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교육

‘입시 지옥’, 평생의 트라우마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이 남긴 상처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 경쟁. 우리의 학생들은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 중심 교육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비교와 경쟁이 습관처럼 머리에 남아 평생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겪는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의 눈으로 오늘날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글.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

한국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 ‘입시’

인간은 적응력이 좋은 동물로 보이지만 실은 뇌가 발달한 만큼 심리적으로 매우 약한 존재다. 특히 대단히 민감한 어린 시기에 입은 심리적 상흔은, 많은 경우 무덤까지 인간을 따라다닌다. 공포 등과 연관된 기억은 편도체(扁桃體, amygdala)라는 뇌의 부분에 저장되어 있으며, 편도체에 저장된 내용은 죽을 때까지 바꾸기가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를 포함해 어린 시절에 학교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학폭’의 끔찍한 장면을 밤의 악몽으로 다시 마주친다. 나에게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기억이 편도체에 여전히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트라우마가 있는가 하면 다수가 공유하는 집단적 트라우마도 있다. 전쟁, 학살, 공황의 기억을 제외하고도, ‘정상적’ 사회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집단적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스트레스 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피고용자가 무려 80%나 되며, 40%는 아예 ‘대단히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또 14%나 되는 피고 용자가 동료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해고가 쉽고 노동자 보호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전쟁 같은 일터’는 집단적 트라우마의 발상지다. 다수가 ‘일’ 생각만 하면 온몸에 아드레날린의 과다 분비를 느끼는 나라에서 직장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과연 놀랄 일인가?

해방 후 70여 년 동안의 한국 역사는 엄청난 규모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만들어냈다. 한국전쟁부터 IMF 사태까지 말이다. 70~80년대에 군대에 갔다온, 특히 대학생 때 강제징집의 피해자가 된 한국 남성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대부분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을 한 번이라도 꾼 적이 있다고 말한다. 상당수는 그런 악몽을 계속 꾼다. 폭력이 만연한 군대는 집단 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토양이 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군대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 모두가 겪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또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트라우마가 있다. 이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바로 ‘입시’ 트라우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의 토양

긍정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경험도 한 집단에의 소속을 결정짓는다. 대학에 진학하는 고등학교 졸업자 외에도 일단 학교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입시 지옥’까지는 아닐지라도 학습 경쟁 등 ‘공부 지옥’의 맛은 약간이라도 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성적 경쟁, 입시 등 ‘공부 지옥’의 경험은 한국인이라는 집단에 소속되기 위한 일종의 ‘조건’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공부 지옥’은 한국인으로서 살기 위한 통과의례와 같은 위치를 한국인의 인생주기에서 차지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경험이 통과의례인 동시에 개인을 평생 악몽에 시달리게 하는 트라우마의 토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입시 중심의 교육을 경험해본 수십 명의 한국인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있다. 이들의 ‘입시 공부 시절’에 대한 증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 신체적 고통에 대한 기억은 매우 뚜렷하다는 것이다. 장기간 부동자세와 운동 부족 등도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사실 일종의 고문에 해당된다고 생각되는-수면 박탈이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7 한국 아동 청소년 인권 실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고등학생은 보통 6시간 10분만 잔다고 한다. 이는 OECD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적은 청소년의 수면시간이다. 공부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일본에서마저도 청소년이 평균 7시간 42분 잔다고 하는데 말이다. 10시간 넘게 자는 미국 청소년과는 굳이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나와 이야기를 나눈 ‘입시지옥 유경험자’ 같은 경우,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평균 4시간 정도만 잤다고 대부분이 털어놓곤 했다. 사실, 성인보다 더 많이 자야 하는 10대에 이 정도의 수면 박탈은 그야말로 ‘고문’에 해당된다. 이런 경험이 쌓인 청소년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 만성피로, 그리고 우울감과 이유 없는 공포감 등의 증상을 보인다.

둘째, 심적 고통 중 가장 나쁜 것은 부모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고함과 폭력으로 대응했던 부모에 대해서,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봤다. 부모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학습 노동에 대한 감시자 또는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에서 수면 박탈 등의 고통을 당하는 학생의 원망은 바로 부모에게 돌아간다.

셋째, 비교와 경쟁의 스트레스가 개인을 엄습하여 영원히 그의 머릿속에 남는다는 것이다. 오슬로는 공부를 성적과 졸업장이 아닌, 본인의 흥미 위주로 공부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입시 교육을 경험한 한국의 학생들은 이러한 평온한 오슬로에 와서도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급우들을 살피면서 ‘상대평가에서 내가 과연 유리할까’를 판단하게 된다고 한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경쟁하면서 공부하게 되는 것, 나아가 인생을 일종의 전장(戰場)으로 여기는 것은 뇌가 그렇게 인식할 정도로 이미 습관이 됐다는 뜻이다. 마치 내가 불량배 같은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공포감을 몸으로 다시 느끼는 것이 습관처럼 굳었듯이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뇌의 편도체에 새겨진 공포감과 스트레스의 기억이다.

이처럼 ‘입시 지옥’은 거의 전 국민이 겪는 트라우마이며 재앙이다.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린 입시경쟁의 경험은 폭력적이며, 피해자를 만들어 다수의 심신을 파괴하고 평생 씻기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대학 평준화와 학벌 사회의 본격적 해체, 그리고 경쟁적 입시 제도의 궁극적 폐지야말로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한국사를 전공했으며 가야사로 모스크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오슬로대학에서 한국사와 한국 사회, 정치, 북한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명문대’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 노르웨이어로 한국교육의 대학 서열화 등의 문제점을 설명할 때마다 부끄러움과 슬픔을 강하게 느끼며, 학벌과 입시 지옥, 훈육주의 교육이 없는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일상에서 늘 각종 교육 문제와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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