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현장

학생 앞장세운 학교들, ‘뒷전’ 어른들은 왜 박수쳤을까?

서울금나래초와 금호고, 도선고의 색깔 있는 개교식

학교 공식 행사에서 ‘학생들 앞장세우기’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지역 초중고 얘기다.
사실 상당수의 학교에서는 그 동안 개교식과 졸업식, 입학식 등 큰 행사 때마다 앞자리는 교육감이나 구청장, 국회의원 등 ‘내빈들 차지’였다. 심지어 이들의 자리를 무대 위로 배치한 학교도 제법 있었다. 이에 따라 학교 주변에서는 다음과 같은 볼멘소리도 오갔다.

글. 윤근혁(서울시교육청 연구교사)

교육감은 뒷전? 아이들 앞장세운 학교들

서울금나래초 개교식 / 사진. 윤근혁

“아이돌 스타도 아닌데 왜 ‘내빈’들은 무대 위에 줄곧 앉아 있을까? 이를 올려다봐야 하는 아이들도 곤혹이고, 무대에 있는 내빈들도 곤혹이다. 무대에 오른 탓에 행사 시간 내내 등짝이 가려워도 시원하게 긁기도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지난 5월 14일 서울금나래초가 일을 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뒷전으로 앉힌 것이다. 학생들을 맨 앞에 앉히기 위해서다. 물론 구청장 등 내빈 자리 또한 모두 학생들 뒤였다. 이 학교 강당에서 열린 학교 해오름식(개교식)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 남부교육장, 금천구청장, 금천구의회 의원들도 모두 아이들 뒷전에 앉혔다. 이 학교 교직원들의 의자도 아이들 뒤에 있었다. 해오름식의 주인인 아이들을 앞장세우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10시 금나래초 강당에는 이 학교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차성수 금천구청장 등 1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무대 바로 앞에는 일곱 줄의 의자가 부채꼴 모습으로 놓여 있다. 이 학교 학생들 200여 명이 이 의자에 앉았다. 이어 여덟 번째 줄에 조 교육감을 비롯한 이른바 ‘내빈’들이 자리 잡았다.

“학생들을 맨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개교식의 주인공이고 학교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이 학교 문병화 교감의 설명이다.

몇 해 전부터 개교식 자리 배치 문제로 몇몇 학교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아이들을 맨 앞에 앉히자’는 제안을 관리자들이 거부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을 앞에 앉히고 교육감을 뒤에 앉힌 개교식은 금나래초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1시간쯤 걸린 행사가 끝난 뒤 조 교육감에게 “뒷전에 앉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뒤에 앉아서 학생들을 지켜보니까 아주 좋았다. 오늘은 금나래초에서 역사적인 날인데, 그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다른 학교들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내빈들을 양쪽 옆에 앉힌 도선고와 금호고

금호고 개교식 / 사진. 윤근혁

개교식에 참석한 안선우 학생(5학년)도 “선생님들이 우리가 주인이라고 하면서 앞에 앉게 해주셔서 정말 주인이라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개교식을 봐서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 배장혁 학교운영위원장도 “지금 시대적 분위기는 참여와 혁신, 소통이 아니냐”라면서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학생들을 행사장 앞에 앉히는 교직원들의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졌다”라고 밝혔다.

당연히 서울금나래초의 개교식 자리 배치는 교육계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그런 뒤 일주일쯤 뒤에 서울의 두 고교도 개교했다. 지난 5월 22일과 24일에 각각 연 금호고와 도선고의 개교식이 그것이다.

두 학교도 학생들을 앞장 세웠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앞쪽 가운데 자리를 ‘학생 차지’로 만든 것이다.

금호고는 어른들 자리를 중앙무대 양옆으로 이동시켰다. 왼쪽은 내빈석, 오른쪽은 교사와 학부모 자리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자리는 무대 왼쪽 구석의 뒤쪽이었다. 이 학교 조호규 교장도 조 교육감 주변에 앉았다.

도선고도 금호고처럼 학생들을 중앙에 앉혔다. 금호고와 다른 점은 조 교육감을 학생 중간에 앉혔다는 것이다. 학생의 눈높이에서 학생과 함께 숨 쉴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이 모이는 관급 행사에서는 심심치 않게 얼굴을 붉히는 일이 터진다. 원인은 무엇일까? 대개 의전문제 때문이다. 뒷자리에 앉혔다느니, 연설 기회를 주지 않았다느니, 먼저 소개를 하지 않았다느니, 이런 것이 실랑이 꺼리가 되는 형편.

이런 속에서 이번에 개교식을 연 3개교의 자리 배치에 얼굴 붉히는 어른들은 없었다. 오히려 행사에 참여한 어른들은 대부분 박수를 쳤다. 박수친 어른들이 바로 박수 받을만한 품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선고 개교식 / 사진. 서울시교육청 김영호

대접받은 사람만이 대접할 수 있어

한 누리꾼은 금나래초 관련 기사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이런 형식(자리배치)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실에서, 수업 과정에서 청소년들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제대로 대접해 주는 일이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는 마시라. 대접받은 사람만이 대접할 수 있다. 대접받은 학생들은 즐겁게 어른들을 대접하는 사람이 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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