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영어 조기 교육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글. 김태정(마을교육공동체 함께배움 정책위원장)

교육부가 얼마 전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를 꺼내 들었다가 일부 학부모들과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하자 일 년을 유보했다. 교육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자 이젠 초등 방과후 영어 수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14년 시행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오는 3월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은 금지된다.

방과후학교 위탁·운영업체 모임인 ‘전국방과후법인연합’은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를 철회하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영어 조기 교육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영어 조기 교육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일례로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의뢰한 전문의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은 “조기 인지 교육은 영유아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 영어 교육학 교수들도 이중언어 환경이 아닌 한국에서는 영어 조기 교육은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영어 조기 교육을 금지하는 교육부의 입장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왜 그럴까? 불안감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인간을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여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뇌과학에 따르면 발생학적 측면에서 논리적이고 추상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관장하는 전전두엽 등 신피질은 쾌락, 고통, 공포 등을 관장하는 변연계에 비해 뒤늦게 진화했다. 그래서 변연계는 파충류의 뇌라고도 불린다. 이는 인지과학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데, 이성보다 감성이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해도 감정적으로 이미 손상된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물며 공포, 두려움, 불안은 어떻겠는가? 한마디로 불안이 영혼(이성)을 잠식하는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 시장이 활성화된 이면에는 바로 이 불안감이 강력히 조장되고 작동한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사회 전 영역에서 엘리트 파벌을 형성하는 학벌사회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모두 상위권 대학 진출에 목을 매게 되는데, 대학입시의 주요 과목 중 하나가 영어다. 게다가 대학입시 영어 문제의 난도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풀기 어려울 정도이며, 제한된 시간 안에 긴 지문을 읽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영어 조기 교육 금지라는 조치는 그것이 아무리 타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학부모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현 정부의 탄생은 엄동설한에도 수개월 동안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촛불광장에서는 국정농단 규탄, 적폐청산만 외친 것이 아니다. 교육과 관련한 수많은 의제가 제기됐다. 그중 하나가 입시폐지, 대학 평준화였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영어 조기 교육 문제는 네거티브하게 ‘금지’를 내걸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 개혁을 포함한 보다 총체적인 교육개혁의 방안 속에서 함께 다루어졌어야 한다. 즉, 현재의 지옥 같은 입시 경쟁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영어 조기 교육이 문제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학부모들 귀에는 그 말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자! 첫째,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해야 할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한국이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지도 아니고, 영어를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 모국어처럼 영어에 능통해야 할 이유가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은 영어권에서 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영어 교육에 대한 목표 자체가 수정되어야 한다.

둘째, 대학입시 영어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수준으로 제한되어야 하지 않을까? 원어민도 풀기 어려운 수능영어는 결코 정상은 아니다. 최근 수능영어 자격고사화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즉, 영어가 국제적인 공용어라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지장이 없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된다.

셋째, 영어 능력의 함양은 사교육이 아닌 공교육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일례로 핀란드 등 북유럽의 학생들은 영어를 꽤 잘한다. 그 학생들이 사교육에서 영어를 배운 게 아니다.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니다. 모국어가 익숙해진 단계에서 공교육에서 체계적으로, 그것도 아주 실용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대학 서열이 없고, 우리와 같이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입시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 조기 교육은 결국 사교육 문제와 연동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왜 사교육이 발생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치켜세워지기도 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교육 부담은 ‘에듀푸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산업화세대 이후 태어난 에코세대는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정작 자신은 노후대비도 못할 지경에 처해 있다. 이 모든 것이 대학 서열 체제와 입시 경쟁 교육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두는 한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교육 시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중언어 환경이 아닌 사회에서 영어 조기 교육은 수많은 언어학자의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그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어 심지어 인지 능력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불안감에 조기 교육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 때문에 대학 서열 체제 해소, 대학입시 개혁, 공교육 혁신이라는 총체적인 개혁의 전망 속에서 영어 조기 교육 금지가 아닌 영어 교육 정상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 수업 금지 일 년 유예는 이러한 대안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또 그 대안은 소수 교육부 관료들의 손이 아니라 교사, 학생, 학부모,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나가야 한다. 핀란드가 교육선진국이 된 것은 30여 년이 넘는 긴 교육개혁의 시간을 교육 주체, 국민과의 협의를 통해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면 그에 걸맞게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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