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교육

국가직무능력표준의 명암

NCS의 효용성과 지속가능성

우리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중심 사회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국가직무능력표준이 도입됐다. 그러나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국가직무능력표준 자체만으로 현실을 개선하고 학벌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국가직무능력표준의 가능성과 그림자를 되짚어본다.

글. 조석영(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국가직무능력표준의 가능성

2016년 12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간한 ‘한국의 청년 채용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채용 과정에서 기업이 중요시하는 스펙은 학벌과 학점 단 2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학벌주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수능체제를 개편하고,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함으로써 학벌주의를 타파하겠다고 나섰다. 학벌주의 타파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만큼 지난 정권들도 나름의 해법을 모색해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능력중심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구호 아래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NCS)’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NCS 중심 교육과정은 NCS를 통해 정의된 능력단위를 교육목표, 인재상, 그리고 각 수업을 설계할 때부터 반영한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예컨대 어떤 학교에서 ‘금융영업의 이해’라는 수업을 진행한다면, 강의계획서에 이 강의가 카드영업이라는 직무의 고객상담, 제휴영업이라는 능력단위를 가르친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다. NCS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교육과정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과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직무능력을 일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A학교의 금융수업에서는 고객상담을 가르치는데 B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했을 때 그 사원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할 수 없다. 자연스레 신입사원 교육에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직무능력과 학교 교육과정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어서 누가 일 잘하는(능력 있는) 사람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학벌을 채용에 반영하는 관행을 개선할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는 NCS가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중심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NCS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NCS 교육과정이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서로 다른 대학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같은 학과의 유사한 교과목이라 해도 교수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세부 전공은 무엇인지, 사회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 변수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수준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국가 차원에서 인재상, 교육목표, 교육과정 개발의 기준이 되는 표준화된 체계를 갖춘다면, 교수라는 변수와 관계없이 대다수 학생이 유사한 수준의 직무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직무능력표준의 그림자

문제는 NCS 중심 교육과정이 2014년부터 1~2년에 걸쳐 급속도로 전문대학에 도입됐다는 것이다. 전문대학 현장에서는 NCS 교육과정 개발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한 문서작업이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했고, 직무능력과 관련된 수업을 늘림에 따라 교양교육의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노동시장에도 정부 지침에 따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채용 시 NCS 관련 검사를 하고, 직무능력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다는 증명을 요구하는 등 채용절차의 변화가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NCS 관련 전문학원이 생기고, 교재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NCS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NCS의 핵심은 직무 표준화다. 그런데 어떤 회사든 정치, 경제, 사회 변화에 따라 매뉴얼과 관계없이 유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NCS 기반 채용을 하는 회사는 채용공고를 낼 때 해당 TO가 NCS의 어떤 직무에 해당하는지 설명하는 직무기술서를 제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채용된 노동자에게 직무기술서에 나와 있는 업무만 배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지금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동시에 그만큼 없어지는 시대이다. NCS는 직무 분석과 체계화, 그에 따른 학습모듈 및 교육과정 개발에 어마어마한 인력과 재정이 소모된다. 장기적으로 NCS의 효용성은 물론 지속가능성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NCS를 통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노동시장에서 학벌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1980~90년대는 대학만 졸업하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그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람이 많아서 모두가 앉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자를 늘려야 한다. 교육과정을 개편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도 NCS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쏟아부은 예산이 너무 많아 무효화시킬 수는 없을 거라는 의견도 있고, 지금이라도 멈춰야 더 많은 재정을 낭비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찬반을 떠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정책 도입에 앞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충실히 수행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않는다면 세금만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NCS 도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학 교육과정 개발 컨설팅 업체와 NCS 관련 사교육 업체이며, 피해자는 대학에 돈을 내는 학생들, 정부에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부모세대라는 냉소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가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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