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의 수다

직업보다는 하고 싶은 일, 진로보다는 삶의 방향을 깨우치기

진로교육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 잔디에서 뛰어 노는 아이를 보며 “우리 아이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상상을 하며 설렌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꿈, 희망. 그리고 삶을 향한 그 순수한 철학을 만나며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면 진로교육이라는 구체성으로 만나게 된다. 가벼울 수 없는 주제 ‘진로’. 학부모들의 대화 역시 진지함이 오고 갔다.

인터뷰. 전은영(<지금서울교육> 편집위원) 정리. 채의병 사진. 이승준

장래 희망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

전은영 학기 초가 되면 학교에 제출할 것들이 많아요. 가족사항이나 장래희망도 적게 되어 있는데요. 학기 초에 이 질문을 마주하면 ‘아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라는 진지한 물음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어요. “구체적인 직업을 써 주세요”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공감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었습니다.

임지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일 텐데, 양식에 그런 내용을 쓸 수 있는 공간은 거의 본 적이 없죠.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에는, 현재의 직업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학생이 상상하는 꿈 중에는 지금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직업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아이의 시선은 이미 20년 후, 아니 그 이상을 보고 있는데 20년 이전의 양식으로 아이를 끌어와야 하는 것인가?’ 싶을 때가 있죠.문을 마주하면 ‘아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라는 진지한 물음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어요. “구체적인 직업을 써 주세요”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공감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었습니다.

이윤주 저희 딸이 초등학교 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무슨 작가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보시더래요. 저희 아이는 글 쓰는 게 좋아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물어보시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는 거예요. 다양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틀에 맞춰서 몇 글자로 규정 짓다 보면 오히려 폭넓은 상상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임양지

임양지. 중학생인 두 아이의 학부모로 ‘중랑행복교육’ 운영위원, ‘중랑학부모 진로코치’ 단장, 상봉중 운영위원이다.

임양지 ‘장점’이나 ‘강점’도 마찬가지예요. 획일화된 양식에 몇 글자로 소개하는 것이 아이들을 소개하는 게 전부일 때가 많아요. 아이들이 빈칸으로 내는 일이 많다고 해요.

김성화 아이들의 꿈이나 직업은 성장하면서 바뀔 수 있어요. 학생이 가진 가능성이 다양한데 그런 측면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장래희망이나 직업을 쓰면서 오히려 좌절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전은영 사실 이런 양식은 우리 세대가 학교를 다니던 30년 전과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어 보여요. 이런 양식에서도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과 철학, 개성과 소신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은영

전은영.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지금 서울교육>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다양한 변화의 시대, 진로교육이 발맞추기 위해서는?

전은영 진로교육을 경험하고, 학부모 참여도 해보셨을 텐데 아쉬웠던 부분과 좋았던 기억들을 좀 나누어주세요.

임양지 학교가 관습을 답습하면 학부모들 역시 혼란스러워요. 제4차 산업혁명은 변화의 속도보다는 다양하고 산발적이라는 점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진로교육은 아직까지도 직업교육에 한정되어 있는 거 같아요. 급변하는 사회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은영 사람이 지닌 다양한 개성과 다른 생각들은 가장 큰 자산일 텐데요. ‘지금의 교육이 그런 다양함을 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보이죠. 틀 안에 있어야 교실이 안정적이고, 평가방식에 맞는 능력을 지녀야 유리하죠. 논술이라고는 하지만 모범답안이 존재하고, 그것을 평가지표로 삼는 이상 다양함은 존중받지 못하는 거죠. 다양한 상상들이 펼쳐놓을 수많은 논리와 가능성 부분에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할 세대들인데 안타까워요.

이윤주 다방면으로 시도해보고 혹시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유학기제가 바로 그런 시도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시험을 보지 않는 학기가 아니라 제대로 진로탐색을 할 수 있는 학기가 되기를 바라죠.

임지연 직업체험을 위해 학부모의 직장을 방문하는 ‘직업체험터’를 선정하는데요. 학부모들이 직업체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직업이 드러나게 되거든요. 그렇다 보니 빈부격차가 노출되는 문제점도 있더라고요. 이동거리 때문에 가까운 곳으로 가다보니 지역의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이윤주 저는 판사나 의사를 한 번 만나보는 게 직업체험이고 진로교육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실제 우리 주변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경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면서 진로를 찾아가는 게 맞는 거겠죠.

김성화 아이들도 진로체험 가면 그냥 노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진로체험이 왜 필요한지 사전 또는 사후 교육이 더 필요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진로체험은 진로교육에 대한 밑그림이나 기초작업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임양지 조금 더디더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직접 정보를 찾아가며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고민해보는 과정 자체가 큰 공부가 될 수 있고, 흥미를 더 느끼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윤주

이윤주. 중3, 중1인 두 딸을 키우고 있으며 ‘중랑행복교육’ 대표, ‘중랑마을넷마을학교’ 분과장을 맡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삶을 디자인할 수 있는 그날까지

임지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진로에 대한 가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봐요. ‘꿈 강박’에 시달리게 하는 접근 말고요. 나이 들어서 진짜 꿈을 찾고 다시 도전하는 일도 많이 있죠. 그런데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한계가 있죠. 특히 진로교육은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마을 안에서 마을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성화 아이들이 마을에서 동아리를 만들어서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어 올렸어요. 동아리를 꾸리고, 사업계획을 내고, 복잡한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갔어요. 그 과정들을 몇 개월에 걸쳐 해결했어요. 잠시 방송 DJ를 체험해보는 것과는 다른 거죠. 이렇게 타인과 의견을 조율하며 한발씩 나아가고, 성공시킨 이 경험은 아이들의 가슴에 뜨거움으로 남을 거예요.

임지연 학교에 한 달에 한 번 ‘가방없는 날’이 있어요. 이날은 집중동아리 날인 거예요. 동아리를 개설하고, 꾸리고 아이들이 해나가는 거죠. 아이들도 학부모도 너무 좋아하죠. 그런 만큼 신뢰가 형성되는 거죠.

임양지 바람직한 진로교육이 정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임지연 자유학기제를 하고 진로교육을 해도 결국에는 내신관리를 어떻게 하고 수능을 몇 점 받아서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가느냐로 판결이 나는 게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해요.

이윤주 맞아요. 공무원이 희망직업 1순위인 시대잖아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거죠.

임양지 결국 사회가 변하고 좋아지지 않으면 적성과 꿈을 찾아 진로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거겠죠. 소신 있게 교육하려 하지만 이를 지켜나가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자꾸 다그치게 되죠.

전은영 더 나은 진로교육을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진로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학교에서 진로지도를 하면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성화 우리가 정해진 틀 안에서 자란 세대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아이들을 가두고 있다고 반성할 때가 많아요. 학부모가 먼저 틀을 깨지 않으면 안 되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이 너무 굳건하다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임지연 부모는 아이들이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내 아이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김성화

김성화. 중1,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인 세 아이를 키우며 ‘중랑행복교육’ 운영위원, 서울신현초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단체인 ‘초록상상’ 회원이기도 하다.

이윤주 복지 대상 학생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지원되는 부분은 늘어났고 체험할 기회도 많아졌지만 오히려 그 활동들이 자존감을 높여주는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들을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같은 입시 구조에서는 시험성적이 낮은 학생들,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희생되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구조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집이 잘살든 못살든 모두가 희생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성화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전 세계 어디에 떨어뜨려도 살아날 수 있게 해주려면 실컷 체험하고 달고 쓴 것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살아 있는 진로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중고등학교를 보면 한번의 실패가 큰 좌절을 가져다줄 때가 많아요. 좌절을 겪은 학생들에게 회복 탄력의 물리적 시간이 주어지지 않죠.

임양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시민으로서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중요할 것 같아요. 융합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요.

전은영 직업교육을 하며 그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덕목이나 윤리보다는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고난이도의 기술들이 개발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이 있으실 텐데요.

임지연 저는 학부모들과 함께 마을여행을 개발하고 있어요.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속한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마을 안에서 계속 성장하고 그 안에서 직업을 찾고 생활해야 하니까요.

김성화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우리 모두가 소중하다는 걸 알 수 있었으면 해요. 무엇을 하더라도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건 변함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임양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아이들이 되어주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윤주 학교에 다닐수록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게 많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자라면서 점점 더 하고 싶은 게 없어지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게 지금 교육의 문제이겠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사람,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지연

임지연. 고1과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으며 ‘중랑행복교육’ 운영위원, 면목초등학교 학부모대표, 중랑구 초등학교 모니터단장을 맡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단체 ‘초록상상’ 건강팀, 학부모환경 동아리인 ‘에코맘’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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