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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한 걸음 다가가는 일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사진은 진실을 말하면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 역설적인 표현은 사진이 갖고 있는 양면성을 일컫는 것이다. 프레임으로 재단된 사실은 사실일까? 사실이 아닐까? 편집된 사실에 대한 비판적인 고민 그리고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꾸준히 이어져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한 걸음 다가가는 일, 이는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볼 때부터 시작한다.

글. 강시내 학부모(서울강명초등학교)

타인의 고통을 생각한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탈출하려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 해변에 엎드려 숨진 작은 아이의 사진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먼 곳에 사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의 마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일이다. 연민이라는 감정은 인간만이 가진 아름다운 본성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상을 편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가 지구 한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실에서 구경하며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이지 않는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자극적인 참사의 이미지를 마주할 때 우리가 갖는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수전 손택. 그 이름이 너무 무거워 왠지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글은 비교적 읽기 쉽다. <타인의 고통>은 25년 전 발표된 ‘사진에 관하여’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진을 다룬 책이 아니며 전쟁을 다룬 책이다. 사진이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이 단 하나의 이미지만 보여주기 때문에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설명이 없다는 것은 사진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우연성이다. 모든 예술 분야 중 유일하게 우연성이 크게 작용되는 분야가 사진이다. 의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는 우연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연’이라는 특징은 사진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사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조작에 대한 강한 불신을 주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진의 시작은 조작에서 시작됐다.

shot. 사진을 찍다 혹은 총을 쏘다.

흔히 세계 최초의 전쟁사진 작가라고 불렸던 로저 펜턴은 1855년 영국 정부에 의해 크림반도로 파견된다. 그는 전사자, 불구자, 환자의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영국 정부의 명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촬영기술로는 연출에 맞춰 움직이지 않은 채 다 같이 앉아 있거나 앉아 있어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마치 당시의 전쟁은 품위 있는 남성들이 즐기는 나들이처럼 표현되었다. 전쟁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질적으로 잘 알려진 전쟁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힌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다. 이때부터 사진작가의 도덕적 진정성이 사진의 핵심이 되기 시작했다. 가감 없이 드러난 잔혹한 전쟁의 참상들은 미국에서 엄청난 반전운동을 일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사진의 윤리성, 혹은 사진작가와 보도가 갖는 윤리적 역할을 생각해봐야 한다. 바로 이곳에 고통 받는 자가 있다고 바깥 세상에 알리는 것이 사진작가의 중요한 윤리적 역할이며 그 역할에 충실한 사진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각성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전체가 아니라 제한된 사실이라는 점이다. 사진 안에는 사실이 들어 있지만 그 사실도 사진작가에게 선택되고 편집된 사실이다.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바라볼 때는 그 사진 안에 있는 다른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심각하게 훼손된 육체가 담긴 사진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이다. 보도사진의 이런 관행은 다른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든 오랜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기아나 내전으로 인해 고통 받는 잔혹한 사진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곳이 아닌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여겨지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 세상과 멀리 있는, 마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 쉽게 말해 가난한 나라에서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백인들의 눈에 찍힌 잔혹한 사진을 수없이 마주하며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내렸던 고정관념을 바라봐야 한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쉽게 소비된다. 예술작품이 박물관에 모셔지듯 무수히 많은 사진 특히 집단학살을 담아놓은 사진은 수집되어 박물관이나 비슷한 시설에 전시되고 보존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고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계 흑인이 많이 살고 있을 이 도시에 백인이 흑인을 학살했던 역사를 기록한 흑인 노예사 박물관이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쟁 사진과 이것들의 기록을 모아놓은 기념관이라는 것이 전쟁을 기억하고 역사를 반성하기 위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내가 잘못하지 않은 곳에서 행해진 악을 전시하며 연민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며 느끼는 연민. 고통 받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이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 또한 연민의 감정은 나의 무능력과 더불어 무고함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과연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윤리적 자세가 될 수 있을까. 2014년 이후 우리는 모두 마음 깊은 곳에 잊지 못할 참사의 사진을 한 장씩 간직하게 되었다. 이것을 다만 연민의 감정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기억은 연민의 감정이 아닌 죄책감과 함께여야 한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윤리적 역할이라고.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154p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저 | 이재원 역 | 이후 펴냄

수전 손택의 저서 <타인의 고통>은 9.11 테러에서부터 시작된 책이다.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진 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의 정세에 대해 고민하는 이 책은 ‘사진’이 있는 전쟁과 없는 전쟁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큰 간극이 있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토리얼리즘이 꽃피우고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생산하고 소비해왔는가? 이러한 관음증 적인 세태에 대해 수전 손택은 강하게 비판하고 우리가 앞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라고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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