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교육

‘카르마’와 설치미술 이야기

‘나’가 아닌 ‘우리’가 되는 설치미술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같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특히 장소와 공간 전체가 작품이 되는 설치미술을 보는 감상자는 작품을 ‘체험’하며 감상하게 된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 청각, 후각, 촉각, 시간성 등을 체험하며 관람자들과도 소통하게 만드는 설치미술의 세계로 떠나보자.

글·사진제공. 이정임 선생님(상경중학교 미술교사)

서도호, 카르마(Karma), 폴리에스테르 수지와 유리섬유 위에 도료, 380x560x120cm, 2003

‘카르마’를 보는 다양한 감상

미술관의 높이 3m가 넘는 공간에 정장바지에 검은 남자구두를 신고 성큼 걷고 있는 거인의 두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두 발 아래에는 언뜻 보면 그림자처럼 보이지만 두 무리의 인간 모형을 한 미니어처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어요. 뒷발 아래의 인간들은 이미 밝혀있고, 앞발 아래의 인간들은 밟히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인간들은 모두 앞을 보며 내달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이 작품에서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게 되나요?

거인의 거대한 발 아래 미약한 인간 군상은 짓밟히지 않으려고 대형을 벗어나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들을 밟아나가거나, 밟히고 말 무엇이 있다는 것조차 고려하지 않는 저 거대한 거인은 무엇의 상징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국가권력이 국민 생활을 간섭·통제하는 전체주의의 상징이며, 시민들이 억압받는 상황을 은유한 작품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까요?

그런데 다시 보면 거인의 발그림자 형태를 벗어나 도망칠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네요. 이상하게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경계가 있는 것처럼 발그림자 형태 안에서 내달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밟혀 있는 인간들은 밟혀 쓰러진 형태가 아니라 거인의 무게를 온몸으로 이겨내며 발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애쓰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 인간들은 거인이 걷는 걸음마다 당연히 생기는 그림자의 복무를 위해 뛰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쯤에서 이 작품의 제목을 봅시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 ‘카르마’라고 합니다. 산스크리트어이며, 우리말로 하면 ‘업’이라고 해요. 업은 불교에서 중생이 몸과 입, 생각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고, 인과응보로서 전생의 소행을 현세에 갚는 일이라고도 해요. 업에는 ‘개별적인 업’과 ‘공동체의 업’이 있다고 하는데, 개별적인 업의 경우 윤회를 통해 개인적인 인과응보를 받는 것이고, 공동체의 업은 일정한 단위의 공동체가 특정한 업을 함께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회에서 환경을 오염시켰을 때 그 결과를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받는 것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어떤 감상자들은 집단에 묻힌 개인성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도 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복무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를 풍자했다고도 하며, 모두의 힘이 모여 함께 책임져야 할 운명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제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의 공은 여러분에게 던져드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자유로운 감상을 해보세요.

체험하며 감상하는 설치미술

서도호 작가는 한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가입니다. 동양화와 회화를 전공했지만, 비우연적이며 직접적 체험으로서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의 입체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조소를 전공해 설치미술 작가가 된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예술가죠.

설치미술이란 무엇인지 잠깐 알아봐요. 설치미술은 현대미술의 표현방법의 한 장르로, 작가의 의도에 따라 공간을 구성하고 변화시켜 장소와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체험하는 예술을 말합니다. 공간 전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감상자는 작품을 ‘체험’하며 감상하게 되는 것이죠.

설치미술은 전시공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시공간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바뀌고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설치미술은 나와 작품의 일대일 관계로써 은밀한 감상이 아니라, 작품이 놓인 공간에서 함께 감상하는 사람들과 느낌이나 표현을 나누기도 하고, 일시적이나마 공동체의 느낌이 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김도현 외 3명, 무제, 검정 비닐봉투(大), 80x200x80cm, 2017

위쪽의 작품은 제가 다니는 학교 3학년 학생들의 설치미술 작품 중 한 작품이에요. 수업의 큰 제목은 ‘감각의 세계’였고, 감각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물질성을 탐구해 선택한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재구성을 통해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수업이었어요. 준비물 준비가 안 된 모둠이 즉흥적으로 학교 쓰레기통에 넣어두는 검정 쓰레기봉투 큰 것 네 장을 구해 바람을 넣어 묶고 연결해 학교 천장에 설치했어요. 순식간에 설치된 이 작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됐는데 제목이 ‘둥글고 가벼운 검은 공기 4개’라고 합니다.

바람이 들어간 이 검정 봉투는 아이들이 껴안고 만지고 비비고 쳐대는 통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가지긴 했지만, 이 작품에 아이들이 모여 각자의 느낌대로 똥, 공중부양 애벌레, 구속, 작고 검은 세상 속의 나 등의 제목을 달면서 자신의 감정을 주장하며 함께 깔깔대고 좋아했어요. 이곳은 그저 오가던 복도에서 작품을 중심으로 친구들과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공간으로 장소성이 달라진 것이죠. 이처럼 설치미술은 과거 시각중심주의 미술을 넘어 청각과 후각, 촉각, 시간성을 체험하며 공간에 함께 있는 관람자들과도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역할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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