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교육저널 그날

세한도로 돌아보는 사제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과 도움만 받는 일방적인 관계일까? 문인화 최고의 걸작 세한도에 담긴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릴 당시 자신의 상황과 주변인들에 대한 감정 그리고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나무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김정희가 이상적을 위해 그린 세한도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통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글. 최태성 선생님(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전 대광고등학교 교사)

겨울이 온 뒤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하얀 눈밭 위에 작은 집 한 채,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거친 필치로 그려낸 소나무와 잣나무. 어딘지 모르는 쓸쓸함과 황량함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 세한도입니다.

김정희는 고증학 연구에 있어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추사체라는 명필을 남겼고 금석학 분야에서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진흥왕 순수비 중 하나인 북한산비를 찾아내기도 했었죠. 그리고 문학과 예술적 측면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19세기 천재 학자였죠. 이 세한도 역시 19세기를 대표하는 수묵화이며 국보 180호로 지정이 되어 교과서에도 실린 그림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이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그의 제자인 이상적을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김정희는 왜 이 쓸쓸한 그림을 제자에게 남겼을까요?

김정희는 18세기 말 꽤나 권세가 있는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조가 무척 사랑한 딸인 화순옹주의 증손자였죠. 그의 아버지 김노경도 조정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던 인물입니다. 34세에 과거에 급제한 김정희는 조정의 각종 요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합니다. 당시 세자였던 효명세자의 스승이 되면서 안동 김씨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효명세자… 아시죠? 박보검 씨가 효명세자로 나와서 많이 알려졌죠.

그러던 중 효명세자가 죽자 김정희 부자의 운명 역시 위태로워집니다. 세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부친 김노경이 안동 김씨 세력에 의해 탄핵을 받고 유배됩니다. 이후 김정희 부자는 한동안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되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김정희 역시 안동 김씨 세력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요. 김정희는 유배형 중에서도 극형인 위리안치형을 받고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위리안치형이란 죄인이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벌이죠.

김정희는 머나먼 섬 제주도에서 가시 울타리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귀양살이를 하는 김정희에게 유일한 낙은 책 읽기였습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서책을 구하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죠. 그런 그에게 때마다 찾아와 서책과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그의 제자 이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중인 신분의 역관이었습니다.

권력이 있을 때는 많은 사람이 찾지만, 권력을 잃고 난 뒤에는 한없이 소외되기 마련이죠. 김정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부친이 권력에서 밀려나 귀양을 가게 되면서부터 김정희는 고립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정희와 친분을 유지한다는 것은 당시 집권세력인 안동 김씨의 눈 밖에 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제자 이상적만은 변함없이 김정희를 대했고 김정희가 귀양을 간 이후에도 한결같이 그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역관으로서 북경에 다녀올 때마다 어렵게 구한 서책을 김정희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지금처럼 택배가 있는 것도 아닌 그 시절. 중국에서 책을 구해 수레에 싣고 조선으로 들어온 후, 다시 배에 올라 강을 끼고 내려왔을 이상적. 그 앞에 놓인 바다. 다시 배에 싣고 그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들어가, 다시 수레에 책을 싣고 가시 울타리에 갇혀 있는 스승을 뵙는 모습. 상상만 해도 감동이 밀려옵니다.

김정희는 이상적의 도움으로 끝까지 세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학문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죠. 김정희는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세한도를 남깁니다. 이상적에 대한 김정희의 마음은 세한도에 덧붙인 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림을 다시 한번 찬찬히 볼까요? 가운데 집이 하나 있고 그 옆에 굵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이제 곧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불안합니다. 겨우 가지 하나에 위태한 생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정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로해 보이는 나무 옆에 씩씩하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으며 싱싱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는 나무. 이 나무가 바로 제자 이상적일 것입니다. 쇠약한 김정희가 지금 제자 이상적에게 기대며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 스승의 마음. 그러나 집 건너편에 있는 나무들은 그저 바라만 볼 뿐입니다. 이제까지 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이 김정희가 죄인이 되자 그저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김정희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는 듯합니다.

불우한 상황에 놓인 스승을 끝까지 지킨 제자. 그런 제자에게 세상에 없는 명작을 남긴 스승. 두 사람의 그런 마음을 알고 나니 세한도가 마냥 쓸쓸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사로 활동했다. 누적 수강생이 500만 명이 넘는 유명 강사로 <무한도전>,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했다. 현재는 <역사기행 그곳> 에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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