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나는 너를 모른다

글. 유성희 선생님(한울중학교)

어느새 15년 차 교사가 되었다. 돌아보면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보다는 이미 해봤거나 하기 싫은 일이 훨씬 더 많아져서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늘 새롭고 나에게 새로운 도전의 이유를 던져줄 때가 많다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학교생활이지만 만나는 학생만큼은 매년 늘 새롭고, 이렇게까지 다양할 수가 있나 감탄스러울 만큼 인간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담임교사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는 바로 이 다양한 사람들과 ‘잘’ 지내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생과 일상적이고 사소한 감정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마어마한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업무인 셈이다. 종종 뉴스화되곤 하는 교사들의 담임 기피 현상은 바로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스란히 말해준다. 그럼에도 교사가 된 후부터 ‘담임’으로서 학생들 앞에 서는 건 숙명 같은 일이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지만 ‘잘’해내고 싶고, 학생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욕심을 교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교사생활을 통해 담임업무에 대해 내가 쌓은 노하우는 딱 하나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경험상 교사들은 학생들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곤 한다. 나 역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를 펴고 앉아 있는 학생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을 다 안다고 오해했던 적이 있다. 아니, 알아야 한다는 과잉 책임감은 오히려 나에게 정말 큰 좌절감을 안겨줬다. 내가 아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산만하고, 무례하고, 무기력한 반응을 보일 때는 화가 나기도 했고, 그 화는 고스란히 ‘혹 내가 무능해서인가?’ 라는 자책감으로 다가왔다.

첫 학교에서 학생들을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어쩔 줄 몰라 헤맸던 나에게 한 선배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건네셨다. “유 선생, 저 들에 핀 꽃 보이지? 저 꽃은 유 선생을 위해 핀 꽃이 아니야.” 그 순간 뭔가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꽃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내가 보기에 예쁜 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나에게 선배님은 문제가 되는 학생들의 가정방문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시작된 가정방문이었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구제불능이라고만 생각했던 문제아에게서 집을 찾아온 선생님에게 라면을 끓여 주는 따뜻한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맨날 잠을 자서 내 화를 돋웠던 아이는 매일 저녁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안해지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던 한 아이는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학생들도 학교 밖에서 함께 골목을 걷고, 함께 떡볶이를 먹고 난 뒤 현관문을 들어서면 담임인 나를 대하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부작용이 나거나 실패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학생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는 가끔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 학생들에게 더욱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했다.

올해도 나는 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고, 3~4월 학생들을 ‘잘’ 알기 위해 ‘동네 한 바퀴’를 진행했다. 학급의 아이들 4~5명을 모둠으로 편성해서 각자 자신이 잘 가는 피시방, 학원, 편의점, 놀이터 등을 찍어 모둠 친구들과 선생님이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모둠원이 다 같이 인증사진을 찍어 반톡에 올리고 반 전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더 재밌다. 가정방문은 담임 선생님들에게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일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는 만큼 우린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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