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의 교육저널 그날

어떻게 살 것인가?

‘동사’의 꿈을 꾸었던 독립 운동가 박상진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은 동사의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다. 독립 운동가 박상진 역시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 일제 강점기 판사직을 내던지고 독립 운동이라는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동사의 꿈을 꿨던 박상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글. 최태성 선생님(별★별 한국사 연구소장, 전 대광고등학교 교사) / 사진제공. 울산광역시 / 그림. 이철민

“너는 꿈이 뭐니?” 이 질문은 가끔 영혼 없고 의례적인 질문으로 상대 학생에게 다가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학생 역시 의무방어전을 치르듯이 그 질문에 대답해주기도 하지요. 우리는 어떤 꿈을 기대하고, 준비하고 있는 걸까요?

한국사 대입 수능 시험 문제 중 단골로 출제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1910년대 항일 운동 단체를 묻는 문항과 관련된 주제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막 시작된 시점이라 드러내놓고 항일 운동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이 시기에는 주로 비밀 결사의 모습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대한 광복회’입니다. 대한 광복회는 친일 부호들을 처단했고, 그 과정에서 모은 군자금을 통해 만주에 사관학교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정치 체제인 공화정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단체를 주도한 인물이 박상진입니다. 여기까지가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러고는 1920년대 항일 운동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멈추고 박상진이라는 사람을 한번 만나봤으면 합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과목이 인문학 분야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인문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역사란 사실을 암기해서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존재하는 과목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서 현재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알아나가는 인문학의 한 분야입니다. 공화정을 이끈 광복회를 박상진이 주도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단체를 이끌었던 사람 박상진에 대해서 잠깐 멈추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야말로 역사 공부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상진. 그는 바로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 중 최초의 판사 출신입니다. 그는 구한말 판사에 임용됩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가 되자 판사직을 주저 없이 던져버리죠. 박상진은 당시 너무나도 귀한 인재였습니다. 법에 대해서 정통하였기에,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박상진과 같은 엘리트 조선인들을 앞세워 조선을 통치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박상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제 강점기의 시작은 오히려 출세의 탄탄대로가 쫙 펼쳐지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상진은 그 편안하고 안락할 수 있는 보장된 미래를 주저 없이 내쳐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일제 강점기에 판사 자리에 있으면서 일제에 저항한 독립 운동가들에게 죄(?)를 묻고 형을 선고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판사가 된 이유는 판사의 자리를 통해 억울한 사람들에게 공정한 법의 심판을 내리기 위함이었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친 사람들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제국주의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판사 자리를 던지고, 판사 앞에서 심문을 받아야 하는 독립 운동가의 자리에 앉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1910년대 의열 투쟁을 이끌다가 일제에 붙잡혔고, 일제의 질서에 순응하는 판사 앞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결국 1921년 교수형이 집행되면서 순국합니다. 당시 최고의 엘리트로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힘겨운 항일 독립 운동의 길에 들어서 결국 사형당한 박상진.

“너는 꿈이 뭐니?” 우리 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 꿈은… 판사요. 검사요. 의사요. 교사요. CEO요. 사회복지사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꿈이 아니고 그냥 직업 아닐까요? 왜 우리 학생들은 꿈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왜 자신의 꿈을 ‘명사’로만 이야기하는 걸까요?

역사 공부를 통해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들의 꿈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역사 속 그 사람들은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었던 사람들입니다. 박상진의 꿈은 명사인 판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상진은 판사라는 직업을 통해 세상을 더욱 공정하게 만들겠다는 동사의 꿈을 꾼 사람입니다. 그는 경술국치가 되면서 식민지가 되자 식민지 판사로서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보다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선봉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직업인 ‘판사’직을 그만둔 것입니다. 그리고 부당한 세상에 맞서 싸우기 위해 또 다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독립 운동가’의 길에 들어섭니다.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동사의 꿈을 꾸기 위해 명사의 직업을 바꾼 것입니다. 그에게 ‘판사’는 직업이고 그저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부당하게 식민지가 된 조국에 독립을 안겨주기 위한 삶을 살았던 박상진이 사형되고 그의 아버지가 아들 박상진에게 남긴 편지가 공개되었습니다. “나는 네가 살았을 때는 너의 인망이 이와 같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았어도 그 시대에 아무 이익이 없고, 죽은 뒤에도 후세에 남길 만한 소문이 없이 그냥 왔다가 그냥 가게 됨은 온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일이지만, 만약 너같이 죽는다면 슬퍼할 것이 없다 하겠다.”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고백. 너같이 죽는다면 슬퍼할 것이 없겠다. 이 얼마나 가슴 먹먹한 말인가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동사의 꿈을 꾸었기에 그의 삶은 의미 있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꿀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꿈을 물어볼 때, 혹시 명사인 직업을 꿈이라고 이야기한다면 한 번 더 물어보세요. “그 직업으로 너는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거니?”

최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사로 활동했다. 누적 수강생이 500만 명이 넘는 유명 강사로 <무한도전>, <역사기행 그곳> 등에 출연했다. 현재는 2013년부터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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