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질문을 던질 의무와 대답해야 할 책임

호스트 부르거,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

1940년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들은 독가스실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어야 했다. 빨간 구두의 주인공은 젊고 건강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주인 잃은 신발들은 왜 이런 학살이 벌어져야 했는지 묻고 있다.

글. 이상수(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아우슈비츠의 빨간 구두 Ⓒ김봉규 2017

오늘의 문제에 눈뜰 때 내일의 바탕이 마련된다

독일 작가 호르스트 부르거(1929~1975)의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은 히틀러의 나치 통치가 종말을 고한 뒤, 자식 세대가 히틀러 치하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을 모티프로 삼은 소설이다. 가족이 함께 혹은 교사가 학생들과 읽고 대화의 자료로 삼기에 좋은 작품이다.

작가는 십대 청소년일 때 히틀러가 벌인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이야기는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발터 인드리히라는 사십대의 아버지가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아마도 작가가 사십대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들과 실제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 성싶다. 히틀러 치하 나치즘의 광기와 침략 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아버지 세대들은 그 시대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져 묻는 자식 세대의 질문 앞에서 어느 시대의 아버지들보다 답이 궁했을 것이다.

“히틀러에 대해 물으면 우물쭈물 넘어간다. 그때는 아직 어렸고 유대인에 대해서나 강제 수용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대답한다. (중략) 만일 히틀러의 세상이 계속되었더라면 세상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때는 비행 소년, 범죄자, 마약 상습자, 무정부주의자 같은 것들이 없었고, ‘질서’라는 것이 있어서 그에서 벗어나면 틀림없이 혼쭐이 났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인륜적 국가범죄로 얼룩진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사람들은 그 시절을 합리화하거나 얼버무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광란의 시대에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피해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죄의식이란 항상 기억의 문제”라며, “바로 생생한 오늘의 문제에 눈뜰 때 비로소 내일의 바탕이 마련된다”고 말한다. 올바로 기억하기 위해 자식 세대는 불편한 질문을 던질 책임이 있다. 그리고 어버이 세대는 그에 대해 솔직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낼 수 있다.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되는 가치관의 균형추 찾기

작품 속에서 발터의 아들은 모두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는 유대인이 600만이나 학살당하도록 독일 공민들은 왜 가만히 있었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이다. 둘째 질문은 세상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은 그렇다 치고, 왜 어른들까지 나치스의 광란에 빠져들었느냐는 것이다. 셋째 질문은 왜 다들 ‘자발적으로’ 나치스의 군대에 입대했느냐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은 모두가 다 히틀러에 복종하고 전쟁을 치렀으면서 히틀러가 패망하자마자 왜 다들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양 자신의 지난 행위를 부인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체주의 광기의 시대에 당신들은 어디 있었으며,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왜 반인륜적 학살에 눈감았으며, 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느냐는 물음이다. 왜 부도덕한 전장에 자발적으로 달려갔으며, 왜 히틀러가 몰락한 뒤에도 뉘우치지 않았느냐는 질타이기도 하다. 이런 질문은 역사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아벨이 피를 흘릴 때 카인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며, 나라가 농단당할 때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 발터는 설명 대신 자기 체험을 들려준다. 히틀러 유겐트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정상 취급을 못 받던 학창 시절 이야기, 십대 소년들까지 군에 자원입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의 광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이 불편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대신한다. 어조는 담담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고백이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 발터처럼 이 고통스러운 질문과 대면하고 진솔하게 답하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난날을 깡그리 감추고, 나치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싸웠노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중략) 중요한 전쟁 범죄자들까지 나중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히틀러에 무조건 복종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어떠한 비겁한 말이라도 서슴지 않았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쓴 것은 반성 없는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분노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 아버지 발터는 열여섯 살이었다. 발터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는 미국에 억류당해 있다가 돌아온다. 아마도 전범이었을 것이다. 발터의 아버지는 “이제 와서 히틀러를 쓰레기 취급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위”라며, 자신은 “지금도 나치스”라고 선언한다. 아버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발터는 “주위에서 갑자기 더러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며 성찰하지 않는 아버지 세대에 대해 분개한다.

이 작품은 히틀러 시대를 단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히틀러 시대의 광기는 이미 ‘역사’가 되었고, 문제는 오늘의 삶이 그 광기의 시대와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데에 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는 그 광기 속을 통과해온 사람들이다. 역사의 평가가 개인의 인식과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이 불일치의 괴리가 크다면 공동체의 가치관은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 공동체의 존속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 가령 히틀러에 대한 역사의 단죄가 이미 끝났는데 “나는 아직도 나치스”라는 늙은 아버지들이 무수히 돌아다닌다면 독일이라는 공동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자식 세대는 거듭 불편한 질문을 용기 있게 던져야 하고, 어버이 세대는 광기의 숙취에서 깨어나 진실과의 고통스러운 대면을 거듭해야 한다. 불편한 질문이 시작이다. 불편함은 죄책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죄책감을 느낄 때 비로소 성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동체는 가치관의 균형추를 찾아가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우리는 충분히 묻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공동체에서 벌어졌던 민족 반역의 역사, 식민지 시기와 친일, 국가폭력, 부당한 권력 남용과 농단에 책임이 있는 어버이 세대에게 충분히 불편한 질문을 던져왔는가. “나는 아직도 나치스”라는 수준으로 일제 혹은 독재 치하를 그리워하는 일부 어버이 세대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질 의무’를 우리 세대는 충분히 수행했는가. 질문조차 없는데 답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청산되어야 할 것이 청산되지 않고 지연되어온 역사에 지쳐 혹시 우리 사회가 이 모든 질문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질문이 부족하고, 진실과 대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며, 성찰과 답변이 부족하다. 질문에 공소시효는 없다. 이 질문은 법정이 아니라 공동체와 양심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질문이 절실한 사회이다.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

호르스트 부르거 저 | 김용신 역 | 중원문화 펴냄

<아버지의 네 가지 비밀>은 저자 호르스트 부르거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겪었던 전쟁 이야기이다. 히틀러 통치시대의 독일에서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 질문하고, 거기에 대해 아버지가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치의 폭압에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 못한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들에 대한 반성이자 회고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