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가래떡데이

글. 이현자 선생님(서울일신초등학교)

해마다 11월 11일이 가까워지면 ‘올해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뻔한 상술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선물을 주고받는 설렘과 즐거움에 용돈을 쏟아붓거나 부모님을 졸라서 빼빼로를 한가방씩 담아왔다. 의기양양해져서 마음에 드는 아이부터 줄 세워 빼빼로를 나눠주는 아이와 하나라도 받아보려고 기를 쓰는 아이들로 교실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고, 그나마도 손에 쥐어보지 못한 아이들은 느닷없는 상실감에 허전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은 왔는데….

“띨룩!” 메신저에 ‘농업인의 날 가래떡데이 행사’라는 제목의 메시지가 떴다. ‘농업인의 날? 그런 날도 있었나?’ 하면서 파일을 열어보니, 동 학년 선생님 한 분이 학급운영비로 떡을 맞추고 물엿을 사서 아이들이 각자 준비해온 다양한 고물과 같이 떡꼬치를 해 먹으려 한다며 함께 나누자는 메시지였다. 알아보니 가래떡데이는 상업적인 기념일 대신에 가래떡을 먹었던 것을 계기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하는 쌀 소비 활성화를 위한 농업인의 날 행사였다. ‘그래! 이거야. 가래떡을 먹으며 농민들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고, 우리 쌀의 소중함도 알게 하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모인 동 학년 회의 시간에는 단연 가래떡데이가 주제였다. 아이들에 대한 열의와 사랑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발 벗고 함께하는 동 학년 선생님들이었기에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11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예상한 대로 1초도 지나지 않아 대답이 돌아왔다. “빼빼로데이요.” / “그래. 그런데 사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야.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이래. 그래서, 우리 농민들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고 쌀의 소중함도 생각해보도록 떡을 한번 만들어 먹어볼까?” / “네. 좋아요.”

다음 날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에 한 움큼 정도 되는 쌀을 가져왔다. 전날 회의에서 2학년 아이들이니까 쌀을 조금씩이라도 가져오게 한 뒤 그 쌀로 떡을 해 먹는 것이 더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가져온 쌀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아 더 보태야 했지만….

다음 날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가래떡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반응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선생님! 이게 어제 저희가 가져왔던 쌀이에요?” , “선생님이 직접 이렇게 만든 거예요?” 아이들은 떡을 한 가닥씩 가르고, 물엿을 바르고, 고물로 가져온 깨와 콩가루 등을 묻혀가며 “맛있겠다!” , “먹고 싶다!”를 연발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손놀림에 제대로 고물이 발라지지도 않고 여기저기 흘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았다. 함께 나누지 못한 허전함도 없었고, 모두가 즐거운 자리였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언제 이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하나’ 하며 아이들을 둘러보던 중 손쉽게 끝마무리를 짓도록 도와준 건 배부른 개구쟁이들이었다. 떡을 담아 먹던 화랑이의 접시가 부메랑이 되어 허공을 가르고, 선우의 비닐봉지가 비눗방울마냥 천장을 향해 떠오르자 하나둘씩 엉덩이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즐거움에 과도하게 흥분한 개구쟁이들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아 아수라장이 되기 전 얼른 뒷정리를 서둘렀다. 수돗가에서 하는 설거지조차 흥겨웠던 아이들은 더는 빼빼로데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가래떡데이 행사를 올해도 아이들과 함께했다. 아이들이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기억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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