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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

역사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도 그 시대를 어떻게, 그 시대의 무엇을 기억하는지는 저마다 다르다. <차남들의 세계사>의 저자는 군부독재 시절 속 평범한 소시민의 파괴된 삶에 주목했다. 어쩌면 당시와 같은 일이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80년대를 민주화 투쟁의 시대로 기억하듯이 훗날 우리 후손들은 지금 시대를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폭력 앞에 개인의 삶이 파괴됐던 광기의 시절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글. 김수미(강명초·강명중·선사고 학부모, 극작가, 한국극작가협회이사장)

거기 사람이 있었고 여기 사람이 있다

희곡이나 소설 등 서사를 다루는 문학세계에서 역사를, 특히 현대사를 다룬 작품을 만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작가가 나름의 소명의식과 신념으로 현대사를 호명해내고 있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1972년 강원도 원주 태생인 작가 이기호가 원주를 배경으로 군부독재 시절을 살아낸 인물들의 서사를 풀어낸 작품이다.

1980년대 정치적 배경은 누아르 시대라는 작가의 명명 아래 등장인물들이 살아낸 시대이자 개인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원인이기도 하다. 교과서를 통해 혹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시대는 지나간 시대를 배운다. 198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설은 소설 특유의 힘으로 시대적 배경과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혹은 희생된 혹은 사라진 사람들을 담담한 문체로 써 내려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안전택시’ 택시기사 나복만이다. 이야기는 나복만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원주경찰서에 갔다가 교통과가 아닌 정보과로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은 주인공이 절대 비밀로 지켜내고 싶어 하는 자신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다. 주인공 나복만에게는 세상이, 특히 사랑하는 여자 순희가 절대 몰랐으면 하는 치부다. 모든 것이 짓밟혀도 끝내 알려지지 않기를, 누구도 몰랐기를 바랐던 단 하나의 비밀이었다. 글을 모른다는 것이 죄는 아니건만 시대는 죄로 만들어버렸다. 단순한 착오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그날 나복만의 실수는 정보과 형사가 국가보안법 범인을 기자들에게 발표하는 브리핑 자료에 나복만의 이름을 실수로 넣으면서 실수와 실수가 만나 사고가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복만의 삶은 자신이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해하기도 전에 국가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복만의 당혹스러운 선택을 마주할 때마다 작가는 ‘어쩌겠느냐. 나복만이는 그런 사람인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철저히 인물을 따라가는 서사다. 다시 말해 지난 역사를 기억함에 있어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1980년대 시대가 만들어낸 건 사건보다 너무도 평범해서 아무도 기록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했을 소시민들의 파괴된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파괴된 개인의 삶이 지금 이 시대에서는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크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자에게 지금을 돌아보게 한다. 지나간 그 시절 거기에도 사람이 있었고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에도 사람이 있으며 사람에 의해 시대는 만들어지고 시대가 개인의 역사를 파괴할 권리가 없으면 권리를 용납해서도 안 되기 때문은 아닐까.

정해진 답을 요구하던 질문의 시대

나복만이 광기의 역사 속에 삶이 파괴된 인물이라면 안기부 요원으로 등장하는 정남운은 광기의 역사가 낳은 상징적인 산물이다. 안기부로 끌려간 나복만은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안기부요원들의 질문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의 질문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복만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진술서. 글을 모르는 나복만에게 진술서는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치부를 인정해야 하는 지점이었기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나복만의 거부는 국가 권력에 반하는 행위로 읽혔고 고문이 가해졌다. 고문 앞에서도 굳게 다문 나복만의 입을 연 건 친절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복만에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준 정남운이다.

<데미안>을 너무도 많이 들어 외우게 되었을 때쯤 나복만은 입을 연다. “나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합니다.” 나복만의 침묵 앞에 광기가 더한 고문을 자행하던 안기부 요원들을 허무하게 무너트리며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준다. 그리고 나복만은 자신의 택시를 몰고 안기부를 떠나는 날 사고와 함께 시간 속에서,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진다.

정해진 답을 요구하던 질문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여전히 정해진 답을 말하라고 혹은 말할 때까지 가혹한 질문을 던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어떤 답이라도 개개인의 답을 존중할 태도를 갖추고는 있는지,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다양한 답을 하나의 질문 아래 모이게 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는지 등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쯤 소설의 말미에서 새로운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거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거다. 독자로서 나는 왜 이 지점에서 소름이 돋았을까. 답답할 만큼 혹은 분노의 대상을 찾지 못해 혹은 분노의 대상이 너무도 선명해서 읽는 내내 작가의 안내처럼 숨 한번 쉬고 읽고, 자세도 고쳐가며 읽고, 찬바람도 맞으며 읽었던 내용이 작가가 써 내려간 허구의 서사가 아니라 실제라니….

‘아! 나복만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광기의 역사 속에서 파괴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겠는가. 그게 나일지라도. 그래서 우리의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그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나 보다.’ 새삼 가슴으로 마주하는 감사함이었다.

문제없이, 좌절이나 혼돈 없이 어른이 되는 인간은 없다. 수많은 창작자는 이야기를 생산해낸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듣고, 전하면서 인간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고 실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힘을 기르며 합리적인 사고와 진실에는 간격이 존재함을 받아들이며 세계를 알고 인간을 이해하며 사랑하게 될 것이기에 책 읽는 시간이 많은 분에게 선물처럼 주어지길 바라본다.

차남들의 세계사

이기호 저 | 민음사 펴냄

저자가 <세계의 문학>에 연재했던 ‘수배의 힘’의 제목을 바꿔 펴낸 책이다.
저자의 첫 번째 소설인 <사과는 잘해요>에 이은 ‘죄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얼떨결에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된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저자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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