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교육저널 그날

시험 볼 때 찹쌀떡 암행어사 박문수도 먹었다?

박문수의 이야기로 듣는 조선시대 수능, 과거

학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시험에 낙방하고 다시 도전하는 ‘재수생’들도 있었다. 조선시대 백성을 위한 너른 정책을 펼쳐 큰 존경과 사랑을 받은 박문수도 시험의 부담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다시 한양으로 길을 나선 박문수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고금 막론하고 학생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 시험에 대해 이야기 나눠본다.

글. 최태성 선생님(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전 대광고등학교 교사) / 그림. 이철민

찹쌀~~떠억. 찹쌀떡 좋아하시죠? 쫄깃쫄깃한 떡 안에 있는 팥. 입에 넣으면 식감이 끝내주죠. 너무 너무 맛있습니다. 이 귀한 찹쌀떡이 수능 시험 때만 되면 아주 학교에 차고 넘칩니다. 부모님들이, 후배들이 응원한다고 찹쌀떡을 선물하기 때문이죠. 근데 왜 찹쌀떡이 이렇게 수험생들을 응원해주는 떡이 되었죠?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기원이 되는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암행어사 하면 딱 떠오르는 인물이 누가 있나요? 이몽룡? 아…. <춘향전> 이몽룡? 그렇긴 하네요. 강렬하죠. 그런데 저는 박문수가 떠오릅니다. 암행어사 박문수. 불의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을 혼내주었던 정의의 사도 암행어사 박문수. 그런데 그거 아세요? 사실 박문수는 암행어사를 지낸 적이 없답니다. 워낙 정의의 사도 역할로 많은 사람에게 구전되어오다 보니 박문수가 암행어사가 되어버렸네요. 박문수는 조선 시대 관직에 있으면서 늘 백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거든요. 백성들에겐 정말 영웅이었죠. 그러다 보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내려와 사건을 해결해주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기록에도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활약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박문수가 환생하면 ‘헐’ 할 겁니다.

그러나 이 박문수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답니다. 박문수는 과거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합니다. 지금 말로 하면 재수를 한 거죠. 그런데 또 떨어져요.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죠. 이제 박문수는 삼수생이 된 겁니다. 안쓰럽죠.

조선시대의 과거는 ‘소과’와 ‘대과’로 나뉩니다. 소과는 지금으로 말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입니다. 여기에 통과하면 진사나 생원으로 불리게 되죠. 우리도 수능 통과하면 대학생이 되듯이 말이죠. 원칙적으로 이 생원과 진사가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성균관은 지금의 대학교입니다. 성균관 대학생들은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공무원 시험 합격입니다. 이 공무원 시험을 조선시대는 대과라고 불렀습니다. 대과에 합격하면 이제 관리, 조선의 공무원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과는 수능, 대과는 공시,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하죠.

박문수는 이 대과에 합격을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 도전. 이때 나이는 몇 살? 이미 서른두 살입니다. 많이 늦었어요. 신림동이나 노량진 고시촌의 노장들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박문수가 지금 있다면 아마도 노량진에서 트레이닝복 입고 삼선 슬리퍼를 끌며 ‘컵밥’을 드시고 있지 않을까요?

아…. 그런데 여러분. 조선시대 과거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이것도 <춘향전>의 이몽룡이 이미지를 흐려놨어요. 춘향이와 연애하다가 서울로 휙 올라가서는 그냥 한 번에 과거 합격하고 암행어사로 내려오는 모습 때문에 과거 합격자들이 만만해 보이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과거 문과는 3년에 한 번밖에 보지 않습니다. 거기서 뽑는 인원이 몇 명일까요? 전국에서 3년간 갈고닦은 선비가 응시를 하는데 뽑는 인원은 고작 33명. 엄청나죠. 그러니 과거 합격자는 대단한 겁니다. 그 33명 중에 1등이 바로 장원 급제. 그러니 전국 수석이죠. 율곡 이이. 우리를 좌절케 만드시는 분이죠. 과거 시험에 9번 응시했는데 9번 모두 급제도 아니고 장원 급제를 하신 분입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전 그래서 박문수가 더 친근합니다. 하하하.

자, 공시 삼수생 박문수가 다시 도전합니다. 힘내라! 박문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간식으로 먹으라고 찹쌀 유과를 봇짐에 넣어줍니다. 찹쌀 유과? 아하! 느낌이 오시죠? 그리고 시험에 용하다는 절을 수소문해서 알려주죠. 칠장사라는 절인데 아들에게 한양 올라가는 길에 이 절에서 꼭 과거 합격을 빌라고 합니다. 박문수는 칠장사에 가 소원을 빌고 요사채(승려들의 일상생활을 위해 지은 절집)에 들어 잠을 자게 되는데요. 이때 꿈속에 한 스님이 나타납니다. 뭔가 일이 풀린다는 이야기겠죠? 스님은 바로 칠장사를 부흥시킨 분이셨습니다. 그 스님이 박문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세상에나. 과거 시험 답을 알려줍니다. 시험 문제 답지 8행의 시구 중 7행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한 행은 박문수가 직접 만들라고 하죠. 꿈에서 깨어났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겁니다. 저도 이런 경험 있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하도 시험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꿈에 시험지가 나오는 겁니다. 물론 매번 답을 몰라 슬퍼하는 모습이었지만요.

박문수는 이상한 꿈이다 생각하며 한양에 올라갔고 과거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두근두근 시험 문제가 공개됩니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꿈에서 스님이 알려준 문제가 그대로 나온 겁니다. 박문수는 싱글벙글 여유 있게 시험 문제를 풀죠. 마지막 스님이 알려주신 7행까지 줄줄 씁니다. 마지막 7행은 이 문구였다고 합니다. “~저녁 연기 파랗게 남쪽 마을로 피어오르고” 마지막 문구.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한번 즉석에서 박문수다 생각하고 마무리 지어볼까요? 박문수는 마지막 8행의 문구를 이렇게 썼습니다.

우와. 아주 멋진 서정시 한 편이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이걸로 박문수는 드디어 장원 급제를 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은 있었고 조선시대 수험생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였죠. 아마도 그 스트레스가 꿈으로 발현된 것이겠죠. 워낙 박문수는 구전 설화의 주인공 ‘탑’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 역시 사실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박문수 역시 시험으로 힘든 청춘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흙수저 출신 박문수. 이런 고생의 경험이 있기에 관직에 있으면서 평생 백성만 바라보며 정책을 주장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 어머니가 과거 보러 갈 때 싸준 게 뭐였죠? 바로 찹쌀 유과였죠. 찹살떡의 유래가 어사 박문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찹쌀~떠억.

최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사로 활동했다. 누적 수강생이 500만 명이 넘는 유명 강사로 《무한도전》,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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