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교육

꽝꽝 언 땅도 비집고 피어오르는 교육의 봄

에스토니아 영화 <나의 펜싱 선생님>

글. 이중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에스토니아에는 긴 겨울이 찾아왔다. 에스토니아의 작은 마을 합살루도 마찬가지다. 봄은 더디게 찾아왔다. 이념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와 내 가족을 사찰하고 언젠간 붕괴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합살루 사람들은 최소한의 것만 허용되는 삶을 산다. 그때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엔델 선생님이 부임한다. 대도시에서 시골 마을로 부임한 선생님을 두고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교장선생님은 의심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엔델은 평범한 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전쟁 때 나치 소속이었다. 그의 뜻은 아니었다. 에스토니아를 점령한 나치는 청년들을 강제 징용했고, 엔델은 운 좋게 군에서 탈출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를 소련이 점령한 이후 상황은 악화됐다. KGB는 나치 관련 인물이면 어떤 이유든 부역죄를 씌워 시베리아 유배지로 보냈다. 엔델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합살루에 온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본래 교사가 아니었던 그가 교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극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낭만적이다. 부임 후 토요 펜싱 교실을 연 엔델 선생님은 조금씩 학생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 또한 열어간다. 토요 펜싱 교실에 엄청난 수의 아이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놀란 엔델 선생님은 펜싱의 기본인 전진과 후진 동작을 가르친다. “내가 앞으로 가면 너희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라. 너희가 앞으로 나오면 내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겠다. 이것이 기본 동작이다.” 엔델 선생님이 한 걸음 다가가면 아이들은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들이 한 걸음 다가서면 엔델도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들과 놀라운 상호작용을 경험한 엔델은 첫 만남, 첫 대화, 첫 연습을 통해 교사의 길로 성큼 들어선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국 펜싱 대회 참가를 위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엔델 선생님. 스포츠 경기는 결과와 상관없이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름도 생소한 시골 마을의 아이들이 연전연승을 거두는 이야기보다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을 보고 복잡한 생각에 잠긴 엔델 선생님을 묘사하는 데 더 큰 공을 들인다. 신체적 자유보다 교사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자유를 택한 엔델 선생님은 결국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탈린 사후 많은 정치범이 유배지에서 풀려났고, 엔델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고향도, 레닌그라드도 아닌 합살루행 기차에 오른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펜싱클럽 아이들과 그의 피앙세 그리고 겨울을 ‘이겨낸’ 봄이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펜싱클럽이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의 봄은 결코 기다린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겨우내 언 땅을 끊임없이 뚫고 나오려는 씨앗만이 봄을 쟁취한다. 주어지는 교사는 없다. 다만 만들어지는 교사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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