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책

인류의 미래를 여는 질문

피터 스턴스,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한 국가나 공동체가 어떤 사회인지 알려면 먼저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에는 사회와 문명의 수준이 그대로 투영된다. 아이들의 삶 속에는 어른들의 삶이 겹쳐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여는 열쇠가 바로 아이들이며, 그 시작은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글. 오지연 주무관(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

<지금 서울교육> 11월호 ‘함께 읽는 책’에는 거대 역사 담론이 담긴 책 세 권이 소개됐다. 그중 한 권은 유럽이 근대 이후 역사를 지배하게 된 것은 인종적·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환경결정론이 담긴 <총 균 쇠>이다. 그리고 다른 두 권은 과학혁명이 인간을 전기적 데이터의 흐름과 알고리즘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유발 하라리의 기술결정론이 담긴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이다. 이 세 권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인간을 넘어 미래의 비전을 만들 수 있을까? 알파고의 세계는 닫혀 있다. 우리는 자연법칙과 인공기술에 얽매이지만 ‘미래의 비전’은 인간의 열린 상상과 도전 의지에 의해서 꿈꾸고 실현할 수 있다.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 세상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서 역사적 사실보다 담론을 생산하는 현재 우리들의 관점이 더 중요하다. 과거는 현실의 문제의식에 따라 새롭게 구성된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의 비젼을 만들어갈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누구나 아이들은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보호받을 수 있으나 선택할 수 없다. 아이들은 하루빨리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스스로 자유롭게 주장하며 존중받는 주인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세상은 어른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제 독립적인 어른이 되었으니 자유롭게 살라고 한다. 하지만 연료 없는 자동차가 무슨 소용인가? 자유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만 존재한다. 대부분 어른은 생계를 얻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자유를 포기한다. 어른의 마음은 안타깝고도 복잡하다.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된다. 오래된 과거로부터 세계화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열쇠이다. 행복한 아이들만이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터이다.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행복 수준과 정비례한다. 이 책은 인류가 아이들을 대해온 방식을 제시하며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게 도와준다.

세계사 속의 아이들

원시경제 사회에서 오늘 사냥하지 못하면 내일은 없었다. 냉혹한 적자생존 상황에서 식량은 늘 부담이었다. 아이들이 ‘짐’이 될 때는 버려지고 살해되기도 했다. 사냥에 동참할 수 있는 아이들은 곧 어른이었다. 그 시기에는 유아와 어른만이 존재했다. 어른도 스무 살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저마다 생존 앞에서 동등했다.

약 1만 년 전 농업이 시작되고 금속이 사용됐으며 정착 생활이 시작됐다. 농업이 가져온 명백한 변화는 아이들의 효용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온 가족의 노동이 필요했고,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중심 역할은 노동이었다. 아이들은 상당히 어린 나이부터 가정 경제를 도와야 했다. 노동이 가능하면 곧 자신의 생계를 위해 생산에 참여해야 했다.

고대로부터 모든 문명에서 귀족의 아이들을 제외한 대부분 아이는 일할 수 없으면 먹을 수 없었다. 복종은 필수적으로 강요됐다. 특히 가부장제가 발달한 곳에서 더 심했다. 아버지에 대한 불복종은 죽음을 초래하기도 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죽이는 것도 허용됐다. 가계에 도움이 되면 아이들을 버리기도 때로는 팔기도 했다.

이어진 역사에는 급격한 종교의 확산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비로운 신의 은총으로 은유됐다. 그러나 복종은 종교라는 명분을 추가하여 더 강화됐다.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고, 아이들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있으니 훈계의 매로 다스려야 했다. 그랬기에 광부인 아버지에게 가혹한 훈육을 당한 루터가 종교개혁의 주도자가 되었으리라.

산업혁명으로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한 근대 서양에서 아이들의 본분은 노동에서 학업으로 서서히 전환됐다. 배우지 않으면 시민이 될 수 없었다. 새로이 등장한 국민국가는 교육을 통해 ‘정치적 충성심’을 확보하고자 했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정보다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부담은 가족의 몫이었다. 물론 상층 아이들과 하층 아이들은 다른 교육을 받았다.

근대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전제했다. 그러나 자유는 허구였다. 세계는 전쟁으로 치닫고, 격렬하고 차가운 갈등을 거쳐 복지주의로 수렴되어가고 있다. 오늘날 유엔 등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닌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본다. 이를 널리 안착시키기 위해 각 국가는 국제기구를 빌려 협약을 맺고 생존, 발달, 보호, 참여에 관한 기본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인류는 600만 년에 걸쳐 진화했다. 냉혹한 적자생존의 경쟁과 가혹한 기후환경의 변화에도 살아남았다. 사라진 수많은 종과 달리 영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으로 찾아낸 답은 ‘관점과 전략’이다. 숲에만 머물러 오랑우탄이 되기보다 숲을 떠나 과감히 다양성을 추구하는 도전적 관점을 채택해 인류가 됐다. 집단에 순종하며 개체를 포기하고 전체만이 남은 개미가 되기보다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하되 개별자아를 존중하는 전략을 실행해 인류가 됐다. 그런데 인류의 이러한 발전과정과 달리, 우리는 아이들을 정답으로 줄 세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아이들이 질문을 통해 미래를 열도록 도와주고 있는가?

‘나만의 아이에서 우리 또 마을의 아이들로’ , ‘아이들과 부모들이 모두 행복한 가정’ , ‘아이들을 책임지는 학교’ , ‘교복을 입은 시민으로’ , ‘함께 고민하는 아이들의 진로 찾기’ , ‘못난 아이도 잘난 아이도 함께 어울리는 더불어 숲 교육’ , ‘부품이 아닌 인간이 되는 노동’ , ‘지금을 희생하지 않는 지금도 즐거운 교육’. <지금 서울교육>이 관심 가진 올해의 주제들이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고 태어날 때부터 나쁜 아이들은 없다. 예정된 운명도 없다. 사회가 주는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이다. 평등이 자유에게 물었다. “자유야 행복하니?” 자유가 평등에게 답했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어. 너와 함께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어.” 자유와 평등이 한 몸이듯 아이들 삶 속에 어른들의 삶은 언제나 겹쳐 있기 마련이다.

공부는 왜 하는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역사의 시기마다 아이들은 연약한 모습으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본다.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인가? 약하지만 선량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함께 끌어안고 나눌 때 그곳이 곧 좋은 세상이다.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우리는 책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지금 서울교육>은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이제 세상은 파파고가 통역을 대신하고 이미 아는 정답은 알파고가 초 단위로 알려주는 시대가 됐다. 이 책에 인간의 미래를 여는 멋진 답은 없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피터 스턴스 저 | 김한종 역 | 삼천리 펴냄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류의 경험을 새로운 눈으로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얼마나 관념적이고 편견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오늘날 글로벌 사회 속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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