곤경에도 끝내 어리석음을 떨치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스스로 그리려 합니다. 당신의 여행지인 그곳처럼 이곳도 너와 내가 서로의 존재 조건이 되어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더불어숲’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함께할 여행이 오겠지요.

더불어숲

신영복 저 | 돌베개 펴냄

신영복의 <더불어숲>은 세기말인 1997년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로 전 세계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한데 엮은 책이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신영복 교수의 해박한 지식은 물론 현실에 대한 겸손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식으로 각 여행지를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본래 1, 2권으로 구성되었으나 지난 2003년부터는 합본호로 다시금 책의 구성을 고쳐 선보였으며, 초판 발간 18년을 맞이한 2015년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내용을 개정하여 다시 출간하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