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교육

평평해진 운동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일반고 변화의 방향 생각하기

“위기의 일반고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일반고를 위기로 몰고 간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 해결에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일반고 혁신의 필요조건에 불과할 뿐이다. 흙을 더 쌓고 다져서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든 그 이후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진정한 혁신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의 방향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글. 백병부 연구위원(경기도교육연구원)

변화의 중심에 학생을 두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반고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고사해 오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일반고의 위기가 우리 사회 전반의 위기로 전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교 서열화 체제 속에서 학교 유형에 따라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달라지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은 학교 간 학업성취 격차로 이어져 학교가 계급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일반고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학교 구성원들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상적 만남의 깊이를 심화했으며, 학생들의 수업참여도를 제고하기 위해 수업 방법을 개선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로 이와 같은 노력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감동적이지만 따라 하기에는 부담스러웠으며, 교사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웠다. 일반고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래서 결과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가용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버티고 있었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이와 같은 조건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반고, 특목고, 자사고 입시를 동시에 실시할 것이며,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할 것을 공약했다. 또한 수능의 절대평가화, 고교학점제 도입 등도 공약했다. 이 공약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수능 대비를 위한 훈련에 급급했던 고등학교 교육이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조건의 변화가 일반고의 혁신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단기간에 구체화되기를 바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고는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는 근본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학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 이상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로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입시 때문에 문제풀이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선생님들의 항변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에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할 것이다.

평평해진 운동장에서 해야 할 세 가지

다음의 세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첫 번째는 학교가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등 최근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소수 엘리트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들의 영향력이 공적 통제하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제어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민주적인 공론의 장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기술 엘리트에 의한 과두 체제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일상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까지도 주권을 가진 행위자로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적 욕망이 공론의 장에서 정제될 때 공동체가 지속 가능해진다는 것을 일상을 통해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학교에서 다양한 상상과 실험이 가능하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망에 의해 스스로를 박제화해왔다. 부모의 철저한 계획하에 아이들의 일상이 통제되고 있고,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양육과 교육이 미래사회에서는 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사회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것, 인간적 감수성과 예술적 심미안이 필요한 것, 그래서 다양한 상상과 실험이 필요한 것이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다양한 상상과 실험의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 실패가 용인되고 권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인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상과 실험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으로 학교가 재편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와 지역사회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학교는 지역사회와 괴리되어 있다. 입시교육을 잘한다는 학교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해져서 학교는 지역사회 안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미래사회의 변화 속에서 요구되는 교육은 학교만의 힘으로 해낼 수가 없다. 배움이 학교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전체가 교육생태계로 재편되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시민적 통제권을 강화하여 학교가 시민들의 학교로 재편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일반고 정책은 일반고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반고 혁신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이 과정에서 교사를 비롯한 교육전문가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상당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교육 실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객관적 성과 제시, 실험에 참여한 학생에 대한 교육적 안전망 제공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혁신학교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이 일을 수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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