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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언어에 드리워진 전짓불

이청준, <소문의 벽>

<소문의 벽>은 군부독재 시대에 출간됐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심의 기준에 따라 내용이 가위질당하거나 아예 통째로 폐기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차단된 사회를 반성적으로 조망했다. 지금은 어떤가? 당장 지난해만 해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큰 사회적 이슈였다. <소문의 벽>을 통해 감시와 억압이 만연한 사회와 표현의 자유에서 발현되는 주체성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글.여미애 학부모(동선유치원, YM고전읽기 대표)

표현의 자유를 갖는 주체성

“현재로선 어떠한 예술가도 통치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어느 작가의 말이다. 9473명에 달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건, 2016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전 정부는 그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념적 검열뿐 아니라 물질적 압박을 해왔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은 4년간 공공연하게 정신적, 물질적 탄압을 받아왔다. 자본의 배제를 이용해 창작의 근간을 흔들며 예술가의 자기실현 욕구를 억눌러 자발적 검열을 내재화시켰다. 한국사회가 그만큼 권위주의적 사회구조 아래 언로를 차단한 채, 예술에 무차별적 폭력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신의 부활, 감시사회로의 퇴행이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차단된 박정희 정권에 출간되었다. 국가통제 및 사회적 억압에 따른 진술 불가능성과 광기를 다룬 작품으로 당시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이 소설은 사회현실의 직접적 반영을 단순한 내용의 차원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일상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당대의 권위주의적 구조와 억압의 메커니즘, 소문과 익명적 권위의 담론, 진술 불가능의 시대에 지식인의 갈등, 군부독재가 확립한 관료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담지한 텍스트다. 특히 알레고리로 표현된 세 편의 소설을 격자구조 형식으로 배치해서 한 소설가의 개인적인 체험을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의 구조로 위치시킨다. 이로써 <소문의 벽>은 단순히 개인의 광기, 감시와 억압이 만연한 사회적 통념을 넘어 ‘표현의 자유’를 갖는 주체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파놉티콘적 세계

파놉티콘, 이 원형 감옥은 한 지점에서 모든 내부가 조감되는 감시체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익명의 권위 아래 자유를 억압하는 폐쇄된 공간에 비유된다. 권위주의적 폭력으로 짓눌러 생활세계 전반까지 영향을 미치는 세계란, 당대 박정희 군부독재의 파놉티콘이다.

박준은 진술공포증에 사로잡혀 소설 쓰기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정신과 의사의 맹목적 편견에 질식돼 분열증을 앓는다. 화자는 박준의 증환을 해명하기 위해 그가 남겨놓은 세 편의 소설과 인터뷰를 연구한다. 박준의 증세의 근본적 원인은 6.25 당시 공비와 경찰이 찾아와 전짓불의 정체를 숨긴 채 좌, 우 어느 편인지 가리기 위해 강제로 진술시켰던 유년의 정신적 외상임을 알게 된다. 또한, 박준이 남긴 세 편의 소설을 통해 박준의 진술 행위에 내재한 고통을 목도한다. 작가에게 진술행위는 절실한 것이다. 박준은 자신의 소설이 거부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미친 척한 것이 아니라 심문관이 자의적으로 박준의 진술을 해석하고 박준의 삶마저 심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심문관은 ‘소문의 벽’을 상징하는 동시에 작가의 집필 행위를 은연중에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 잡지 편집자의 편견, 시대적 통념, 편 가르기, 독자의 무지, 문학 풍토,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모든 이분법의 총합이 심문관이요, ‘소문의 벽’인 것이다. 결국 주체성을 지키려는 박준의 진술 행위는 ‘소문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고 만다.

이처럼 <소문의 벽>은 박준으로 표상되는 ‘말’을 다루는 직업, 당대 지식인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과 배경을 해명하고 있다. 소설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파놉티콘 속에 의사소통이 제한되고 왜곡된 감시사회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권위주의적 감시와 통제는 레이더망처럼 개인의 체험 속에 각인된다. 이러한 전개 양상 자체가 소설가의 개인적인 체험이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망으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소문의 벽>의 서사 자체가 개별자의 체험을 위치시키는 시도이자 박준의 진술행위를 액자소설에 끼워 넣음으로써 알레고리적 방식으로 당대를 이해하는 틀로 작동시킨다.

소문의 담론으로서의 ‘벽’

<소문의 벽>에 제시된 소문의 서사적 전략은 '벽'의 실체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담론이다. 소문은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의 행위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에 대해 입증되지 않은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그만큼 소문의 진위도 확실치 않다. <소문의 벽>에서 박준과 관련된 소문은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라 집단의 공동 작업으로 생겨난 편견의 산물이다. 박준의 소설 게재 권한을 쥐고 있던 안형은 편집자라는 권력의 힘을 이용해 달갑지 않은 박준의 원고를 보류시키고 술집에서의 청탁 소문을 유포했다. 안형의 편견은 소문이 자라기에 안성맞춤인 자양분으로 결국 해당 잡지사뿐 아니라 타 잡지사의 편집자들 또한 박준의 소설을 게재하지 않는다. 결국 화자는 박준 소설의 게재 불가와 연재 중단의 이유가 잡지사 편집자들의 권위적 독선, 비겁함에 있음을 깨닫는다. 게재 결정권을 쥐고 있는 편집자가 외부 압력에 야합하면서 자신들의 이익과 구미에 맞는 원고를 골라 출판하기 위해 소문을 유포하고 박준을 보이지 않는 소문의 벽에 감금했던 것이다.

결말은 다시 소설의 첫 장면과 연결된다. 박준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와 만난 후 열흘간 그의 행방을 쫓는 화자는 전짓불 일화를 통해 자신이 왜 사표를 써놓은 채 일하게 되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화자는 답을 찾았지만 박준의 갈등은 심화된 채 남아 있다. 정신병원에서 ‘정말로 미쳐서’ 나갔다는 소문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유포된다면 박준은 다시 감금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서 독자는 이 비극적인 결말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라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결국 수많은 전짓불과 소문에 둘러싸여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짓불로 상징되는 억압적 존재는 현실의 사회구조 속에 스며들어 익명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진실을 말로 바꾸는 일을 금하는 사회란 자유의 억압을 뜻한다. 전짓불의 존재는 더욱 분화 편재되어 정체불명의 ‘소문’ 속에 몸을 숨기고 감시의 촉수를 세운 채 군부독재 시대에서 46년이 지난 오늘날의 ‘블랙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생활세계 곳곳에 잠입했다.

이제 ‘익명적 권위’의 공포로 명령도, 명령을 기다리는 자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벌거벗은 임금님>의 주인공처럼 불안에 시달리다 심리적 파탄에 이르는 정서적 사살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 저변에 내재한 소문들이 부딪치고 뒤엉켜 만들어낸 편견, 거짓과 오해에 가위눌림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치적 순응을 목적으로 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창작자 안에 내재된 궁극적 자유에 대한 억압이었다. 사회적 배제는 결국 자기검열을 통한 주체성의 소외, 왜소해진 자아로 귀결된다. 편향과 왜곡 없이 세계를 껴안아야 할 주체는 이제 자신의 언어에 드리워진 전짓불의 파리한 불빛을 본다. 전짓불로 빚어낸 주체의 언어는 이제 의미 없는 철자 놀이에 불과하다. 사유조차 죄가 되는 언어, 언급조차 허용될 수 없는 사유, 자기검열의 덫에 빠진 언어는 현전이 아니라 박제일 뿐이다.

소문의 벽

이청준 저 |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청준 초기 문학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중단편집이다. 조현증이 되어가는 한 작가의 잠재의식을 추적함으로써 진실과 억압의 갈등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둘러싼 지향성과 그 반성적 성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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