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학교씨, 장애인은 어디로 가나이까?

학교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특수학교 설립 논쟁의 본질은 특수학교, 특수학급이라는 공간의 특성이나 학교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장애가 있더라도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갖지 않고, 충분한 기회를 바탕으로 원하는 교육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 있느냐이다. 지금 이런 현상이 벌어질 때까지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글.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2017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고용인식개선 공모전 그래픽 디자인 장려상 수상작, 하모니, 임지영

학교는 학생을 가리지 않습니다

글쓴이는 뇌병변 장애가 있다. 부산에서 12년 동안 특수학급은커녕 장애인 화장실, 경사로도 없는 일반학교를 다녔다. 교육청에서 취학 통지서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고, 당시 두 곳밖에 없던 특수학교는 대기자만 수십 명이었으며, 열 곳 넘는 공립학교는 ‘위험하기에 나를 위해서’ 입학을 거부했다. 5살 때부터 입학 가능한 학교를 찾아 전국을 헤맸으나 다니기를 허락하는 학교들은 부모와 떨어져 시설 입소를 해야 하는 곳들뿐이었다. 결국 이미 장애인 학생을 두 명이나 받았던 부산의 사립학교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입학 허가를 문의했다. 수화기 너머 얼굴도 모르는 입학 담당 교사는 딱 한마디만 했다. “학교는 학생을 가리지 않습니다.” 1981년 일이다.

취학통지서는 부모님께서 장학사에게 헌법 제31조를 들고 가서 직접 받아왔다. 사춘기가 불타는 중학교 때는 자잘한 학교폭력과 놀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청산가리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것은 학교에서 만나기 힘든 중한 장애를 가진 학생을 만나서 너무 좋다며 두 번이나 담임을 맡았던 초등학교 때 스승님이었고, 가끔 나의 장애를 매력 있다고 해주는 아주 드문 비장애 친구들 때문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다

올해 들어 한 국회의원이 무릎을 꿇은 장애인 학부모를 외면한 사건 때문에 1977년 12월 16일 특수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40년 동안 누구도 하지 못한 특수학교의 긍정적인 사회인식을 끌어냈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특수학교’를 짓게 하라는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집 근처 시설 좋은 특수학교를 열망하는 일부 학부모들은 환영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장애학생 통합교육의 정책 방향이 후퇴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학교냐 특수학급이냐 하는 논란은 현재의 이 돌발적인 여론과 정책 흐름의 본질이 아니다. 통합교육이라는 가치가 사회통합과 차별금지에 있다면 그 가치는 공간의 특성이나 학교의 종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진대, 유독 장애인 학생에게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과도한 일반화를 한다. 우리는 왜 이런 현상과 결과가 나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특수학교를 늘리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동네 학교의 특수학급이 더욱 중증장애학생의 통합교육에 기여했다면, 특수학교를 반대하던 지역 주민이 동네 학교에 특수학급을 요구하고 자녀들이 장애학생 옆에 앉겠다고 자청했더라면, 졸업 이후 지역사회에서 그들을 적극 고용하고 이웃 주민으로 초청했더라면 그들이 원하는 한방병원을 얻지 않았을까?

교장이 편의시설이나 특수학급을 만들 수 없으니 특수학교로 가시라는 선의로 은폐한 차별과 모욕을 하지 않도록 전국 시도교육청의 교육감과 특수교육지원센터가 교육을 강화하고 징계를 강화한다면, 특수교육계가 학벌과 파벌로 얽혀서 특수학교 자리 나눠먹기를 하지 않았다면, 특수학교가 지역에 완전히 개방되고 민주적이어서 장애유형이나 정도를 가려서 선발하지 않고, 특수학교에 다녀도 장애학생들이 자기 동네에서 원하는 만큼 비장애인 친구를 사귀고 함께 활동할 수 있다면, 특수교사를 보면서 장애학생 스스로 장애인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비장애학생과 부모가 장애인을 낳아도, 장애인 등록을 해도, 특수교육대상자가 되어도 괜찮구나 하는 믿음을 얻는다면, 부모들이 명절 때마다 친인척들에게 특수학교 학생증을 당당히 내보이고 특수학교 졸업식에 초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특수학급이든, 특수학교든, 대안학교든, 홈스쿨이든 상관이 없다. 장애학생이 장애에 대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장애학생 부모들이 시선이 싫어서, 놀림이 싫어서 특수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학생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기회와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주고 있는가? 적어도 비장애학생들은 학교가 마음에 안 들면 전학을 가거나, 유학을 가거나, 자퇴라도 할 수 있다. 국가가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위해 고등학교까지 마음대로 자퇴조차 할 수 없도록 했다면 적어도 특수학급이 특수학교만큼의 서비스를 받고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 투자를 해야 한다. 특수학급에서 특수학교로 전학이 자유로울 만큼, 그 반대도 그만큼 자유로워야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특수학급의 교사가 장애학생을 특수학교로 배제하는 일, 너무 자주 일어나지 않는가?

헌법을 던져라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는 것.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차별과 상처를 내면화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무너져 가는 장애인 당사자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선이 박히더라도, 놀림을 받더라도 그냥 동네 비장애인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고 싶은 장애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특수학교가 있는데 왜 우리 학교 오냐’라는 말을 ‘교사’로부터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중도에 어떤 이유로 장애가 생긴 학생은 적응할 시간도 없이 특수학교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무릎을 꿇기 전에 그 토론회 자리에서 웃으면서 헌법을 당당하게 던져야 했다.

특수학교냐 특수학급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학급이 어떤 학급이냐, 그 학교가 어떤 학교냐, 우리가 장애에 대하여 자긍심을 주며 선택권을 보장하는 학부모가 될 것이냐 아니냐, 특수교사가 진정으로 통합교육의 가치와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전문가이냐 아니냐 그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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