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민주시민교육, 보이텔스바흐 교육으로 한 걸음 더

보이텔스바흐 합의, 한국교육계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은 학교는 가장 보수적인 공간이자 변화에 대한 탄력성이 적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는 변화의 씨앗을 싹틔우고 있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변화의 흐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민주시민을 키우기 위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살펴보자.

글. 곽노현 이사장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전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우리 교육,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눈뜨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교육적 관점에서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나 사회현안교육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의 방법론을 수립하고, 이를 교육계를 넘어 전 사회적인 합의로 만드는 일은 시급한 과제다. 더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근거로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과 만18세 선거연령 하향 등을 제한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과 같은 개혁 국면에서 앞서 언급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진전은 결정적 지체 현상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은 당면의 과제 해결과 관련해 최근 한국교육계는 정치교육에 관한 독일의 1976년 보이스텔스바흐 합의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심성보, 홍윤기 교수 등 소수 학자들에 의해 10년 전부터 소개돼왔으나 교육계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 2015년에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둘러싸고 역사교육논쟁이 불붙었을 때 역사교육계 일각에서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실용성에 눈을 뜨게 된다. 장은주 교수와 이동기 교수가 각각 역사교육을 둘러싼 오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2016년 출범한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역사교육을 넘어 민주시민교육의 방법론으로 채택할 것을 주장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헌법이 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이텔스바흐 원칙의 교육현장 실천만으로 충분하고 지금처럼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창하고 나섰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과 맞물린 교육원칙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캠페인에 나선 셈이다.

수업의 정치 중립성 확보 및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 캠페인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시민의식과 시민참여가 활성화된 시점인 데다 진보교육감들이 포진해 있고 정권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통한 사회현안교육과 역사교육 활성화에 적극적이라 서울교육이 앞장서서 실천할 경우 전국적으로 탄력을 받을 게 틀림없다.

우리 교육은 보이텔스바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일단 알려지기만 하면 교사와 학부모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실은 교사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할 때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의 사드 도입 전격 결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저항이 진행 중이던 지난여름에 일어난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당시 교육부는 사드 배치의 당위성과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국방부 문건을 모든 학교의 학부모, 교사, 학생에게 안내해줄 것을 17개 시도교육청에 지시한다.

교육청의 반응은 세 갈래로 나타났다. 경북교육청을 포함한 10개 교육청은 늘 그래왔듯이 교육부 공문 그대로 학교에서 시행했다. 홍보문건을 받아본 경북 성주의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렸을 것은 불문가지다. 한편 광주와 강원 등 4개 진보교육청은 교육부 공문의 학교 이첩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전북과 서울시교육청은 전례없는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 공문을 그대로 보내는 대신, ‘열띤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찬반양론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학교로 보낸 것이다.

그 이후로 학부모나 교사를 상대로 강연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세 번째 대응방식에 대한 지지가 80% 넘게 나온다. 학교 밖 세상에서 ‘학문적, 정치적으로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교실 수업에서도 반드시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원칙에 압도적인 동의를 표하는 셈이다. 이 원칙은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섯 성향의 정치교육 이론가들과 실천가들, 그리고 정치교육 관계자들이 1976년 독일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토론한 끝에 실질적 합의에 도달한 3대 원칙 중 두 번째 원칙이다. 보통 논쟁성 재현 원칙이라 부른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치열한 논쟁을 진행 중인 사안, 이른바 주요 정치현안과 쟁점에 대해 학교 수업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강연 도중에 물으면 교사는 90% 이상, 학부모도 80% 이상이 그렇다고 답변한다는 점이다.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라 놀라웠다. 이유는 그래야만 아이들이 그런 문제를 교육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과 그래야만 아이들이 현실 문제에 대해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정치현안을 다루는 데는 여러 제약이 있다. 우선 준비가 쉽지 않다. 미리 정해진 ‘진도 빼기’에도 방해가 된다. 게다가 묘하게 금기시되는 주제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 강정, 밀양, 성주 등 그때 그때 고도로 정치화된 대형 이슈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현실의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해 학교수업을 통해 교육적으로 학습하고 토론할 기회를 갖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내친김에 정치, 역사, 법, 경제 등 사회교과 시간에 학문적,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현안을 가르칠 때 교사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놀랍도록 동일한 견해를 표출한다. 국가적, 사회적 현안과 쟁점을 다룰 때에는 교사가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견해를 주입, 교화, 옹호해선 안 된다는 것.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독립적인 판단을 돕는 데 있지 교사의 견해를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원칙 역시 학교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독일 보이텔스바흐의 첫 번째 원칙이다. 학생 압도 금지원칙 또는 주입교화 금지원칙이라 부른다.

민주시민교육이 더욱 탄탄히 자리 잡을 그날까지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구성하는 마지막 제3원칙은 학생 이해관계 중심 원칙이다. 정치교육의 목적은 학생 개개인이 어떤 정치상황에서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에 필요한 방법과 수단을 탐색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는 것. 눈앞의 정치상황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이해를 넘어 그것에 영향을 끼치는 데 필요한 시민행동과 정치참여 역량까지 익힐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정치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것이다. 이 원칙에 대해서도 교사와 학부모 청중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용적으로는 그 3대 원칙을 모두 수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독일의 모든 정파가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에 합의할 수 있었듯이 우리나라 교육계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사회현안 교육의 원칙이자 사회교과 수업의 원칙으로, 나아가서 교직윤리의 원칙으로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공식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그렇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교육적 관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사회현안 및 사회교과 교육원칙으로 이미 우리 교육계가 수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물론 독일과 다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민주시민교육 원칙을 어떤 경로로 만들어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치교육학계의 의견일치를 권위 있는 전통으로 뿌리내린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교육감과 교원단체 간의 협약으로 1차 담아낸 후 교육감 지침으로 학교 현장에 내려보내고 나아가서 영국처럼 교육 기본법에 그 취지를 명문의 조항으로 입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이렇게 해서 교사의 수업활동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확보하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학교와 사회에서 성큼 발전할 계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3대원칙이란?

첫째 정치교육에서 교사의 주입교화를 금지할 것. 둘째, 논쟁적 사안 수업 시 논쟁성 재현을 원칙으로 할 것. 셋째 학생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할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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