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현장

선유중학교 학생회에 ‘돈’이 생겼다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친구 만나기도 뭐해요. 생활하면서 용돈이 있고 없고 차이가 정말 커요.”

서울 선유중 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목원 학생(3학년)은 지난 4월 21일 오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본관에 있는 학생회 회의실에서다. 친구가 아무리 많고, 놀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얘기다.

글·사진. 윤근혁(서울시교육청 연구교사)

* 학생회의실에 있는 학생회 일정표가 정겹다.

“놀려고 해도 돈 없으면 ‘말짱 도루묵’”

대중을 대상으로 한 사업도 마찬가지다. 다 아시듯 돈이 없으면 사람과 의지가 있더라도 사업하기 어렵다. ‘맨땅에 헤딩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사업의 3요소는 사람과 의지, 그리고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선유중 학생회엔 돈이 생겼다. 그것도 사업비 500만 원.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해준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전체 중고교에 학생참여예산으로 200만원, 학생회 운영비로 100만원을 대준다. 초등학교 학생회엔 50만원을 준다. 2년 전부터 해온 시범 사업을 전체학교로 확대한 것이다. 게다가 선유중은 학생자치모델학교로 뽑혔기 때문에 학생회 운영비로 200만원을 더 지원받기로 했다.

“학생참여예산 200만원 갖고는 모자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교육청에서 학생회 운영비로 300만원을 더 주시니 마음이 놓여요.”

이 학교 백상준 학생회장(3학년)의 말이다. 지난해에 학생회 부회장을 맡았던 백 회장은 “학생회에서 쓸 돈이 없으면 행사도 치를 수 없고 공약도 실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돈이 있어야 학생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선유중 운동장엔 가로 6미터 세로 4미터 크기의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 그림엔 고래도 보이고, 노란 풍선도 보이고, 노란 배도 보였다. 노란 리본 그림 옆엔 ‘REMEMBER 2014. 04. 16’이란 글귀도 적혀 있다. 바로 세월호 추모 걸개그림이다.

* 서울 선유중 운동장에 설치된 걸개그림 펼침막. 전교생과 함께 이 그림을 만든 곳은 바로 이 학교 학생회다.

이 걸개그림을 만든 이들은 선유중 학생 500여 명 전체다. 1, 2, 3학년 전체 18개 반에 밑그림이 있는 천을 나눠준 뒤 학급별로 색깔을 칠했다. 그런 뒤 세탁소에 맡겨 이 천을 모두 이었다.

이 과정에서 걸개그림 도안공모전, 우수참여 학급 시상, 걸개그림 포토존 사진공모전 등의 행사를 펼쳤다. 이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최하고 책임진 곳은 선유중 학생회다.

이런 행사를 치르려면 일단 필요한 것이 학생회 임원들의 ‘노력봉사’다. 백 회장과 최 부회장, 그리고 정지혜 부회장(2학년)이 앞장을 섰다. 그리고 행사부 주아와 상진이를 비롯하여 생활질서부 효리와 혜빈이, 자치법정부 수빈과 혜란이, 편집부 현민과 현우 등 13명의 임원이 힘을 보탰다.

이런 노력봉사 말고도 필요한 것은 바로 돈이다.

* 학생회 백상준 회장(왼쪽)과 최목원 부회장이 기자와 만나고 있다.

“천과 물감 사고 공모전 상품주고…” 학생회도 돈이 필요해

천과 물감을 사고 세탁소 공임비를 내야 한다. 50여만원이 들었다. 세월호 도안공모전 수상자에겐 문화상품권 1만원, 우수참여 학급엔 2000원짜리 추모 팔찌 27개, 걸개그림 포토존 수상자에겐 상품으로 ‘초코파이’를 줘야 한다.

이 돈을 모두 학생회가 부담했다. 학생참여예산제에 따라 떳떳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에 ‘돈을 지원해 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 학교에서 학생회 업무를 담당하는 장주연 교사는 “이번 세월호 행사를 할 때도 학생회에서 세탁소 등에 ‘돈을 내라’고 하면 제가 지출을 해왔다”면서 “학생회 임원들이 회의를 통해 지출 계획을 세우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잘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냥 도와주는 식으로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학생회 사업 속엔 장 교사의 보이지 않는 지도가 스며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참여예산제가 학생회의 자발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학생회가 만든 ‘세월호 걸개그림 포토존 사진 공모전’ 포스터.

지난 4월 4일, 학생회 임원 13명이 학생회의실에 모였다. 제2차 집행부회의를 열기 위해서다. 이번 회의의 안건은 ‘2017학년도 학생참여예산 사용 계획서 작성하기’였다.

이날 회의록을 살펴보니 이 학교 학생회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주는 200만원 돈의 사용처를 대략 잡아놓았다.

“학생회 공약사업에 따른 연습실 벽면 거울 3개 구입과 설치: 100만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업 부스 운영비: 15만원, 선유창업마당 학생회 부스 운영비: 25만원, 선유기네스 행사준비물 4만원…”

모두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다. 학생회 사업이기 때문에 학생참여예산으로 쓰겠다는 것이리라.

10여 년 전만해도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회의 역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용병’학생회라는 것이다. 교장과 부장교사가 학생들을 동원할 일이 있으면 학생회 간부들에게 슬쩍 지시했다. 학생회 간부들은 학생들 ‘꼬시기’에 나섰다. 칭찬과 상장은 이런 활동에 대한 특혜였다. 학생회가 이른바 대리통치기구로 이용당한 셈이다.

하지만 혁신교육의 시대, 이런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학생회가 예산운용권까지 갖게 된 지금은 ‘용병’학생회는 박물관 신세가 되었다.

‘더불어 숲이 되는 학교’를 만들려면...

학교라는 숲속엔 ‘교복 입은 시민’인 학생들이 제일 많다. 그러하기에 교사참여예산제, 학부모참여예산제에 이어 학생참여예산제가 생긴 것은 당연한 일.

이 학생참여예산제는 올해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충북도교육청 등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학교라는 ‘더불어 숲’을 위해 물도 주고 거름도 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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