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혁의 현장

집단으로 교단에 선 학생들...○○이 없었다

서울 삼각산고, ‘나도 선생님’ 수업에 가봤더니

“츳츳츳츳, 슈프슈프슈프....위위위위위윙~~”
덩치가 제법 좋은 한 남학생 입에서는 절단기 소리에 이어 사이렌 소리가 났다. 이 학생은 서울 삼각산고 1학년 한 교실에서 진짜 침을 튀기고 있다. 얼굴 모습도 일그러졌다가 펴졌다가 한다. 자신이 교사가 되어 벌이는 ‘비트박스’ 수업시간이기 때문.

글 ·사진 윤근혁 서울시교육청 연구교사 bulgom@gmail.com

사이렌 소리 내 봤어?...‘비트박스’ 수업에 몰두하고 있는 청소년 선생님.

‘절단기 소리’에 이어 ‘사이렌 소리’로 가르치는 학생

지난 7월 18일 오후, 이 학급에서 수업을 듣는 27명의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킥킥대고 웃었다. 협력교사로 나선 교단 옆 한 남학생까지 배신을 때렸다. 여느 학생들을 따라서 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비트박스 시범을 보이는 청소년 교사는 굽힘없이 사이렌 소리를 계속 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불에 누워서, 책상에 앉아서, 변기에 앉아서, 학교를 오가면서 밤낮없이 준비한 비트박스 수업이었기에.

요즘 교사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 삼각산고에서는 무척 쉽다. 이 학교가 학생들 모두에게 교사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이른바 ‘나도 선생님’ 프로젝트를 한 해 두 차례씩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2학기에 처음 시작했으니 3년째다.

올해는 여름방학을 앞둔 지난 7월 11일부터 18일까지 교단을 학생들에게 맡겼다. 학생들이 ‘나도 선생님’을 자처하는 수업이니 주제가 색다르고 색깔이 살아있다.

이 비트박스도 어른 교사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영역. 학생들이 떠들고 웃어도 이 학생 교사는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며 수업을 ‘강행’했다.

“자아...이것은 비트박스의 기본인 ‘킥’(내 뱉는 소리)이에요. 한 번 잘 들어보세요.”

침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학생은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는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다. 굽힘없이 40여 분간 사이렌 소리를 낸 친절한 선생님 만세다!!.

가르치고 배우는 학생들.

이 뿐만이 아니다. 암호학, 위기탈출 넘버 쓰리, 편집왕, 위안부, 완전관리, 시 개사, 세월호, 게임컴퓨터, 페미니즘, 치약, 미스터리, 삼각산고 협동심…

올해는 46개 팀이 46개 주제의 수업을 펼쳤다. 한 팀마다 1~6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평균 3명만 잡아도 138명의 학생이 교사로 줄줄이 탄생한 것이다. 이 청소년 교사들은 1, 2학년 교실을 오가며 보통 10번씩의 수업을 펼쳤다.

“깊이 들지 못하는 잠을 무엇이라 할까요?”

6개조로 구성된 어느 반에서는 손 팻말 퀴즈대회가 열렸다. 이 역시 청소년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이다. 몇몇 학생들이 엎드려 있다. 6조 소속 4명의 학생은 손 팻말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선생님은 다음처럼 말했다.

“6조는 안하는 거죠? 휴~~”

뮤지컬을 가르치는 2학년 어느 교실로 자리를 옮겼다. 자는 아이가 두 명밖에 없었다. 참여 학생에게 청소년 교사들이 상품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시 개사’를 가르치는 반에도 들어갔고, ‘위기탈출 넘버 쓰리’를 가르치는 교실에도 들어갔다. 모두 교사는 학생들이었고, 학생들은 교사였다.

가르치고 배우는 학생들.

인상 쓰지도, 윽박지르지도 않는 그 선생님들

이들의 공통점은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불량해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반말이 없었다. 꼬박꼬박 높임말을 써가며 수업을 이어갔다. 이 청소년 교사들은 참고 또 참았다.

물론 수업태도와 학습열정이 초등학교 2학년생에 버금가는 학급도 있었다. 수업주제는 ‘위기탈출 넘버 쓰리’였다.

“전자레인지에 넣어선 안 될 음식은 뭘까요?”

“음주 후 섭취해선 안 될 음식은 뭘까요?”

프레젠테이션을 켜놓은 청소년 교사 3명이 질문을 던졌다. “저요! 저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너 명을 뺀 대부분의 2학년 1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자기를 시켜달라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난 학생까지 보였다. 초등학생 발표왕 뽑기 대회도 아닌데 이런 모습이라니.

‘위기탈출 넘버 쓰리’ 수업. 고등학생들이 이 정도로 발표하려고 환장하는 것 봤어?

이 수업을 맡았던 청소년 교사는 2학년 10반의 박세현-오현종 학생과 2학년 5반의 강혜주 학생이었다. 수업을 마친 이들 교사들을 만나보니 “며칠 동안 수업준비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새벽 4시까지 동영상을 편집했다”는 소리도 나왔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도 학생들이 집중을 안 할 때는 속이 상했죠. 수업을 모둠으로 했다가 그냥도 했다가 바꿔가며 했어요.”

공교롭게도 이 세 학생의 꿈은 모두 ‘선생님’이었다.

몇 안 되는 서울지역 고교 혁신학교인 이 학교는 왜 ‘나도 선생님’이란 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이번 행사를 주관한 박미 교사는 다음처럼 말했다.

“학기말 진도가 끝나면 영화를 틀어주기도 하잖아요? 우리 학교는 이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이 직접 공부한 결과를 친구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죠. 가르치는 학생들은 뿌듯함을 느끼고, 배우는 학생들도 재미있다고 만족하고 있어요.”

“내가 곧 선생님, 얼마나 힘드셨을까?”

교단에 선 학생들. 이들은 무엇보다 교사들을 이해하는 ‘생각의 힘’이 더 넓고 깊어졌다. 학생들이 쓴 소감문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나도 선생님을 진행하며 한 뼘씩 성장하는 것 같다. 하루에 두세 번만 수업해도 힘든데 하루에 일곱 번씩 몇 달 동안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2학년 이하늘)

“준비가 힘들었지만 학생들이 너무 잘 들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학교 수업 때 선생님 말씀을 꼭 잘 들어야겠다는 반성을 할 수 있었다.” (2학년 지서원)

“수업을 진행하며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셨을 문제들을 직접 겪으면서 앞으로 선생님들에게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서 감사한 것 같다.” (2학년 박경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