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끝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 졸업

1세대, 30년을 통해 바라보는 졸업

1987년과 2017년, 시대별 졸업의 의미

아쉬움과 설렘, 두려움과 기대. 한 과정의 끝임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이기도 한 졸업에는 상반된감정이 얽혀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 교육과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졸업을 맞이하며 느끼는 감정 역시 당시의 교육과 사회의 모습에 따라 달라져왔다. 1987년과 2017년, 고3의 위치에서 각각의 시절을 경험했던 두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졸업을 주제로 30년을 관통하는 세대 간 간담회를 가졌다.

글. 변춘희(시민기자단) / 사진. 이승준

졸업식의 모습과 의미의 변화

변춘희 오늘은 역사적 의미를 담아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끈 6월 민주항쟁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부모님 세 분과 2017년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혁명 때 고3을 보낸 학생 세 분을 모시고 ‘졸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초대할 때는 고3이었는데 이제 졸업을 했지요? 졸업 축하합니다. 졸업 소감 한마디씩 말씀해주세요.

김태경 졸업식 전날까지는 두려움이 컸는데 막상 졸업하니까 너무 신나고 홀가분해요.

이현빈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졸업이 딱히 다른 건 없어요. 다른 학교로 옮겨 가는 정도의 느낌이에요. 아, 초등학교와 중학교보다 졸업식이 간결해서 좋았어요. 구청장님이 졸업식에 참석하신 걸 보고 ‘선거가 얼마 안 남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오윤지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는 달랐어요. 어제 졸업식에서 2학년 학생이 송사를 하고 졸업생이 답사를 하면서 3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영상으로 보여줬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야자를 하느라 학교에 오랫동안 있어서 중학교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스마트폰이나 SNS로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한밤중에도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니까 헤어짐에 대한 느낌이 우리 때와는 다를 거예요. 김희은

변춘희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식에 부모로 참석하셨는데, 예전의 졸업식과는 많이 다르지요? 감회를 좀 들려주세요.

김희은 딸이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저는 27회, 딸은 57회 졸업생이에요. 예전에는 특별한 학생 몇 명만 앞에 나가서 상을 받고 나머지는 지켜보는 졸업식이었는데, 400명이 넘는 학생이 모두 앞에 나가서 졸업장을 받고 담임선생님이 하나하나 학생 이름을 불러주는 게 인상 깊었어요. 졸업생들이 직접 노래하고 춤도 추고 영상도 만들어서 보여줬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30년이 지나니까 학교도 변하는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황혜정 당시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엄마는 여상을 가라고 권했는데 제가 벌어서 대학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어요. 10시까지 야자를 했고 대학에 합격해도 즐겁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졸업했어요. 현빈이는 일반고에 다녔는데, 학교에 갔더니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 이름을 게시해놨더라고요. 전체 학생 수와 비교하면 너무 적은 수만 대학에 가서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김영근 저는 공업고등학교 진학반이었어요. 3학년 1학기에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을 하고 20여 명 정도만 대학 진학을 준비했어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죠. 졸업때까지도 인문계에서 공부한 학생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진학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제가 졸업할 때는 군대 문화가 학교에 남아 있어서 강당이 있는데도 그 추운 날 운동장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일렬종대로 서서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던 기억만 있어요. 당시 운동장에서 졸업식을 지켜보던 부모님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이고, 그 분들과 같은 세대가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군대 문화가 그대로 학교에 이어지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희 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추위를 견디며 운동장에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했는데, 따뜻한 강당에서 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오윤지 추운 겨울에 운동장에 서서 1시간 씩이나 꼼짝도 못하고 서 있는 졸업식이라니 전쟁 때 이야기 같아요.

김영근 지금은 헤어지는 슬픔보다 “이따 저녁에 다시 만나서 맥주 한잔 마실까?” 하는 정도의 가벼움이 느껴졌어요.

고등학교 졸업은 초등학교, 중학교와는 다른 감정이 들었어요. 졸업식에서 3년 동안의 학교생활을영상으로 보여줬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야자를 하느라 학교에 오랫동안 있어서 중학교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오윤지

변춘희 졸업이라고 하면 한 과정을 마쳤다는 뿌듯함,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설렘, 기대감과 두려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죠. 예전에는 졸업식 하면 이별, 눈물, 밀가루, 이런 걸 떠올렸는데 요즘은 졸업식 하면 뭐가 연상되나요?

이현빈 동복 교복이요. 평소 잘 안 입는데 졸업식 때는 다들 시커먼 교복을 입고 오더라고요.

김태경 아쉬움과 헤어진다는 느낌은 있는데 울지는 않아요.

오윤지 친구들이랑 사진 찍느라 바쁜 날이죠. 중학교 졸업식 때 졸업생들이 다 함께 운동장에서 플래시 몹을 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연습하면서도 재밌었어요.

김희은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스마트폰, SNS 같은 걸로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잖아요. 윤지가 영화 <1987>을 보고 와서 엄마는 친구를 만나려면 어떻게 연락했냐고 물었어요. 집으로 전화해서 “누구 친구 누구인데요, 누구 있나요?”라고 물어서 있으면 연락이 되고 없으면 연락을 못했고 편지로 연락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한밤중에도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니까 헤어짐에 대한 느낌이 우리 때와는 다를 거예요.

예전에는 군대 문화가 학교에 남아 있어서 강당이 있는데도 운동장에서 일렬종대로 서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입학식과 졸업식을 했어요. 지금은 따뜻한 강당에서 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김영근

고3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

변춘희 몇 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끌면서 그 시절의 감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1987>이 화제가 되면서 엄마 아빠는 그때 뭐 했냐는 질문을 주고받기도 하던데요. 저는 딸한테 체육관선거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초등학생 때부터 전교학생회장 선거를 할 때 체육관에서 했다는 거예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뽑았다고 했더니 자기는 학생회장도 직접선거를 했다며 대통령과 학교 회장을 간접선거로 뽑았다는 사실을 아주 낯설어하더라고요. 3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를 실감했어요.

김영근 지금은 직접선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피땀과 노력으로 얻은 거죠. 1987년 당시 공업고등학교는 야자가 없어서 저는 남산도서관에서 도서관이 끝나는 10시까지 공부를 했어요. 6월 민주화 항쟁 때는 일찍 도서관을 나서서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도망 다니고 쫓아다니는 걸 봤어요. 대학교에 가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 했는데 대학 때 전면에 나서지 못한 게 아쉬워 지난 촛불집회 때 태경이한테는 맨 앞에 나가라고 부추겼죠.

이현빈 엄마는 1987년에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2017년에 광화문에 나갔어요. 부정부패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어요. 저는 촛불시민이었어요. 그리고 2017년은 해피엔딩이었죠.

황혜정 부모님이 노동자였는데도 데모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라고 하는 분이었고, 신문도 안 보고 뉴스도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저희 학교 옆이 동아대학이었는데, 최루탄이 날아오고 하니까 왜 데모를 해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 라고만 생각했어요.

김희은 1987년 때 고3은 오히려 1987년을 잘 몰라요. 저희 집이 신촌에서 20분 거리였는데, 고3 때는 공부하느라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중에 원서를 접수하러 대학교에 갔다가 벽에 붙은 광주 사진을 보고 무척 놀랐어요. 처음 접하는 낯선 세상이었죠. 윤지가 <1987>을 보고 엄마는 20분 거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하더라고요. 2017년에는 같이 광화문에 나갔어요. 저도 역사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해요. 우리 아이도 그게 자랑이길 바라죠.

김태경 1987년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엄마 아빠랑 연결해본 적이 없었고, 마냥 먼 얘기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보다 가까운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여전히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현장에 있던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저도 2017년에는 고등학생 연대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어요.

지금가지 저를 지켜주던 울타리 하나를 벗어나는 느낌이라서 많이 무섭고 두렵고 불안해요. 제가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미래가 보장된 게 아니니까 하나하나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돼요. 김태경

변춘희 다들 역사의 주요 인물들이군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다고 했을 때 기대감이 큰가요? 불안감이 더 큰가요?

이현빈 불안감이 더 크죠. 대학도 원하는 곳에 갔다기보다 합격한 곳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거고, 앞으로 경쟁하면서 원하는 걸 얻을수 있을까 생각하면 벌써 불안해요. 대학 공부는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고, 학사, 석사, 박사과정까지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군대도 갔다 와야 하는데 그 과정을 다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김태경 사회로 나가면 생각해야 할 게 많을 것 같고,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던 울타리 하나를 벗어나는 느낌이라서 많이 무섭고 두렵고 불안해요. 제가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미래가 보장된 게 아니니까 하나하나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돼요.

오윤지 저는 불안과 기대가 반반인데,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가 막막해져서 불안해요. 불안해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즐기자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앞으로 경쟁하면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벌써 불안해요. 대학교에서는 공부도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고 더 많이 해야 하고, 군대도 갔다 와야 하는데 그 과정을 다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이현빈

변춘희 대학을 가면 더 좋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믿었던 30년 전과 달리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현실 탓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지금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며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희은 보통 멀리 보라고 하는데 너무 멀리 보면서 좌절하지 마세요. 저는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이것저것 재보고 생각하느라 시작도 못한 일이 많아요. 너무 먼 미래를 보면서 좌절하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황혜정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밤늦게까지 야자를 하면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상은 크게 변하지도 않았고 지금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경쟁하며 힘들어하니까 뭔가 해주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어요. 대학에 안 가더라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지금 사회에 나가는 학생들과 함께 만들고 싶어요. 같이 만들어가요.

김영근 저는 학생들이 책과 신문을 많이 읽으면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 관심을 갖고 진보, 보수에 상관없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가기를 바라요. 오늘 현재를 느끼고 즐기며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반고에 다니는 아이의 학교에 갔더니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 이름을 게시해놨더라고요. 전체 학생 수에 비해 너무 적은 수만 대학을 가서 나머지 학생들은 어디에서 무얼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황혜정

변춘희 졸업으로 이행시를 만들어보자고 했더니 현빈 군이 ‘졸업은 업그레이드만은 아니다’라고 지었네요. 어느 한순간이 의미를 갖기보다 작은 순간이 모여 나의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 대한 관심, 주변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찾아 만들어가길 바라며, 졸업의 의미를 짚어본 오늘 이 시간도 우리 삶에서 소중한 부분이었기를 바랍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