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한 번의 따스한 포옹이 세상을 바꾼다

일본 영화 <너는 착한 아이>

글. 이중기

오카노는 신입 교사다. 그는 요즘 교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중이다. 열심히 할수록 학생들과 멀어지고 교사로서 자존감은 낮아지기만 한다. 초등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담한 주택. 이곳은 오래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할머니 아키코의 집이다. 가끔 치매증세를 보이지만, 삶은 안정적이고 풍족해 보인다. 같은 동네 맨션에 사는 미즈키는 가정폭력 피의자다. 미즈키는 집 안에 들어서면 딸 아야네를 체벌한다.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은 세 사람.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똑같다. 영화는 삶의 구원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새삼스럽지만 쉽게 간과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생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오카노. 그런 오카노를 구원한 건 가족의 사랑이었다. 조카를 품에 안고 서로를 다독이며 체온을 나눈 그 순간 오카노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다. 그것은 신임 교사로서 부족한 ‘스킬’이나 ‘자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 이전에 그들은 사람과 사람이라는 본연적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폐아 히로야는 매일 아키코의 집 앞을 지나간다. 매일 같은 시간 집 앞을 쓸고 있는 아키코에게 인사를 건네고 꽃들과도 인사를 한다. 어느 날 히로야는 열쇠를 잃어버리고 아키코의 집에 머물게 된다. 히로야의 엄마는 퇴근 후 찾아와 연신 사과를 거듭하지만, 아키코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착한 아이인데요”라는 아키코의 말에 엄마는 눈물을 터트린다.

두 아이 엄마 요코는 미즈키가 가장 믿고 따르는 친구다. 미즈키는 가정폭력 피해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부모님이 저질렀던 가정폭력의 흔적을 손목시계로 가리듯이 미즈키는 아야네의 상처를 옷으로 가리기 급급하다. 어느 날 요코의 집에서 트램펄린을 타던 아야네는 거추장스러운 긴 양말을 벗어 던진다. 그때 아야네의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드러났다. 요코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미즈키는 아야네의 사소한 실수에 크게 화를 낸다. 그때 요코가 미즈키를 감싸 안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알고 있어. 미즈키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걸. 나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야. 네 잘못은 없어.”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오카노와 학생주임의 대화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벚꽃이 날려서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날릴 때는 예쁘지만 결국 쓰레기라나? 그래서 학교에 있는 벚나무를 잘라낼 계획이래.” 학교와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는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아름답지만, 자신 삶의 문제가 되면 쉽지 않다. 가끔은 쓰레기처럼 한쪽에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 각각의 크고 작은 문제들도 서로 결만 다를 뿐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벚나무 잘라내듯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리고 최고의 선택은 따뜻하게 안아주고 등을 다독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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