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교육저널 그날

조선시대판, 할아버지 육아일기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육아일기 <양아록>

예나 지금이나 손주 사랑은 똑같았다. 근래 들어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며 자연히 손주를 할아버지, 할머니께 맡기는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양육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조선시대판 할아버지 육아일기 <양아록>을 통해 그 시절 할아버지의 육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자.

글. 최태성 선생님(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전 대광고등학교 교사) / 그림. 이철민

요즘 아빠들이 아들과 딸을 양육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많죠. 아빠가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은 여전히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TV에 소개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조선시대만 해도 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답니다. 조선시대는 기본적으로 남자 아이 양육은 남자가 책임집니다. 조선시대에는 7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랑채로 보내지는데요. 사랑채란 남자만의 공간이죠. 여기서 외부 손님들 만나고, 공부하고… 뭐. 그런 곳입니다. 이곳에서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 아이가 자라는 겁니다.

그 양육의 과정을 16세기 이문건이라는 할아버지가 꼼꼼하게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양아록(養 兒錄)>은 조선판 할아버지 육아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아록>은 이문건의 유배 시절 당시 쓴 기록입니다. 16세기엔 큰 사화가 있었죠.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까지를 4대 사화라고 하는데요. 향촌에 있던 선비 사림들이 큰 화를 입은 사건입니다. 을사사화로 인해 이문건 역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리고 유배지에서 손자가 태어납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무너지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줄 손자가 태어났으니까요. <양아록>에 보면 그 기쁨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오늘 저 어린 손자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며, 노년에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 지켜보리라” , “귀양살이 쓸쓸하던 차에 마음 흐뭇한 일이 생겨, 내 스스로 술 따라 마시며 자축하네” , “손자가 만약 장성하여 이것을 보게 되면, 아마 문자상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리라”.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사랑을 손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사랑받고 태어난 손자. 앞으로 어떻게 커나갔을까요? <양아록> 속 이문건의 손자 돌잔치부터 시작해보죠. 요즘도 돌잔치에 금반지 보내나요? 조선시대에는 금반지 대신 선물로 축시를 보냈습니다. 운치 있죠? 이런 건 좀 배워도 좋을 것 같아요.

돌잔치엔 뭐니 뭐니 해도 돌잡이가 최고 인기 코너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이 돌잡이 행사가 아주 인기였습니다. 이문건 손자는 과연 무엇을 집었을까요? 필묵을 잡습니다. 할아버지가 내심 바라던 물건이죠. 필묵을 잡았다는 것은 관리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는 공무원이 최고였으니까요.

손자가 두 살이 됩니다. 옛날에는 책을 읽을 때 리듬을 타면서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이렇게 했잖아요. 이 손자가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른들 책 읽는 것처럼 웅얼웅얼거립니다. 할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 문장을 업으로 삼으려고, 어릴 적부터 스스로 여기에 힘쓰려는 것 아니겠는가?” 이 모습 보니 문장을 업으로 삼는 관리 공무원이 되겠다고 굳게 믿고 계시네요. 너무나도 흡족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이 모습은 손주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겠죠.

손주는 쑥쑥 커나갑니다. 허허, 근데 이 손주 밥을 잘 먹지 않았나 봅니다. 요즘도 밥 잘 안 먹는 아이들 있는데 이때도 그랬나 봐요. 할아버지가 육아일기에걱정을 늘어놓으세요. 밥이 딱 나오면 이 손자 어떤 모습 보일까요? 밥 보면 먼저 졸기, 변소 간다 핑계대기, 입안에 물고 있기 등등 결국 할아버지 어떻게 하실까요? 화를 벌컥 내십니다. 그런데 육아일기 마지막에 뭐라고 쓰셨는지 아세요? “우리 손자 품성이 나쁜 게 아니라 장이 안 좋아 그런 것이다”라고요. 아~. 할아버지의 지극한 손자 사랑이 보이죠?

이제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글을 가르칩니다. 몇 살부터 가르쳤을까요? 지금과 비슷해요. 6세부터 가르칩니다. 할아버지가 직접 가르칩니다. 그런데 자식이나 손자 직접 가르치는 게 쉽지는 않아요. 16세기 할아버지도 힘드셨나 봐요. 이렇게 일기를 쓰셨어요. “머리가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아 보인다.” 어떡하죠? 그러니 화가 좀 나셨나 봐요. 조급하게 윽박지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할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걸” 이렇게 후회하시는 내용을 일기에 적어놓으십니다.

이 아이가 10세가 돼요. 지금으로 본다면 초등학교 3학년. 할아버지는 손자가 공부 열심히 해서 가문을 일으켜줄 것을 기대하셨는데 이 손자는 노는 걸 너무 좋아해요. 당시 놀이 기구 중 하나였던 그네. 이 그네 타는 걸 너무 좋아해요. 하루 종일 타요. 공부 하나도 안 하고. 할아버지 완전 화나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네 줄을 가위로 툭 끊어버리세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손자를 불러 종아리를 때립니다. 그리고 뭐라 적으시냐면요. “자포자기해야지 어찌 할 바 없도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끝에 이렇게 쓰세요. “우리 손자 기질이 나쁘지는 않다. 내가 더 살 수 있다면 알기 쉬운 데서부터 설명해주리라.”

그러나 더 살지 못하시고 손자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돌아가십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애쓰며 키운 그 손자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 뜻대로 과거 장원 급제하여 고위 관료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이런 게 나와요. 임진왜란 때 이 손자가 의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 공을 내리겠다고 하니 이 손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당연히 선비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곤 상을 받지 않고 돌아가버립니다.

바로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 이수봉이 그 손자입니다. 이 모습 보며 할아버지가 군자로 키우시려 했던 그 뜻. 그 뜻은 이루셨구나.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 모습 보시며 너무 행복해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녁은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듬뿍 담긴 대화법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는 저녁을 꼭 드십시오. 그 대화 역시 역사가 될 것이니까요.

최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사로 활동했다.
누적 수강생이 500만 명이 넘는 유명 강사로 《무한도전》,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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