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놀이터를 바꿔야 학교가 바뀐다

글. 편해문 (놀이터디자이너, 기적의 놀이터 기획자)

이제 막 초등학교와 유치원 놀이터를 성찰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 어린이들이 꿈을 키우는 ‘놀 공간’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가 서울시교육청에서 시작된다. 가슴이 벅차온다. 해방 후 아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처음 있는 학교와 유치원 놀이터에 대한 첫 ‘재구성’ 논의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유치원의 놀이터는 관행에 관행을 거듭한 결과 ‘준공검사용’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이제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어떤 상상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몸짓을 하는지 학교와 교사, 부모 모두에게 전에 없던 관심이 일어나길 바란다.

지난 6월 17일 세계적 놀이터 디자이너인 독일의 귄터 벨치히 선생님과 조희연 교육감님과 만났다. 그 자리에 가기에 앞서 귄터 선생님과 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 놀이터를 방문했다. 귄터 선생님의 첫 말씀은 연병장을 연상시키는 운동장과 군인 훈련용 기구를 연상시키는 놀이시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덩그러니 열 올라 있는 플라스틱 놀이기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귄터 선생님은 엉뚱하게도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소는 다른 곳이라며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갔고, 아이들이 놀았던 흔적을 찾아 보여줬다. 아이들은 공식적인 놀이터와 놀이기구에서 놀지 않고 있다는 매우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그날 내 생각은 현재 놀이터와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하고 어렵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 전체 어린이 숫자와 비교하면 너무 단순한 놀이기구를 설치해 놀이터에서마저도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유치원 놀이터는 더욱 심각했다. 모래 놀이를 할 수 없는 모래에서 초등 이상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조합놀이대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 놀이에 대한 무심함이 놀이터와 놀이기구로 드러나고 있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놀이터는 일반 공공놀이터와 장르가 다르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해서이다. 공공놀이터는 서서히 어린이들이 모이고 서서히 빠져나간다. 그러나 학교와 유치원 놀이터는 일시에 어린이들이 뛰어나와 조합놀이대 쟁탈전에 나선다. 그만큼 위험하다. 그래서 공공놀이터와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 놀이터는 설계가 처음부터 달라야 한다. 그러나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져야 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놀이터가 이런 모습으로 굳어진 까닭이 있고 변화에는 긴 시간이 필요함을 안다. 첫걸음을 서울시교육청이 잘 떼주길 바란다.

이날 교육감님에게 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놀이터 개선을 논의할 위원회를 제안했고 그 답은 즉각 돌아왔다. 교육감님은 ‘놀이터 재구성 위원회’를 만들겠다며 함께하자 했다.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놀이터 재구성 위원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고 그 위원회에서 초등학교와 병설·단설 유치원 놀이터의 건강한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깊이 논의할 것이다. 초등, 병설, 단설 각각의 단위에서 놀이터 변화를 강력히 갈망하는 학교와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변화의 물꼬는 궁극적으로 학교와 교육의 변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주장해온 배움과 놀이가 균형을 잡은 학교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놀이터가 바뀌어야 학교가 바뀐다는 것은 나의 20년 꿈이었다. 놀이터를 바꾸는 일은 분명 힘에 부치는 일이다. 처음 시작은 작고 조용히 해야 한다. 그날 모든 이야기를 옆에서 다 들으신 귄터 선생님이 끝으로 하신 말씀이 함께한 대담자와 배석한 교육청 담당자분께 큰 힘을 주었음을 기억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천천히 해주세요.” 놀이터의 변화는 이런 시설, 행정, 교육, 교사, 부모, 어린이, 디자이너 등등 여러 당사자의 만남과 대화, 신뢰에서 생긴다. 이분들과 신뢰를 쌓아 좋은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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