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의 수다

교육에서 학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학부모의 정체성과 역할

학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가 결석하지 않도록 꼬박꼬박 학교에 보내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내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이 진정한 학부모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학부모가 교육 주체로서 실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우리의 학교, 그리고 사회는 학부모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등 학부모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엄마, 아빠의 수다를 통해 들어본다.

인터뷰. 안영신(<지금 서울교육> 편집위원) / 정리. 신병철 / 사진. 이승준

학교가 바라보는 학부모

안영신 오늘은 학부모의 정체성과 교육 주체로서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여러분들은 학부모라고 하면 먼저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이진영 학부모라고 하면 교육의 3주체로 많이 거론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학부모는 선생님을 보조하거나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로 인식되고, 실제로 그런 역할이 주로 주어지죠. 기존의 교육체계나 학교운영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그 체계가 잘 굴러가게 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다고 할까요.

김지연 멋지게 이야기하면 교육의 3주체, 아니면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문제 엄마들? 실제로는 자기 결정권은 없고 선생님의 일을 대신해주는 존재죠.

김재현 아이들을 붙잡아두고 공부시키고, 무조건 하라고 강요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네요. 저는 저 자신이 학부모라는 생각을 크게 하고 있지 않아요. 아이가 반드시 학교에 다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어서인지 ‘내가 꼭 학부모여야 되나?’라는 생각이 있어요. 학년기 아이가 무조건 학생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학부모란 학생의 부모라는 뜻인데, 제가 학부모로 지칭되어야 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김성호 불안한 마음. 그리고 항상 학교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이 안 되니까요. 적극적으로 학교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예 빠져나와서 방관하지도 못하는 존재죠.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주눅이 들어서 학교에 가시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죠.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 없이 학교에서는 재능을 오로지 학업, 공부, 성적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안영신

안영신 교사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나 치맛바람같이 부정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네요. 그러면 왜 학부모가 이런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걸까요?

김지연 큰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학부모로 지내면서, 초기에는 학교에 들어가 여러 역할을 해보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정권을 가진 주체라기보다는 아이들을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은 학교가 이끄는 대로 딸려가고, 저는 뒤에서 밀어주기만 하는 거죠. 이걸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스스로 한계도 느끼고, 그동안 나는 학부모로서 뭘 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어요.

김재현 저는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겠다고 마음먹고 첫째와 둘째를 집 앞에 있는 학교를 두고 멀리 있는 혁신학교에 보냈어요. 그만큼 그 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던 거죠. 아이들을 굳이 멀리 있는 학교에 보냈으니 저도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운영위원회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좌절도 많이 했고, 실망도 컸어요. 예를 들어 소풍을 간다고 하면, “어디로 소풍을 가야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까요?” 하고 묻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모든 걸 이미 다 정해놓고는 여기에 동의하는지만 묻는 식이었어요. 예산도 다 짜놨고, 결산도 끝낸 상태였어요.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지? 도대체 학부모에게 바라는 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한번 참석하려면 직장도 빠져야 하는데, 기껏 휴가까지 내고는 손만 들다가 돌아오는 거죠.

김성호 저도 운영위원회에 들어갔었는데요. 사용하는 언어, 공기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매우 많은 의사결정 권한을 운영위원회에 주기는 했지만,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충분한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어요.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 만한 시간도 제공되지 않았고요. 인사문제 등 다양한 안건이있는데 정보가 차단되어 있으니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거죠.

김지연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100쪽 가까이 되는 서류를 나눠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예상 회의 시간이 30분이었어요. 그래서 이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회의 시간을 30분 더 늘렸는데, 그다음부터는 회의에 안 부르시더라고요. 학부모는 학교의 주체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진영 가정통신문을 보거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떠올려보면 제 역할은 학교에서 아이의 행동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선생님과 아이가 이야기하고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제가 최종 동의를 하는 거죠. 방학이 시작되면 오는 가정통신문을 보면 뭘 하더라도 부모의 허락을 받으라고 쓰여 있어요.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고 싶어도, 저는 아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데 제 확인을 받아야만 조퇴를 할 수 있고요. 이런 구조를 보면서 학생도 학교에서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2년 동안 학부모로 지내면서, 실제로는 결정권을 가진 주체라기보다는 아이들을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은 학교가 이끄는 대로 딸려가고, 저는 뒤에서 밀어주기만 하는 거죠. 김지연

교육 주체로서의 학부모

안영신 헌법 제31조 2항, 민법 제913조, 교육기본법 제13조 1항에 의하면 ‘학부모는 자녀의 발달과 학습의 권리를 1차적으로 보장하는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는 국가에 신탁되어 학교가 조직·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학습권이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 대리자로서 자녀의 학습권이 국가나 제3자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알맞은 교육이 행해질 수 있도록 국가와 제3자(학교포함)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되어 있어요. 권한을 국가, 학교에 위임했다고 되어 있다 보니, 모든 행위에 대해서 동의서를 받아 첨부해야 하는 거죠.

김성호 교육의 영역을 계약법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관계를 법에서는 계약으로 정리하고 있잖아요. 미성년자는 미성숙하다는 이유 등으로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으니까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에 대한 법적 결정권을 부모에게 넘기는 거죠. 그런데 부모는 그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데 권한은 많고요. 한 사람을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계약행위처럼 만들어버리는 접근과 시선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김재현 저는 제가 계약 주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도 알 만큼 다 알고 자기 결정권이 있는데 굳이 부모가 일일이 대신 결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번은 운영위원회를 할 때 학교에서 아이섀도 금지를 교칙에 포함시키는 것 때문에 한참을 실랑이한 적이 있었어요. 무조건 금지할 게 아니라 왜 아이섀도를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고 그걸 안 해도 충분히 예쁘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며 소통하면 될 텐데요. 학교가 아이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꾸 학부모를 끌어들여서 아이들을 규제하려고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진영 교육의 역할은 홀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너는 홀로 설 수 없어! 너는 그런 존재야!”라고 하면서 미리 연습도 못하게 하는 거죠.

김성호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초등학교 2, 3학년만 돼도 스스로 알아서 다 판단하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표현 방식이나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계약법 개념으로 교육 영역에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성년자는 미성숙하다는 이유 등으로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으니까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에 대한 법적 결정권을 부모에게 넘기는 거죠. 김성호

김재현 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에요. 얼마 전에 아이가 가상화폐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새로 사준 스마트폰에 가상화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는 저한테 가상화폐를 사보면 어떻겠냐고 묻는 거예요. 오히려 저보다 정보력이 뛰어나고 제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정말 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걸 받아들일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아직도 아이들을 단순히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죠. 이런 식의 관계를 맺으면서 결국에는 학부모까지 그 계약에 끌어들이게 되는 것 아닐까요.

이진영 한번은 집에 있는 아이가 외출한 저에게 아파서 학원에 못 갈 것 같으니까 학원 선생님께 대신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거예요. 네가 직접 보내지 그러냐고 되물으니 그러면 선생님이 안 믿는대요. 그런 문화와 분위기를 인지한 거죠. 어쨌든 혼자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니 도와달라는 말이었는데, 그땐 제가 감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늘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어떤 배움이 가능하겠냐? 그렇다면 그만 다녀도 될 것 같다고 하니 아이가 괜한 말을 꺼냈다며 한숨을 쉬더군요. 아이들이 어려서 혹은 못 미더워서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어른들에게도, 그 질서를 그대로 따르는 것 같은 아이에게도 역정이 났었던 건데…. 저도 좀 서툴게 말했죠.

안영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학부모총회에 간 적이 있었어요. 연세가 있는 교무부장 선생님이 자기는 왼손잡이도 때려서 오른손잡이로 만든다고 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번쩍 손을 들고 이야기해야 했는데, 혹시나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러지 못했던 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요. 여러분들도 나도 어쩔 수 없는 학부모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김지연 마을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학교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기도 하죠. 아이한테도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선생님께도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이미 학교에 소문이 다 나 있었어요. 담임선생님이 옆에서 지나가기만 해도 신경이 쓰이고, 담임선생님을 인지하는 순간부터는 말도 꼬이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스스로 말이나 행동을 검열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중에 집에 가서 아이한테 가장 먼저 꺼낸 말이 “너 오늘 지각 안 했니?”였어요.

이진영 새 학기가 되면 반장 엄마가 메신저의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요.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단체 채팅방에서 다뤘던 안건 중 인상적인 게 두 가지 있었어요. 평소에는 활발하지 않다가 ‘1학년 동안 모의고사를 몇 번 볼 것인가’ 그리고 ‘수학여행에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빵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는 열띠게 논의하더라고요. 저는 그 두 번 모두 ‘도대체 왜 이런 걸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모의고사나 수학여행 운영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스스로 세우는 학습 계획과 관련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이 문제를 왜 여기서 논의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할 용기를 내지는 못했어요. 혼자만 다른 이야기를 해서 유별난 엄마 취급받을까 봐 눈치를 본 거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선생님과 아이가 이야기하고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제가 최종 동의를 해야 해요.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려고 하면 현재 몸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제확인을 받아야만 조퇴를 할 수 있죠. 이진영

학부모의 역할 고민

안영신 학부모의 역할이 국가-학부모-학교 간의 계약관계 안에서 요구되고 있는데요. 그 테두리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조금 벗어나서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김재현 학부모는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가 아니고, 학교라는 곳도 삶이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데, 꼭 공부나 교육을 시켜야 하는 부모로만 여겨지는 게 답답해요. 예전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 아이의 국어 점수, 수학 점수를 말씀하시면서 학업능력이 떨어진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런 점수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아이가 애들하고 잘 지내는지, 학교생활은 잘하는지가 더 궁금하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저를 이상하게 보시더라고요. 또 한번은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가 공부를 안 시키는 학교라고 주변에 소문이 나서 고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공부를 안 시키려고 일부러 멀리 있는 이 학교에 아이를 보냈는데 왜 그걸로 고민하시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저는 학교라는 공간이 국·영·수 공부를 잘 시키는 곳으로 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를 꼭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고요.

이진영 외부 활동을 하다 보면 귀가가 늦어져서 아이들이 스스로 저녁을 해결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이것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보내는 가족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장 친정엄마나 언니만 해도 왜 아이들을 방치하느냐고 해요. 저는 제 아이만 공부를 잘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사회와 환경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게 결국 제 아이들도 잘 살게 되는 길이라 생각하고 청소년 참정권 청원 운동 등 활동을 하는 건데, 이걸 바라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는 거죠.

김지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도서관 운영을 돕는 학부모 모임에 한 적이 있었어요. 학부모회를 구성해서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면 꼭 몇 반 누구 엄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학부모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단지 도서관 운영을 돕기 위해 왔기 때문에 누구의 엄마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끝까지 누구의 엄마인지 물으셨어요. 저는 여전히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적을 만족시키고 운영을 따라주는 학부모의 역할은 잘할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거나 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옆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어요.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부모 역할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뭘 하고 있는지, 뭐가 힘든지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김재현 어쨌든 학교에 일정 시간 아이를 책임져달라고 부탁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학교라는 공간이 제가 원하는 것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곳이 된다면 어떻게 불려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학부모는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가 아니고, 학교라는 곳도 삶이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데, 꼭 공부나 교육을 시켜야 하는 부모로만 여겨지는 게 답답해요. 국·영·수 성적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봐요. 김재현

이진영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일이에요. 자기가 본 다른 엄마들은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교문에 서서 기다리고 있더래요. 그렇게 학교 앞에 와 있다가 손잡고 집에 가거나 학원 가방으로 바꿔주는 사람. 그게 학교에 오는 엄마의 역할이라는 거예요. 또는 학교 수업이나 행사를 보조하는 사람.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에 대한 아이의 상상력이 딱 거기까지인 거죠. 학교 문화가 학부모의 역할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부모도 그 역할에 자신을 맞춰야만 할 것 같고,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모는 학교랑 점점 멀어지고요.

김성호 교육 주체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백 상태인 것 같아요. 당당한 교육의 주체로 인정되는 것도 굉장히 힘들고 중요했던 것만큼 그 역할과 권한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앞으로 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오늘 말씀들을 듣고 나니까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이 더욱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안영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주인공 덕선이가 공부를 못해서 부모님이 주눅이 들어 학교에 가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 부모님들이 바로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가장 큰 관심사는 학업이고 학교에서는 모든 재능을 성적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학교 안에서의 정체성은 학생이지만, 밖에서는 시민, 주권자로서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다양한 정체성과 재능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에게 기대하는 역할도 딱 거기까지인 거죠. 누구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이를 잘 돌보고 길러내는 당당한 주체가 되도록 우리가 먼저 지금의 틀을 깨나가도록 해요. 그런 면에서 이 코너의 이름도 ‘학부모들의 수다’가 아니라 ‘부모의 수다’가 돼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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