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의 수다

함께 놀며 아빠도 성장한다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노는’ 아빠들 이야기

아빠가 되기는 쉽지만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아빠, 자상한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 우선 아이들과 몸을 부딪치며 놀아보자.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즐기는 사이, 아빠들도 성장한다. 상일동 마을공간 ‘사이*’에 모여 아이들과 함께 ‘노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리. 채의병 / 사진. 이승준

아이들과 노는 아빠의 역할

김형섭 저는 공부 안 시키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도 덜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신 어렸을 때 아빠와 노는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이 놀려고 해요. 아이들과 몸으로 부딪치며 노는 게 좋다고 하는데 다른 아빠들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합니다.

박종명 저도 아이들하고 많이 노는 편인데요. 키워보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희 딸은 어렸을 때는 몸으로 부딪치고 노는 걸 좋아했지만 크면서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김형섭 아이의 성별도 차이가 나지만 부모의 성역할하고도 관련이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몸으로 안 놀아주니까 아빠한테 요구하는 것 같아요.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번쩍 들어서 빙빙 돌려주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데 엄마는 해줄 수가 없으니까 아빠한테 해달라고 하는 거죠. 몸으로 놀아주는 역할은 아무래도 힘이 되는 아빠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임한상 저도 첫째는 딸이라 레슬링 같은 걸 한 적이 없는데 둘째는 아들이라 좀 달랐어요. 큰아이 때도 자상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고 많이 놀아준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쉬움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둘째에게는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첫째랑 둘째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요즘은 제가 체력이 안 되어서 같이 놀 때 힘들다고 느끼곤 합니다.

김형섭 아이의 성별보다 개인 성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딸은 활동적인 놀이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제가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몸으로 놀아줄 때 더 친밀감이 생기고 아이의 만족도도 커지는 것 같아요.

김정연

김정연

박철민 저희 집도 딸아이가 아들보다 더 격렬하게 놀 때가 있어요. 아이의 발달 시기와 성격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김정연 저는 아이가 하나라 더 많이 놀아주려고 한 것 같아요. 공을 갖고 주고받기 놀이도 많이 했지만 특히 잡기 놀이를 하면 무척 재미있어 했어요. 도망가고 쫓아가고, 잡힐 듯하다가 안 잡히고 그 과정에서 신나했죠. 요즘은 잠자기 전에 잠깐씩 간지럼 태우기를 하는데 무척 즐거운 시간이고 그렇게 일상에서 자연스레 몸놀이를 하고 있어요. 평일에는 늦게 오고 따로 짬을 내기 힘드니까 그렇게라도 잠깐씩 같이 노는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철민 맞아요. 아빠들이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평소에 아이들과 놀 시간을 마음껏 낼 수 없다는 게 아빠들의 한계이고 고민인 것 같아요.

김형섭

김형섭

친밀감과 연대감을 쌓는 행복한 시간

김형섭 그래서 아빠들이 놀 때 집중도를 높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잠깐 놀아도 재미있게 놀아야 될 것 같잖아요, 그러다 보니 주말에 놀 때 돈을 써야 더 잘 놀아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것도 다 사 주게 되고, 놀이공원에도 가게 되고, 워터파크에 가게 되고. 그런데 꼭 놀이공원에 가야 잘 노는 게 아닌 거잖아요. 동네에서도 놀 수 있는데 꼭 돈을 쓰며 어디를 가야만 잘 놀아준 것 같은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박종명 아빠들이 놀아주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옛날 우리 때는 맨 땅에서 선 그리며 놀았고 돌이나 나뭇가지 하나 갖고도 잘 놀았는데 요즘은 그렇게 놀지 않잖아요. 우리 어렸을 때와 다르죠.

임한상 생각해보면 우리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같이 놀아준 적도 거의 없었어요.

김정연 우리 때는 다 그랬죠. 저도 아버지와 손잡고 걸은 추억도 없어서 아쉬워요. 그래서 지금 저는 아이와 손잡고 걷는 게 너무 좋고 아이도 제 손을 잡는 걸 좋아합니다.

김형섭 우리 때는 외식도 안 하고 어디 놀러 가기도 쉽지 않았죠. 아빠는 육아에서 완전 배제되어 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사실 경험하지 않은 걸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비교적 옛날 아빠들과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사회적 학습 덕분인 것 같아요.

박종명 요즘은 ‘누구 아빠는 아이랑 잘 놀아주는데’라는 말들이 들려오기 때문에 무언의 압력을 받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정말 바뀌었어요.

김정연 그런데 아이가 크니까 아빠와 노는 것보다 친구들 만나는 걸 더 좋아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오더군요.

박종명 고학년이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더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해요. 친구들과 밖에서 온종일 놀 때도 많죠.

박철민

박철민

감성, 창의력, 도전정신을 키울 수 있는 놀이 공간

김형섭 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부모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이잖아요. 우리 동네는 주변에 생태공원도 있고 상일동산과 고덕천도 있어서 그나마 자연 환경이 좋은 편이라고 느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종명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들이고 관리되는 공간이라 나뭇가지 하나, 돌 하나 찾기가 쉽지 않아요. 놀이터도 모든 놀이터가 획일화되어 있잖아요. 아빠들이 가도 같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그냥 지켜보기만 하게 되는 거죠.

박철민 둘째와 산에 갔는데 처음에는 싫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너무 재미있어했어요. 산에만 가도 놀 수 있는 게 많고 모험과 탐구의 본능을 일깨우는 게 있는데 지금은 공간들이 정형화되어 있어서 소재나 놀이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놀이터의 시설은 엄청 좋아졌지만 안전을 담보해야 하고 똑같은 놀이기구로 채워지니 그 안에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새로움을 찾을 여지가 없어지는 거죠.

박종명 우리 동네에 잘 찾아보면 남들이 미처 모르는 재미난 장소도 꽤 있어요. 저희는 겨울에 눈썰매 타기 좋은 곳을 찾았거든요. 썰매를 갖고 갔는데, 버려진 장판이 있어서 그걸로 탔는데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많이 탔어요. 아이들이 장판으로 썰매를 타니까 더 신나하고 훨씬 재미있어했어요.

김형섭 아이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의외성에서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저도 아이와 산책하다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그네를 봤는데 무척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어요. 또 저희 동네에 달팽이가 많이 있는 곳이 있는데 알고 계세요? 저는 아이들과 달팽이, 지렁이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가고, 저희는 그 길을 달팽이길이라고 불러요.

임한상 어디에서 뭘 할 수 있는지, 뭘 볼 수 있는지 동네 구석구석에서 할 수 있는 리스트나 지도를 만들고 공유하면 좋을 것 같네요.

임한상

임한상

마을 안에서 함께 놀기, 관계 맺기

김형섭 아이들과 놀기 위해 모두 노력하고 계신데 아빠와 논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임한상 당연히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겠죠. 부모와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박종명 저희 집은 명절 때 모이면 어렸을 때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도 껄껄껄 웃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죠. 아이들도 그럴 거예요. 좋은 기억을 갖고 그걸 추억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컸을 때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고요.

박철민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면서 정서적으로 유대감과 친밀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정서적 유대감이 없으면 함께 놀아도 서먹서먹하고 불편할 수 있어요. 평소 잘 안 놀아주던 아빠들이 큰맘 먹고 ‘한번 놀아줄게’ 하다가 잘 안 돼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박종명

박종명

박종명 저희가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생태숲 걷기, 자전거 타기, 마을잔치, 캠프, 등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했잖아요. 아빠들 말이 “자기 혼자 놀아주려면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랐는데 이렇게 같이 하니 더 즐겁고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는 거예요. 아빠들이 오히려 더 좋아한 것 같아요.

박철민 아이들도 언제 또 가냐고 계속 물어보잖아요. “언제 모여요. 뭐해요.” 그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함께 모여 노는 게 참 재미있는 거구나 새삼 느끼죠.

김형섭 이렇게 동네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제일 좋은 건 아이의 삼촌, 이모들이 동네에 많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아이들은 이제 모르던 아저씨, 아줌마가 다 삼촌, 이모가 된 거고, 우리들도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 같다고 느끼잖아요. 길에서 만나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그게 우리 모임의 제일 큰 의미 같아요. 요즘 핵가족화되고 친척들 왕래도 적은데 동네에서 이렇게 아이의 형, 동생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죠.

박철민 앞으로는 아이들이 더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걸 해볼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빠가 놀아주는 데 한계가 느껴져요. 캠프에서도 저학년은 좋아하지만 고학년은 뭘 해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이 직접 원하는 걸 이야기하고, 할 수 있도록 되었으면 합니다.

김형섭 아빠가 보호자 역할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놀고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저희 모임이 활성화되고 선순환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즐겁고, 모든 아이들의 아빠가 되는 경험이 참 특별했는데요. 앞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아빠들의 마을 공동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을공간 ‘사이’는 상일동 아빠들의 마을공동체이다.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마을에서 함께 어울리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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