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화장실에 있어도 “보건 쌔앰~”

글. 이선옥 보건선생님 (서울금옥초등학교)

고민 고민,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한번 “보건 쌔앰~”을 외치는 어린 목소리에 참지 못하고 “나 여기 있어~ 보건실에 들어가서 기다려” 하고 만다. 부랴부랴 볼일을 보고 나오면 여전히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화를 낼 수가 없다. 초롱초롱한 까만 눈을 가진 아이를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 아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에게 보건교사는 아이들의 다양한 아픔을 해결해줄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존재다. 심지어 교정에 있는 다친 새도 나에게로 가지고 온다. 어린아이들은 작은 상처나 아픔도 크게 느끼고 두려워하며 많은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경험한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으로 이해시키면서 적절한 치료를 하며, 담임교사와 학부모들에게도 필요한 경우 아이의 상태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나의 일 중의 하나다.

어느 더운 여름날 급식시간, 담임선생님이 급하게 1학년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가시는 모습을 발견하고 무슨 일인가 파악하던 중 보건실을 하루에도 여러 번 즐겨 찾는 아이가 뛰어와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달리면서 하는 말이 “친구 팔에 국물이 쏟아졌는데 보건샘이 필요해요”라고 한다. 수돗가로 가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약간의 발적이 있는 정도의 화상이라 냉찜질을 하면서 식사를 하게 했다. 나도 먹다 남은 점심을 먹고 화상 입은 아이의 상태를 살핀 후, 담임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내 손을 잡고 달린 어린 친구가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등을 ‘토닥토닥’하며 “수고 많이 했어요”라고 한다. 보건실에 날마다, 하루에도 네댓 번씩 찾아와 아프다고 할 때는 귀찮기도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어른인 나를 어린아이가 인정해주는 말을 들으니 ‘참 행복하구나’ 하면서 내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보건교사를 한 25년 동안 많게는 몇천 명, 적게는 몇백 명의 아이들이 있는 다양한 규모의 학교에서 근무했다. 규모가 크든 작든 보건교사는 늘 혼자다. 간호사이면서 교사인 나는 병원에 있는 의료인처럼 아주 전문적인 의료기술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보건실 응급처치 중 가장 많은 것이 밴드를 붙이거나, 간단한 드레싱만 해도 되는 외상처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보건교사에게 요구하는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일이 더 많아졌다.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면서 점점 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각종 감염병, 신종플루나 메르스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보건교사 혼자서는 감당하기 역부족이다. 그리고 소아 당뇨병 환아 관리,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의료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쏟아지는 요구의 목소리, 환경의 변화로 많은 아이가 고통을 받는 알레르기성 질환, 심지어 대기오염으로 인한 미세먼지, 황사 등등 건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일단 보건교사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혼자여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은 때때로 일을 하면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도 초롱초롱한 까만 눈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런 행복을 더 크게 느낄 때는 아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며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얼굴을 붉힐 때도 있지만 서로의 열정을 인정하며, 서로 토닥토닥 ‘잘했다’ 칭찬하고 교육할 때, 우리가 하나라고 느끼는 바로 그때다. 그럴 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또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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