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주어진 미래가 아닌 손에 쥔 미래로 만드는 것

미국 영화 <히든 피겨스>

글. 이중기

도로시는 잔뜩 긴장해 있다. 정규직 채용 여부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전산팀원 중 팀장인 도로시만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대답에 도로시는 정규직 채용을 단칼에 거절한다.

이 이야기는 1950년대 나사(NASA)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소련과 우주탐사 경쟁에 박차를 가하던 미국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 ‘인재’는 백인 그리고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백인이나 남성이 아니면 그 능력을 오롯이 발휘하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사는 버스 좌석, 공공도서관 등 흑인과 백인에 대한 분리 정책이 강력하게 실시되던 버지니아 주에 위치해 있었다.

도로시는 어느 날 나사에 낯선 기계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컴퓨터’가 나사에도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수재들로 이루어진 나사에서도 최신문물인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도로시는 컴퓨터를 공부하는 것이 미래에 필요로 하는 능력임을 깨닫고 이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도로시는 자신은 물론 팀원들에게도 컴퓨터를 공부하도록 독려했다. 그 결과 도로시는 나사에서 첫 번째 컴퓨터 전문가로 자리 잡았고, 팀원들도 비로소 제대로 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차별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던 흑인이자 여성이었다.

영화 속 사례처럼 오늘까지 유용하던 가치들이 내일에도 통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도로시는 전산원이었다. 우주선 발사 및 유영에 필요한 수많은 수학 계산을 일일이 수기로 풀어내는 일이 업무였다. 도로시는 컴퓨터가 이를 대신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컴퓨터는 모름지기 사람이 작동해야 움직인다는 것을 도로시는 간파했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 더욱 가속화되고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더는 낯설게 들리지 않는 이 시대에 미래에 어떤 능력이 유효할 것인지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는 곧 교육의 고민과도 직결된다. 앞으로 교육은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까? 기술이 아닌 예술을 가르쳐야 할까? 가르치는 것이 아닌 가리키는 것이 되어야 할까? 미래교육을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능력을 가리킨다. 바로 사고의 유연함이다.

영화에서 도로시는 빼어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지평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뿐이다. 이러한 ‘사소한 사고의 전환’은 도로시와 팀원들의 미래를 바꾸어놓는다. 특히 백인 여성 직원이 도로시에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 장면은 기존의 안락한 가치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않는 이상 ‘장밋빛 미래’란 요원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람은 편안하지만, 영원히 요람에서 사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은 비단 영화에서만 통용되지 않는다. 바로 지금 우리가 내일 내디딜 한 걸음이 이토록 조심스럽고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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