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교육저널 그날

고려에도 사교육 열풍이 있었다?

‘도포바람’ 날리던 고려시대 교육

우리 교육계가 풀어야 할 오래된 고민 사교육은 오늘날 들어 새롭게 생긴 교육문제일까?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처럼, 고려시대에도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교육이 횡행하던 때가 있었다. <동명왕편>의 저자 이규보 역시 사학기관 문헌공도에서 공부하며 과거 시험을 위해서 개인 과외를 받기도 했다. 사교육이 융성했던 고려시대 이규보와 그의 아버지 이윤수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사교육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최태성 선생님(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전 대광고등학교 교사) / 그림. 이철민

사교육. 늘 우리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 사교육. 사교육이 밀집되어 있는 강남. 이곳의 고등학생은 한 달 평균 사교육비만 130만 원을 지출한다는 통계도 있네요.

과연 이런 사교육 현상은 우리 시대에만 있는 기현상일까요? 애석(?)하게도 역사 속에 이미 사교육은 공교육과 함께했네요. 특히, 고려시대 사교육이 매우 융성했는데요. 당시에는 12공도라 불리는 12개의 사학기관이 존재했습니다. 이 12공도 중에서도 해동공자라 불리는 최충이 설립한 문헌공도가 가장 유명했죠.

지금도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인한 가계 부담 증가, 사교육으로 인한 부의 대물림 현상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죠. 이걸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새로 들어서는 정부마다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시대도 똑같았어요. 고려 정부는 사교육 편중 현상을 막기 위해 전문 강좌 개설이나 장학재단 마련 등 관학 진흥책 즉, 공교육 진흥책을 내놓습니다. 아… 역사는 어찌 이리 비슷하게 전개되는지.

그런데 이때 사교육빨(?)로 완전 무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놀라지 마시라. 그는 바로 고려시대 문인이자 당대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동국이상국집>이라는 문집과 주몽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서사시 <동명왕편>의 저자, 바로 이규보였습니다. 이 이규보 역시 최충의 문헌공도 출신이죠.

이규보는 어렸을 때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나 주위에서 수재라고 불립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규보의 집안은 문벌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규보의 아버지 이윤수는 총명하고 영리한 이규보를 통해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아들을 당대 최고 명문사학인 문헌공도에 입학시킨 것이지요.

문헌공도에서는 ‘여름방학 특강’에 해당하는 ‘하과’라는 수업이 있었는데요. 당시 공교육에 해당하는 국자감에서는 이런 맞춤형 수업이 잘 운영되고 있지 못했죠. 하과에서는 ‘급작’이라는 모의고사, 말 그대로 급하게 글을 짓는다 해서 급작이라고 불린 이 시험을 치렀는데요. 이규보는 이 시험에서 잇달아 1등을 하였으니 이규보의 집안은 의기양양. 이규보가 16세 되던 해에 이규보의 아버지 이윤수는 수원으로 발령이 납니다.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고민. 결국 이규보의 아버지는 이규보를 그대로 개경에 남겨둡니다. 그해 과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죠. 이규보의 아버지는 지금으로 치면 ‘기러기 아빠’가 되어 이규보를 뒷바라지한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과거 시험이 다가오자 이규보에게 ‘족집게’ 개인 과외까지 붙입니다. 사교육의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아들의 과거 시험에 올인했던 이규보의 아버지.

드디어 이규보가 과거 시험장에 들어갑니다. 아버지 이윤수는 아마도 과거 시험장 문에 들어서는 아들에게 찹쌀떡을 먹였을 것이며, 시험장 기둥에 엿을 턱 하니 붙였을 것이며, 아들이 시험장에서 나올 때까지 간절히 두 손 모으고 시험장 앞에서 기도했을 겁니다. 요즘 모습으로 연상한다면 말이죠.

자. 결과는?
이규보. 낙방.
아버지. 멘붕.
다시 도전. 재수. 낙방.
다시 도전. 삼수. 낙방.
다시 도전. 이번엔 이름도 바꿔보자. 이때 지은 이름이 사실 이규보랍니다. 겨우 합격.

그랬습니다. 그렇게 이규보는 4수 만에 겨우 과거에 합격했던 것입니다. 가문을 위해서 공부했던 이규보.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사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한 아버지 이윤수. 이 역시 문벌귀족 사회가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모습임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요? 결국 이렇게 지탱되던 문벌귀족 사회는 무신들의 칼을 맞고 무너져버립니다.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아닌 아버지의 ‘도포바람’이 다를 뿐 보이는 모습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비슷합니다. 이제는 이런 역사와 단절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바람이 와야겠죠? 우리 함께 해보죠. 비슷한 역사가 아닌 좀 다른 역사를 써보죠.

최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사로 활동했다. 누적 수강생이 500만 명이 넘는 유명 강사로 <무한도전>,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했다. 현재는 <역사기행 그곳> 에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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