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교육

시험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교육혁명의 시작은 시험혁명부터

우리는 수없이 교육과정을 고치고 그 목적을 바꿨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었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교육과정 목표와 무관한 능력을 길러왔다. 시험 때문이다. 입시 시스템을 바꾸면 혁신교육에 대한 우려 역시 해소될 것이다. 결국, 변화의 관건은 시험이다. 시험이 바뀌면 교육과정이 바뀌고 이는 곧 전체 교육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혜정(교육과 혁신 연구소장, <대한민국의 시험> 저자)

우리 공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이를 개혁해보려는 시도들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시간이 갈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부분 그 동력을 잃는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는 “혁신교육이 진학에 도움이 될까요?”라며 걱정한다. 교사는 “업무 부담이 너무 많아요”라며 힘들어한다.

이런 우려를 해소하려면 혁신 교육활동이 진짜 ‘진학에 도움이 되도록’ , 별도의 업무가 아니라 ‘본연의 업무가 되도록’ 입시 시스템을 바꾸면 된다. 시험이 관건이다.

2009년 국가교육과정의 첫 번째 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었다. 2015년의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이것이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으로 바뀌었다. 핀란드가 국가교육과정을 10년에 한 번 바꿀 동안 우리는 18번 개정했다. 그래도 우리교육이 이 지경이다. 교육과정 목표가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교육과정 목표에 ‘창의적 인재 양성, 전인적 성장’ 등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우리교육은 이런 목표와 전혀 무관한 엉뚱한 능력을 길러왔다. 목표와 무관한 평가 기준으로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을 이야기하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고 주저한다.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 맞다면 지금보다 적기가 없다. 현재의 교육은 이미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고, 누적된 저출산으로 학급당 학생 수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게 줄었으며, 수시가 80%에 육박할 만큼 이미 정성적 평가가 시작됐고, 4차혁명의 쓰나미는 이미 몰려오고 있다. 사실상 변화의 토대는 마련되어 있다.

객관식 시험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객관식 정답 찾기 수능과 내신 시험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규모의 경제성을 가능하게 해서 사교육의 기형적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교사들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평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교사의 교육권을 박탈하여 공교육을 무너뜨렸으며, 학생들의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고사시켜서 교실에서 절반 넘게 엎드려 자거나 아니면 안 자고 치열한 경쟁에서 성공해도 세계적인 경쟁력이 전혀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우리교육은 여전히 객관식 시험을 포기하지 못한다.

교육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논술형 시험의 채점은 2인 이상이 블라인드 교차채점한다. 일정 범위 이상 점수 차가 나면 제3자가 재채점을 한다. 학교 내신 역시 불공정하게 채점할 수 없다. 교사의 채점 답안 몇 개를 무작위로 중앙채점센터로 보내서 검토받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논술형 대입 시험을 운영해도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또한 “훈련되지 않은 교사들이 어떻게 사고력 수업을 할 수 있겠냐”며 불신이 크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는 수업은 전혀 새로운 소재로 수업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컵이다”처럼 지식을 단정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컵일까? 컵이 아니라면?”처럼 여지를 두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교육을 할 수 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은 가르치는 소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조금만 연수를 받으면 자신이 가르치던 교과의 소재를 활용해서 얼마든지 ‘집어넣는 수업’이 아닌 ‘꺼내는 수업’을 할 수 있다. 교사에게 박탈되었던 교육권(가르치는 내용과 평가를 정할 수 있는)을 돌려주면 처음에 다소 혼란스러워도 교사는 결국 날개를 달 것이다.

사교육계는 학교마다 교육과정, 진도, 시험 방식이 획일화되지 않고 다르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고 성토하게 될 것이다. 한 문제 가지고 몇 주씩 심층사고와 퇴고를 거듭한 사고력 훈련을 하게 되면 문제집을 수십 권씩 풀 일이 없으므로 일단 학습지 시장이 고사한다. 문제풀이에 집중하던 학원도 설 곳을 잃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한국의 사교육은 여전히 살아남을 거라지만,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평가 기준이라면 적어도 학원에서조차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공정인가?

시험을 바꾸자는 것은 시험의 형식이 아닌, 본질적 내용을 바꾸자는 것이다. 객관식 정답찾기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내용을 바꾸면 그에 맞는 공정한 형식도 달라진다. 아이들의 다양한 역량에 눈을 감고 객관식 정답찾기 하나로만 줄 세우는 것이 공정인가? 김연아, 박태환을 키우려는데 달리기 하나로만 평가한다면 공정하다 하겠는가? 게다가 시험의 목적이 줄 세우기가 아니라 각자의 성취에 방점을 두는 패러다임이라면,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동시에 시험봐야 하는 것 자체도 공정이라 할 수 없다.

필라델피아 인근 우드베리공립학교는 매우 가난한 지역의 형편없는 학교였다. 이 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대학을 갈 생각은 전혀 없고, 성적이 된다 하더라도 경제적 형편 때문에 학부모들이 대학 진학을 바라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열정도, 의미도, 희망도 없는 학교였다.

그런데 그런 학교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5년 전부터 시작된 교육혁신으로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폐교 직전의 학교가 지역 명문고로 거듭나게 되었다.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 평가의 변화가 눈에 띈다. 시험을 모두 한날한시에 보는 것이 아니라 학습 척도를 칠판에 적어두고 학생들 각자가 스스로 준비되었다고 말할 때 준비된 학생 순으로 따로따로 시험을 본다.

사람들은 평가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평가 기준이 바뀌면 학생들의 공부법, 교사들의 교수법, 교육과정, 교과서, 교육을 둘러싼 각종 제도 모두 바뀌게 된다. 평가가 안 바뀌면 아무리 교육과정과 교수법을 바꿔도 결국 우리 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시험혁명은 교육과정과 제도, 교육부와 교육청의 거버넌스 구조까지 다 바꿔야 해서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작업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바꾸는 교육혁명의 시작은 시험혁명부터다.

우드베리공립학교 학습 척도

  • ✽ 0단계: 도와주세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 ✽ 1단계: 도움이 있으면 학습목표가 다루고 있는 스킬 정도는 알 수 있어요.
  • ✽ 2단계: 개념과 스킬을 일부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더 도움이 필요해요.
  • ✽ 3단계: 이제 알았어요! 시험 봐도 돼요!
  • ✽ 4단계: 이 학습목표의 개념과 스킬을 완전히 이해했고 추가 점수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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