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행복한 삶을 위한 직업교육을 이야기하다

가능성을 여는 전환기의 직업교육

안정적이고 처우가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직업교육이 ‘인재 양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학생들이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과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직업교육의 흐름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과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글. 변춘희(시민기자단) / 사진. 이승준

성공의 진정한 의미

변춘희 대학진학률이 낮아지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업을 갖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직업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을 모시고 전환기의 직업교육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강은 저는 인덕공업고등학교 자동차제품설계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모여 직업교육을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는 교사연구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상담교사가 모든 학생을 관찰할 수는 없거든요. 담임교사나 교과 담당교사가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때문에 학생과 진료상담교사를 연결하는 등 학생과의 소통을 연구하는 모임이에요.

임아영 학교 안 혹은 학교 밖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17세 이상 청소년들에게 진로교육을 하고 있어요. 저소득 청소년들의 직업교육을 위해 작업장학교를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인문계 학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요.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더라도 진로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인문계고등학교보다는 직업을 위한 경험을 훨씬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대학진학을 준비하지 않으면서 직업교육도 받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의 인문계고등학교 학생 20명과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직업교육을 하고 있어요.

강연흥 이전에 인문계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모두 근무했던 경험이 있고, 지금은 성동공업고등학교에서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동녘 저는 하자센터가 운영하는 하자작업장 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그곳에서 청소년들에게 음악공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자센터는 중학교 시기 청소년들에게 전환기 교육을 하는 10대들의 학교예요. 1년 동안 목화를 직접 키워 직조도 하는 목화학교를 비롯해서 자전거, 목공 등 손으로 무언가를 하면서 작업에 집중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갖죠.

강연흥

변춘희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20% 정도의 고등학생만 대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교에 가야만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모두에게 대학교 학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고졸성공시대라는 정책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고졸성공시대에서 성공은 어떤 의미일까요?

강연흥 고졸성공시대는 예전 이명박 정부 때 나온 정책이에요. 자공고, 자사고, 마이스터고 등 고등학교를 다양화해서 차별화된 엘리트를 키우겠다는 정책이었어요. 여러 학교에 분산된 엘리트 학생들에게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곳에 취업하는 성공을 거뒀는데, 결국은 제로섬 게임인 차별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때의 성공은 존재의 방식이 아니라 소유의 개념이었어요. 지금은 고졸만세라고 해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만족하는 세상이라는 말이죠. 경제적 자립 기반 없이 자기 삶의 존재 의미를 찾고 행복을 소비하는 삶을 살 수는 없어요. 사회 생태계가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직장을 구하는 데 불리하지 않아야 가능하죠. 특성화고등학교의 직업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이강은 저는 성공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고졸 출신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는 걸 성공이라고 하니까요. 좋은 곳에 취업했다면서 학교마다 현수막을 걸기도 하는데 일부 학생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자기가 알지 못했던 재능을 학교에서 발견하고 이와 관련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사회에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 성공이죠.

임아영

변춘희 일반적으로 공업고등학교의 기계과라고 하면 기계 관련 기술을 배워서 이와 관련된 일자리를 찾아가게 되는데, 작업장학교는 교육내용이 새로워요. 도시농업을 배워서 농업인이 된다거나 연주를 배워서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런 걸 직업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강연흥 학습전이역량이라고 하는데, 이 일을 하다가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적응력을 말해요.

이강은 정규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게 두려운 거죠. 커리큘럼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한 가지에 몰입할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그게 직업이 아니어도 하다 보면 직업이 될 수도 있고요.

임아영 삶의 방식을 다르게 해석하고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거죠. 세상이 바뀔 거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정보도, 챙겨주는 부모도, 그 어떤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도시농업을 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요. 트렌드에는 조금 뒤떨어진 바리스타나 베이커리, 수공예 관련 일을 배우는데 이것조차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커리큘럼은 진부하더라도 지역의 장인을 강사로 모시고 있어요. 동네 커피숍 중에서 정말 정성스럽고 맛있게 커피를 만드는 곳의 사장님을 만나서 우리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해요. 학생들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인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변해가요.

박동녘 지역의 장인을 강사로 섭외한 건 정말 잘하신 것 같아요.

이강은

직업 역량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직업교육

변춘희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라는 게 있잖아요. 학습전이역량보다는 실무능력을 위한 정책인 것 같은데, NCS가 직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요?

강연흥 기초교육을 다양화하고, ‘T'자형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학생들이 상황에 따라 적응할 수 있어요. NCS 중심 교육과정은 직무능력을 표준화시켜서 그 시스템을 몇 단계로 나눠 이수하는 것인데, 문제는 고용노동부에서 만든 기준을 그대로 학교에 적용했다는 점이에요. 고용노동부에서 만든 기준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일할 수준에 맞춰 교육과정 이수 시간을 정하거나 학습모듈은 특정 교재를 사용해달라고 요구해요. 미래경쟁력,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능력, 협업능력, 전이능력이 요구된다고 하면서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죠.

이강은 NCS는 20년 전 호주의 직업교육 모델이에요. 우리나라에도 20년 전에 들여왔으면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시대가 변했잖아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과거의 것을 들여오니까 안 맞는 거죠. NCS가 도입됐을 때 실무자들은 굉장히 당황했어요. 학교에서는 용접과 선반, 제도를 다 가르치고, 3학년 때 졸업작품전 준비를 위해 이 세 가지를 융합한 창의적인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역량을 쌓아나갔는데 NCS가 도입되면서부터는 한 가지만 배워야 해요. 학생들은 이것저것 다 배우고 싶은데 자격증을 따려면 이수시간 때문에 한 가지밖에 못해요. 자격증과 관련한 수업만 구성해야 그 자격증을 딸 수 있으니까 다양하게 가르칠 수 없어요. 국가가 체계를 가지고 원하는 학생만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데, 모든 학생을 똑같은 사람으로 기르는 거예요.

박동녘

변춘희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1위가 공무원, 2위가 건물주와 임대업자이고 직업을 선택할 때 안정성과 소득을 가장 많이 고려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몇 년 전에는 초등학생과 유아들이 모인 곳에서 장래희망을 물었더니 부자라고 답하는 아이가 많아서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직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미래가 불안하고 막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중고등학생 10명 중 3명이 꿈이 없다고 대답했는데, 꿈과 직업은 다르지만 꿈이 없기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겠지요.

박동녘 하자센터에서는 청소년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고 있어요. 밀양 송전탑이나 장애 등급 등 사회 문제 중 한 가지를 골라서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요. 영어 수업도 하는데, 토익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실제 소통을 위한 영어를 배워요. 학습과정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은 동아시아 사람이 많아서 미국이나 영국식 영어와는 많이 달라요. 일단 문화가 다르니까 언어도 다르더라고요. 도시농업이나 에너지 제로 하우스 등을 해보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찾아가고 있어요.

이강은 저는 학생들에게 지금의 선택을 평생직업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서 현장실습은 꼭 나가보라고 해요. 실제 현장에서 일하면 시야가 넓어지거든요.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면 사회를 알고 대처할 힘이 생기는 거죠. 직접 경험을 해봐야 나한테 어떤 일이 맞는지 알게 되는 거예요. 처음 선택한 일이 자기에게 맞는 경우도 있지만, 고졸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고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경우도 있고, 일과 관련해서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가능성을 열어놓고 1년 동안 경험을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선택하는 마음이 좀 가벼워지죠.

박동녘 같은 시간을 보내도 개인마다 변화는 달라요.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다 하자센터를 졸업한 학생 한 명은 ‘이런 배움도 있는데 왜 친구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할까?’ 하더라고요. 저는 평생직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직업을 갖게 될지 모르겠는데, 있으면 여러 개일 거예요. 직업은 모르겠고, 일은 계속할 거고요.

변춘희 돈을 버는 일만 있는 건 아니죠. 또, 16살, 19살에 미래를 다 결정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전환기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하고 찾아가는 교육기회가 더 많아져야겠네요. 마지막으로 학부모들의 직업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학생들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니, 학부모들이 편견을 버리고 학생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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