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세계체제의 재편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넓은 시선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우리는 얼마나 넓은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까? <유라시아 견문>의 저자는 지금의 세계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이동한다는 식의 패권적 세계체제가 끝나고 ‘유라시아 재통합’의 길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 사회 역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 미래를 위한 힘찬 출발을 시작했다. 앞으로 또 다른 ‘백년’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더욱 넓은 시선으로 세계를 인식해야 할 때이다.

글. 권종현 선생님(우신중학교)

근대화에 관한 답답함을 뚫는 통쾌함

퍼즐 조각을 낱개로 군데군데 맞추다 보면 전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짜릿함과 더불어 퍼즐 맞추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공부에도 그런 쾌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느낌이 바로 그랬다.

역사와 사회문화에 관심을 가진 후 주마간산으로 몇 권의 책을 읽으며 항상 석연찮게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근대화 프로젝트’의 한계가 그것이다. 식민사관을 문제 삼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대응인 발전사관, 진보사관, 민중사관, 유물사관 등도 결국은 식민사관과 같은 뿌리와 열매를 공유하는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심지어는 포스트모던이라 부르는 탈근대 또는 후기근대조차도 큰 틀에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진보/보수, 좌/우, 유물/관념, 근대/전근대, NL/PD 등의 프레임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막연한 답답함이 있다.

‘근대’로의 지향은 좌/우를 막론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를 견인하는 막강한 힘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 이성과 계몽, 개인의 발견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 이념의 절대 강자다. 시비를 걸었다가는 봉건, 전근대, 전체주의로 회귀를 도모하는 시대착오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필자처럼 독서가 얕은 이가 막연한 느낌과 섣부른 논리로 얘기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하다. 근대화에 관한 막연한 답답함….

이 책을 통해 그 답답함을 뚫는 통쾌함을 얻었다. 우리의 역사 인식이라는 것이 좌/우, 진보/보수 이념을 넘어 동/서, 고(古)/금(今), 농경/유목, 대륙/해양, 화(華)/이(夷), 중심/변방, 문명/야만, 국가(또는 민족)/지역, 종교(기독교/유교/불교/이슬람교) 등에서 얼마나 외눈박이로 분절된 사고를 하며 살고 있는지를 통찰하게 만든다. 근대사관이 분절시킨 세계사였다. 전에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는 책을 통해 유라시아를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여 인식해야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으로 그 생각이 더 심화되고 구체화됐다.

유러피언 드림과 중국몽의 결합

저자는 40세의 젊은 학자다. 국내에서 사회학부를 졸업하고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중국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미국 UCLA 한국학연구소, 베트남 하노이 사회과학원, 인도 네루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등에서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가 다니며 공부한 장소를 보니 동서고금을 재구성하여 유라시아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가능한 이유가 이해가 간다.

이 책은 일종의 견문록이다. 단순 여행기가 아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가 이런 형식일 것이다. 저자는 3년의 계획을 세우고 유라시아 전역을 다닌다. 2015년 2월부터 방콕, 하노이, 자카르타, 울란바토르, 프놈펜,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마닐라, 시안, 우루무치, 카슈가르, 쿤밍, 양곤, 델리, 뭄바이, 라호르, 카슈미르, 다카, 테헤란, 이스탄불을 다녔다. 지금도 견문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유라시아 곳곳의 지식인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지성의 향연을 펼친다.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설계자인 중국 학계의 거물 후안강, 싱가포르대학교 리콴유공공정책대학 학장 키쇼어 마부바니, 인도 출신으로 시카고대학에 있다가 최근 싱가포르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프라센지트 두아라, 서구식 민주주의를 넘어 왕도정치를 주장하며 ‘의회 삼원제’를 제안하는 중국 민간 유학자 장칭,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으로 서구적 좌파에서 이른바 ‘유교 좌파’로 ‘전향’해 칭화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인 다니엘 벨 등이 그들이다.

우리 사회가 좁은 서구만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그 존재조차 몰랐던 유라시아의 세계적 석학들과 나누는 대화를 읽으며 내가 보편과 당연함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수많은 문명과 문화의 하나였음을 발견한다. 그들의 웅대한 세계 인식과 문명 이해 방식을 들으며 오로지 태평양 쪽만을 바라보며 한미일 동맹만이 유일한 구명줄인 줄 알고 매달리는 우리 사회의 편협과 굴종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 깨닫는다.

저자가 계획한 3부작 가운데 아직 제1권만 출간되었다. 1권을 읽었을 뿐인데 2, 3권이 기대되어 수시로 검색을 한다. 제1권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는 중화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문명 간 교류와 재건의 생생한 현장을 읽을 수 있다. 실크로드 그리고 초원길과 바닷길이 다시 연결되는 현장이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분절하며 대립과 갈등으로 이어지던 유라시아 대륙이 통합의 가능성을 열며 부활하는 현장이다.

육지길과 바닷길에 하늘길과 온라인을 더해 세계는 시시각각 통합되고 있다. 2013년부터 추진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중국의 신장 우루무치에서 아라비아 해에 자리한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까지 도로, 철도, 송유관, 광섬유케이블 등이 연결되는 경제회랑. 내륙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와 연결되며 이국적이고 혼종적인 세계도시로 거듭나 과거 대당제국의 위용을 복원하는 중국 시안. 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국가들을 수용해가는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 배타적·냉전적 동맹의 성격이 짙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비교하며 새롭게 부상하는 세계 질서의 성격을 조망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영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까지 가입을 결정한 것에서 새로운 경제 질서의 탄생을 엿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며 과거 인도양 세계의 복원을 추진하는 인도의 면화길 프로젝트. 월 스트리트의 아성에 도전하는 할랄 스트리트의 부상과 인도양을 둘러싸고 활기를 찾는 이슬람세계의 부흥. 아편전쟁 이래 200년의 세계체제가 저물고 있다. 유러피언 드림과 중국몽이 결합하는 유라시아 세계의 부활을 예견해본다.

세상 반쪽만의 정보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회는 지극히 편협하다. 반쪽이라지만 사실은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꼴이다. 좁은 시각에 갇힌 외교, 국방, 통일, 경제 정책만을 보았고, 보는 이들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19대 대통령 선거일에 책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대통령이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는 이 책이 전하는 세계 인식을 얼마나 남북관계와 국제질서 재편에 반영할 수 있을까?

유라시아 견문

이병한 저 | 서해문집 펴냄

저자 이병한의 ‘유라시아 재통합’ 현장 견문 3부작 중 첫 번째 책이다.
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전체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조망하며 역사사회학적인 시선으로 포스트-근대를 그려본다. 아울러 자본주의 이후, 민주주의 이후를 고민하며 좌/우, 동/서, 고/금의 합작을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다른 백 년’의 길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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