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현장

디자인도, 페인트칠도 학부모가 했다, 노력동원이냐고?

“우리 방은 우리가...” 학부모 손으로 학부모 사무실 만든 신도고

설계하기, 페인트 색상 정하기, 페인트칠하기, 가구 디자인하기, 가구 설치하기, 소품 사기, 벽 인테리어하기….

글 / 사진. 윤근혁(서울시교육청 연구교사)

‘북유럽 카페 같은 사무실’ 만든 사람들

신도고 이혜영 행정실장이 학부모회 문을 열고 있다.

서울 은평구 통일로에 있는 신도고등학교. 교실 1/4 크기의 공간에서 위와 같은 작업이 펼쳐졌다. 지난 5월 11일부터 6월 12일까지다. 북유럽에나 있을 것 같은 카페 같은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서다.

새로 탄생한 이 사무실 문에 내걸린 파란색 문패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학부모실”

이 한 달간의 한판 작업에 떨쳐나선 이들은 다름 아닌 이 학교 학부모들. 10여 명의 어머니들이었다. 이들 학부모는 이 학교 학부모회가 공개 모집한 사무실 조성모임에 자진 응모했다.

“하다못해 못 하나라도 학부모들이 결정했어요. 이번 학부모실 만들기는 학부모가 9할의 역할을 하셨어요.”

이 학교 이혜영 행정실장의 말이다.

학교 구성원이 손잡고 함께 만든 학부모실.

물론 이 학교 교직원들도 힘을 보탰다. 이 학교 행정실은 사무실 설치계획안을 만들었고, 시설주무관 3명은 전기 배선 공사를 맡았다. 학부모회 담당 교사들도 학부모와 아이디어 회의도 같이 하고 일도 함께 했다. 학부모들과 교직원들이 학부모실을 만들기 위해 재능기부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사무실 설치비로 500만원을 지원했다. 이 학교만 돈을 준 것은 아니다. 올해 서울지역 초중고와 특수학교 180개교에 모두 같은 돈을 지원한다.

지난 해 말 현재 서울지역 1320개 초중고 가운데 학부모회 단독 사무실이 있는 곳은 316개교. 올해 180개교가 더 늘어나면 모두 500여 개가 된다. 지난 해 1월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 학교 학부모회 구성 운영 등에 관한 조례’가 시행되어 학부모회가 공식기구가 되면서 본격화된 일이다.

학부모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신도고는 왜 학부모들에게 맡겼을까?

그런데 상당수의 학교는 사무실 조성 공사를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게 관례다. 학교에서 내놓은 의견에 맞추기는 하지만 설계와 시공은 업체 몫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도고의 이번 작업과정은 달랐다. 업체에게 돈 주고 맡겼으면 편했을 텐데, 이 학교는 왜 그랬을까?

송의열 교장은 “학부모님들이 쓸 공간이니까 학부모회가 스스로 논의하고 자율로 참여해서 사무실을 만드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막상 학부모들이 사무실 만들기를 주도하다보니 사무실의 주인으로서 자부심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행정실장도 “학부모실 새로 만들기도 자연스럽게 올해 학부모회 활동이 된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학교 구성원들이 재능기부를 했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아 지금과 같은 멋진 사무실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 학부모들이 페인트칠 준비를 하고 있다.

신도고에서 이 학부모실을 만들면서 쓴 돈은 모두 549만6800원. 교육청 지원금에다가 싱크대와 냉장고 사는 돈 49만6800은 학교에서 보탰다. 이 학교가 만든 ‘예산집행 내역서’를 보니 인건비 항목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학교가 ‘을’의 위치에 있는 학부모, 그것도 ‘학생들의 어머니’들을 이른바 ‘노력동원’한 것은 아닐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손성화 학부모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부모실이 새로 생긴다니까 공지사항에서 이런 내용을 본 학부모들이 무척 좋아했죠. 자발적으로 사무실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힘들긴 힘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학부모들이 사무실을 직접 만든 거니까 우리 것이란 마음이 더 들어요.”

송 회장은 “이제 학교 밖 카페에서 하던 학부모 모임을 학교 안 사무실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맘껏 열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기부한 학부모실 소품들.

“우리들이 만들었으니까 우리 것이란 마음이...”

오는 7월 13일 정식으로 문을 여는 이 학교 학부모실은 앞으로 학부모회 회의, 학부모 동아리 활동, 학부모 문화강좌, 학부모 독서토론, 학부모 취미교실, 학부모 쉼터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치맛바람’의 온상이 되지는 않을까? ‘배배 꼬인 심보’를 가진 기자의 이런 질문에 송 회장은 다음처럼 말하면서 웃었다.

“요새 그런 치맛바람이 어디 있어요? 학부모들이 학교에 돈 내고 그런 것 없어요. 학부모는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이죠. 그래야 학교랑 소통하게 되어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고요.”

학부모실 벽에 걸려 있는 학부모회 활동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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