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기울어진 저울, 이제는 바로 세워야 할 때

글. 정성식(한국경제TV PD)

“여러분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눈물을 애써 참으며 이 말을 이어간 장애학생의 학부모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모두 쇼다”라며 고성을 지르다 토론장을 유유히 떠나갔다. 지난 9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평등교육이 거대한 벽 앞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31조 1항)는 말은 대한민국이 국민에게 한 약속이다. 하지만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우습지만, 심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부모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수준에 따라 교육편차는 더 벌어지고 있고, 사교육은 비대해지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를 통해 “기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오늘의 현실은, 미래에는 불평등 수준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불평등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라며 불평등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교육도 이를 비켜갈 수 없다. 국민 대다수가 우리나라 교육 불평등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고, 전문가들은 가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위험한 것은 불평등교육의 대물림이다. 지역이기주의에 의해 통합교육을 저해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불평등교육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자란 아이들이 과연 평등교육을 생각할 수 있을까? 결국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헌법은 완전히 무시된 상황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소수를 위한 불평등은 결국 다수와 소수 본인까지 포함해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5000년 백의민족에 변화가 생긴 건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OECD 국가로 성장한 지난 50여 년이었다. 국제사회 진출과 국제결혼, 해외 이민자와 새터민 등의 증가로 대한민국은 형형색색의 다문화 옷으로 갈아입었다.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며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불평등교육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 속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우수 인재들이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해 힐난의 대상이 되게 할 수 없다. 무릎 꿇은 엄마들부터 일으켜 세우고 평등교육이 확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평등교육과 통합교육의 이념을 알려줘야 한다.

정부와 교육기관은 정치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하는 이익집단의 요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특수학교 설립을 무조건 반대하니 아예 전체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선포한 교육지도자의 배짱이 환영받는 이유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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