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버릴 씨앗은 없다

글. 장옥주 선생님(서울강솔초등학교)

여러 해 교직생활 중에 6학년을 맡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6학년을 맡아보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번번이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올해 갑자기 6학년을 맡게 됐다. 물론 내가 지원한 것이긴 하지만, 개학이 다가오자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누군가는 6학년은 알아서 척척 하니 좋다고 말해주었고, 누군가는 6학년은 뭘 해도 시큰둥하고 흥미 없어 한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걱정 속에 시작한 새 학기. 의외로 아이들은 따뜻하고 귀여웠으며, 학교생활에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돌림노래도 즐거워하며 열심히 부르고, 수업 마칠 때 읊는 시도 군 말 없이 암송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 가운데 한 아이가 첫날부터 눈에 띄었다. 이렇게 하자면 저렇게 하고, 저렇게 하자면 이렇게 하고, 고집을 한번 내면 꺾기가 어렵고, 사소한 일로 교사인 나와 계속 싸우려 들었다. 동현(가명)이는 마치 어른 또는 여교사에게 엄청난 상처를 받았거나 해서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지 않으려 애쓰는 것같이 보였다. 동현이에게 뭔가 하게 하려다가 이 아이의 고집이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막히기를 여러번, 처음에는 모두가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몇 번 더 반복되자 그때마다 나는 더 초라해지고 교실 분위기는 이상해졌다. 아이들과 늘 가깝게 소통하고 싶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즐겁게 지내고 싶었는데, 동현이한테는 그런 모습이 만만하게 보였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에 대한 몇 번의 단호하고 매서운 지적이 있고 나서야 동현이는 나에 대한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그만두었고, 더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동현이는 여전히 친구들 사이에서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나와는 부딪히지 않았기에 “그래도 귀여워”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현이를 여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말로만 귀엽다고 하고, 그 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4월의 어느 날, 우리 반은 학교 뒤뜰에 분양받은 밭에서 모종을 심고 있었다. 텃밭 가꾸기를 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했을 때 다른 반은 안 하는데 왜 우리만 해야 하냐며 투덜거리던 아이들도 밭에 나가니 열심히 땅을 파고 모종을 심었다. 밭은 너무 작고 모종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한테 너무 촘촘히 심으면 다 자라지 못하니 간격을 두어 심고 남는 모종은 심지 말고 두자고 했다. 그러니 자연히 싱싱한 모종들만 골라 심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유독 동현이만은 모종을 촘촘히 심고 있었는데, 그 모종 중에는 시들시들 말라가는 것이 여럿 있었다. 그러지 말고 튼튼한 모종으로 심자고 해도 소용없었다.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동현이는 마지막 시들어 빠진 상추를 두둑 한 귀퉁이에 심고 있었다. 곧 죽을 거라고, 심어봐야 소용없다고 하니 “그렇다고 버리면 불쌍하잖아요” 한다.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동현이는 저런 아이였구나, 친구들한테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도 하지 않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난 시든 모종을 밭에 거름이나 되라며 뒤집어 엎어놓고 왔는데, 다른 이들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던 동현이는 버림받는 상추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텃밭에 나가보았다. 곧 죽을 거라던 상추들이 두둑 끄트머리에서 아주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상추들을 보면서 아이들도 저렇게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관심을 갖고 물 주고, 햇빛만 비춰주면 잘 자랄 텐데….

그 이후로도 동현이는 여전히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들로 우리 반은 회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달라지지 않은 동현이를 보는 나의 눈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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