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내 고민의 열쇠는 실은 내가 쥐고 있는 걸

독일 영화 '토니 에드만'

글. 이중기

이네스는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한다. 기업이 M&A나 구조조정 시 필요한 ‘근거’를 컨설팅해주는 일이다. 즉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해주고 돈을 받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네스의 얼굴은 언제나 어둡다. 비즈니스 자리에서 짓는 ‘영업용 미소’조차 어두워 보인다.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있는 CEO와의 미팅자리에서 갑자기 이네스의 아빠 빈프리트가 등장한다. 당황한 이네스에게 아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토니 에드만입니다. 사업가이자 코치이죠.”

영화 <토니 에드만>은 예측 불가능한 작품이다. 아빠 빈프리트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다정하고 따스한 아빠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빈프리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툴다는 것이다. 중요한 계약 자리에서 분위기를 망치고, 회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행동을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빈프리트가 이네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지금 네 인생은 행복한 거니?”

빈프리트의 말에 이네스는 콧방귀를 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물음이 무겁게만 다가온다. 자신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 실은 반대로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음은 일상으로 인해 단절되고 그 물음이 희미해질 때마다 아빠 ‘토니 에드만’은 등장해 딸에게 너의 인생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일깨운다.

수많은 멘토의 삶의 해법이 넘쳐나는 시대다. 삶의 해법이 넘쳐난다는 건 수만 가지 방법이 길을 잃은 청춘들에게는 알맞지 않다는 역설 그 자체다. 삶의 해법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이는 멘토도, 우상도, 영웅도, 심지어 토니 에드만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결국 자기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 이를 위해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혹은 옥죄고 있는 일상을 벗어던져야 한다. 놀랍게도 이네스는 자신의 일상을 벗어던져버린다!

하지만 영화는 이네스의 장밋빛 내일을 그리지 않는다. 벗어던지는 것은 시작이고 그 다음부터의 과정도 결코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작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 변화의 시작을 만들어낸 이네스의 얼굴엔 더 이상 어둠이 없다. 실 없는 아빠 빈프리트가 자주 사용하는 장난감 이빨을 자신의 이에 끼우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네스는 더 이상 이전까지의 이네스가 아니다. 조금 더 자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나. 영화는 그렇게 또 다른 시작점에서 끝이 난다.

본 영화는 18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학생과 관람하실 경우 충분한 사전 지도 이후에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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