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교육

내일이 아닌 오늘 변화하는 ‘미래교육’

서울교육의 ‘미래교육’

교육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 잡는 행위가 아니다. 학생은 행복을 뒤로 미뤄둬야 하는 존재가 아닌 지금 행복해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앞으로의 약속보다 당장의 변화가 시급하다. 서울교육의 ‘미래교육’은 내일이 아닌 오늘부터 출발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지학 소장(한국다양성연구소)

언젠가 학교는 가고 싶은 사람만 가도 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될 것처럼 보인다. 학교가 지식(특히 입시를 위한 지식)의 전달밖에 목적이 없다면 말이다. 학교가 입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될 수는 없을까? ‘나’를 발견하고친구를 사귀고 우정, 사랑, 협동, 연대, 공동체, 인류애, 평화를 배우는 곳이 학교여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 이별, 그리고 현재와 미래 만나기

왜 우리는 아직도 복장, 두발, 화장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있는 소식을 자주 접할 수밖에 없을까? 학생의 인권, 존엄,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지켜 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인권신장이 교권 추락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학부모와 교사 포함)이 학생의 본분은 당연히 공부라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은 마땅히 공부를 열심히(또는 오직 공부만)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의지력이 부족하고 산만하며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이런 시각으로 학생들을 통제의 대상, 교화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교조주의적, 계몽주의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의교육’이나 ‘참여교육’은 허울만 좋은 구호일 뿐이다.

과거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서 미래를 외치면 현재에 도달하기 어렵다. ‘미래교육’을 현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주입식, 암기식 교육과 이별해야 한다. 평등, 협동, 상생이 아닌 경쟁과 승리만을 강조하는 형태의 교육은 결코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 교육이 아니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명령에 따르고 교사들은 교장, 교감의 명령에 따르고 교장, 교감들은 교육청과 교육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권위에 굴복하고 순응하는 문화를 전제한 교육과는 완전히 이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을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 똑같은 사람들로 만들고자 했던 과거의 전체주의적 교육의 모습을 버려야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 되기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독립적인 한 주체이자 인격체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공간이되기 위해, 학교는 실수나 실패에도 비난받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 되야 한다. 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개개인이 모두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는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다. 지금, 현재, 이 시대의 주인공이다.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이어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행복을 미루도록 강요하지 말자.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서 주권을 가지고 다양성, 개별성, 독립성을 키워가며 동시에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지켜주고 협동하며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주체이다.

낡은 제도와 틀을 청산하기

미래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사 현실의 변화도 필요하다. 지금의 학교는 교사 개개인도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어렵고, 교육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낡은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을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등수를 부여해야 하는 평가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고, 교사들에게 과도한 행정 업무를 부과하여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없게 한다. 큰 꿈을 갖고 교사가 된 이들을 좌절시키기보다, 학생을 향한 교사 들의 긍정적인 열정을 미래교육에 담아내기 위한 구조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철저한 교권보장을 통해 ‘교사는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는 교육자’라는 교사관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핀란드의 교육철학은 우리의 미래교육의 목적성을 고민하는 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핀란드 교육에서는 개인의 발전을 위한 평가가 있을 뿐(목표를 스스로 설정),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위한 등수(석차) 같은 것은 없다. 우등생과 낙오자를 구분하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낙오자를 없애고 모두 함께 나아가기 위한 평가와 추가적 지원이 있을 뿐이다. 핀란드에서 이러한 교육제도(학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평등의 정신이 사회 전역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어, 모두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고 평등하게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끔 돕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

교실 민주주의와 평등교육의 실현

한국 사회에서 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의 영역에서 친독재, 친재벌적인 세력이 아닌 좀 더 민주적인 정부가 만들어지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일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사람의 가정, 학교, 일터 등의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민주주의는 평등의 정신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민주주의(교실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간 편차에 따른 차별이 없는 평등한 공교육. 그 안에서 학생 간의 평등과 교사 간의 평등 구현.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평등한 학교에서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교육이 실시되는 모습.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학교. 이러한 학교의 모습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느껴 지지 않는 사회라야 요즘 이야기하고 있는 미래교육이 자연스럽게 구현될 것이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