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일상 속 혁명을 만드는 삶의 기술, 삶의 태도

다르덴 형제의 벨기에 영화 <자전거 탄 소년>과 <내일을 위한 시간>

글. 이중기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일상의 시련을 스크린에서 마주하기

보육원에서 한 달가량을 보낸 13살 소년 시릴은 현재 대치 중이다. 아빠와 약속한 한 달이 훌쩍 지났기에 집으로 가겠다는 시릴. 그러나 보육원 직원의 태도는 강경하다. 아버지는 이사를 했고, 시릴을 데리러 올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시릴은 방과 후 기회를 엿보다 학교를 탈출해 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간다.

산드라는 이번 주말이 지나면 퇴사를 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울증으로 병가를 오랫동안 냈고, 산드라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사장은 산드라를 해고하려 한다. 문제는 해고 방식에 있다. 사장은 자신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산드라 해고를 위한 투표를 한다. 산드라를 해고하게 되면 직원 16명 전원에게 1,000유로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작업반장의 강요에 따라 3명을 제외한 13명의 직원은 산드라 해고에 찬성하게 되고, 주말만 지나면 산드라는 마지막 출근을 해야만 한다.

벨기에 출신 감독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들이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만 만들어내는 것도 이러한 주제 선정과도 맞닿아 있다. 시릴과 산드라는 주어진 시련을 뚝딱 해치우는 영화 속 주인공과는 다르다.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좌절하고 때로는 잘못된 길을 선택하기도 하며,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시련을 통해 한 뼘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자전거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은 우연한 계기로 미용사 사만다를 만난다. 사만다는 주말 위탁을 통해 시릴이 삶을 살아갈 힘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릴은 그저 아버지와 다시 만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아버지는 시릴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줄 뿐이다.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 시릴은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동네 불량배 웨스와 친해진 시릴은 웨스가 저지르는 강도짓에 동참하게 된다. 사만다는 그런 시릴을 따스하게 안아주지만, 시릴의 삶을 뒤바꾸어놓을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는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과 닮았다. 우리는 때때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영웅’이나 ‘해결사’를 바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결국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드라는 자신을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직원들을 한 명씩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비밀투표로 진행되지 않았고, 작업반장이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항변에 사장이 월요일에 재투표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들을 찾아가는 산드라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산드라의 불안한 예감은 적중한다. 처음 산드라가 찾아간 세 명의 직원은 모두 거절의 뜻을 내비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산드라는 지금의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남편은 산드라를 다독일 뿐,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이 문제 또한 산드라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내 삶을 위한 새로운 시작

강도짓을 벌였던 시릴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게 주인이 퇴근할 때 뒤에서 야구방망이로 가격하여 넘어뜨리고 그날 정산분을 훔쳐오는 것이 웨스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범죄 계획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엉망이 된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가게 주인의 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릴은 아들마저 방망이로 때려눕히고 돈을 훔치는 데 성공하지만 얼굴을 들키고 만다. 시릴은 범행 당일 사만다와 함께 경찰에 자수한다. 범죄를 사주한 웨스는 감옥에 갔고, 합의금을 낼 수 있었던 사만다 덕분에 시릴은 사과를 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게 된다. 법적인 책임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시릴은 도덕적 책임에 직면하게 된다. 가게 주인의 아들이 시릴을 린치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시릴은 도망치다 돌팔매를 맞고 나무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는다. 가게 주인과 아들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시릴은 의식을 찾고 일어나 다시 자전거에 올라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 사만다에게 떠난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산드라의 노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드라의 처지를 이해하고 반대표를 던진 자신을 책망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보너스를 포기하기 어렵다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신뢰해주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산드라는 없는 힘을 짜내어 직원들의 집을 찾고 또 찾는다. 늦은 밤까지 직원들을 설득한 다음 날, 산드라의 거취를 묻는 비밀투표가 열린다. 결과는 8대 8. 산드라는 해고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이때 사장이 산드라를 부른다. 산드라를 채용하고 보너스도 그대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단, 현재 근무 중인 흑인 계약직은 9월 계약 만료이기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고 그 자리에 산드라를 정규직으로 들이겠다는 조건을 덧붙인다. 산드라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본래 원하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낱 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힘을 찾아낸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까지도 타인의 손에 맡기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라고 규정 짓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희석해나간다. 우리 시대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화는 사람들을 도시로 이끌었고, 도시는 사람들에게 익명성을 제공했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을 익명성의 그늘에서 벗어나 소통의 광장으로 이끌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이 광장에서는 어떤 삶의 기술, 태도가 필요할까?

많은 이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쉬이 방황할 테다. 마치 다르덴 형제 영화 속 인물들처럼. 하지만 그들도 이내 적응할 것이다. 열쇠는 언제나 자신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삶의 지평은 나름 드라마틱하게 열린다. 다르덴 형제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초인적인 영웅들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 그리고 우리도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상 속 혁명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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