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통합’과 ‘협력’ 교육으로 ‘혁신’을 확장하여 ‘미래’의 초석을 놓겠습니다

취임 3주년에 부치는 진심 편지

글. 조희연(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침 제가 취임한 지 3년이 경과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지난 3년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면서 남은 1년을 어떻게 보낼지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4년을 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서울교육을 위해 일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 책임감으로 3년을 정신없이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1년도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서울교육가족의 기대와 달리, 그리고 저의 의지와 별개로 교육감 임기 4년 동안 서울교육을 전면적으로 변혁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토록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의 초중등 교육이 거대한 입시 앞에 무력하게 왜곡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교육 구조가 있습니다. 학벌과 직업 격차, 임금 서열 등이 긴밀히 맞물린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한 전 국민적 경쟁 체제의 작동을 ‘하루아침’에 멈추게 한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두 번째는 지방교육자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초중등교육에 있어서 자율성이 매우 제약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규정해놓은 법 제도적 틀과 국가교육과정 안에서 교육감의 권한과 재량은 협소하고, 더 내려가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 역시 매우 제한적입니다. 기존의 교육 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꿔내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혁신적 노력과 시도들에 의한 교육 성과는 제법 긴 시간 후에 확인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4년이라는 시간은 큰 교육의 물꼬를 전환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완성된 결과물을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학교가 바뀌었는지, 우리 아이들의 역량과 인성, 그리고 삶이 바뀌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의 경과가 필요합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이러한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한계와 씨름을 한 셈입니다. 주어진 제도적 조건과 권한 범위 내에서 서울교육을 보다 평등하게,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혁신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일례로 이번 호에 소개된 10대 과제의 성과도, 이런 제약 조건과 환경에서 우리 교육청의 모든 공무원이 함께 땀으로 이룩한 큰 전환의 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가장 큰 바람은 우리 아이들이 입시경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기의 타고난 저마다의 꿈과 소질을 맘껏 발휘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노력과 성실함에 대한 동등한 존중과 보상이 주어지는 그런 교육,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결되거나 근본적으로 변해야 할 구조적인 조건들이 있습니다.

우선 학벌주의적 구조와 직업의 서열 문제 등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신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삶을 가꿔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모두가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전쟁을 치르는 데 ‘올인’할 것이 아니라, 학문탐구의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일정한 능력을 검증받고 나면 누구나 대학에 가서 원하는 학문탐구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과 전공 간의 서열도 해소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들릴지 모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절실한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저는 대학서열 문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을 발표하고, 그 외에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정리하여 새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교육 개혁과 제가 지난 3년간 견결히 추진해온 초중등교육 차원에서의 교육혁신의 노력이 상보적으로 통합될 때, 비로소 우리 서울의 아이들은 새로운 교육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의 남은 임기 1년은 그러한 서울교육혁신의 미래지향적 전환의 초석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또한 새 정부에서 초중등교육을 시도교육청에 이양하게 되면, 명실상부한 지방교육자치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의 규제에 막혀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던 많은 교육 개혁 의제들이 빛을 발하고, 이미 우리 교육청이 그동안 추진해온 학교자율주의 정책의 확대 및 심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흐름과 조건에 힘입어, 서울교육의 혁신 노력과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궤도에 오를 것이며, 제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미증유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그리고 환경위기 또는 재앙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불안한 미래와 마주해야 하는 이 순간에,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일궈가면서도 사회 공동체의 공공적 번영을 위해 정의로운 역할을 하는 ‘미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토대가 탄탄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과 변화는 조급하지 않게, 기초를 튼튼히 하면서, 모두의 공감과 소통 속에서 차분하게 추진될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변혁의 속도와 방향 모두에 있어서 ‘중용’의 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모두를 아우르고 보듬는 교육통합적 교육의 길로 가려고 합니다. ‘혁신’과 ‘미래’라는 저의 핵심 교육 지표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더해, 그 방법론으로서의 ‘통합’과 ‘안정’이라는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을 통한 새로운 서울교육의 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백년지대계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저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현장과 호흡하고, 서울시민들과 소통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교육 혁신의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교육의 기본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교육의 본령은 학력신장과 인성함양이라고 하는 양대 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학력은 단순히 상대평가적인 입시능력이 아니라, 개개인의 타고난 소질과 적성에 따른 능력을 최대한 발현하도록 해주는 것이고, 인성함양은 단순한 형식적인 도덕주의를 넘어서서 진정으로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타적이고 착한 심성을 키우는 것, 그것입니다. 교육행정가 이전에, 아버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이 기본을 지켜나가겠습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상처받지 않는 교육, 혁신과 미래교육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것을 위한 것이며, 통합과 안정이라는 경로도 이러한 교육의 본질적 사명에 복무하기 위함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슴 깊이 새기고, 서울교육가족과 함께 꿋꿋이 걸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교육의 길을 의연하고 담대하게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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