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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 읽어야 할 책

김구, <백범일지>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다. 역사로부터 추론하지 않은 현실 진단은 허상이다. 인류 역사상 최장기 집회를 이어가는 수요위안부 항의시위와 터무니없는 위안부 한일합의를 눈앞의 이해관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민족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어떤 역사서를 통해 오늘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글. 오지연 주무관(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

오늘을 이해하는 어제의 기록

일제에 짓밟힌 역사는 1592년 임진년부터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순신은 1591년 2월 13일 전라좌수사에 제수됐다. 임진왜란을 1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누군가가 조선을 위해 운명처럼 준비했던 것일까?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전달인 1598년 10월 7일까지 날마다 적은 기록, <난중일기>를 남겼다.

1876년은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으로 일제 침략이 시작된 해다. 1948년, 해방됐으나 남북이 분단되고 각각 정부가 수립된 해다. 이 기간 민족은 참혹한 고통을 겪었고 개개인들도 시대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안락을 좇아 일제의 주구가 된 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간난고초(艱難苦楚)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 민족 앞에 당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1876년 8월 29일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우리에겐 민족 고난 시대의 상징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 표상이며 민족의 자부심인 김구가 있었다. 그의 지극한 아픔과 진정이 담긴 기록이 <백범일지>다. <백범일지>는 날마다 적은 일기가 아니다. 백범이 1929년과 1942년에 각각 상·하로 탈고한 숨겨진 기록이라는 의미의 일지다.

2017년 5월 10일 새 정부가 시작됐다. 적폐를 청산하며 역사왜곡을 극복하고 나라다운 나라 세우기를 소망한 촛불혁명의 결과다. 2019년은 3·1운동 발발 100주년이고 건국 100주년의 해이다. <백범일지> 마지막에 그는 절절하게 ‘나의 소원’을 말하고 있다. 첫째로 ‘완전한 자주독립 민족국 ,’ 둘째는 ‘독재 없는 민주국가 ,’ 셋째가 ‘따뜻한 문화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였다.

백범일지의 가치

정조가 승하하고 시작된 조선의 19세기는 나라가 망해가는 시간이었다. 탐관오리들의 학정은 극으로 치달았고 민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희망을 찾기 어려웠다. 정한론으로 무장한 일제는 1876년 드디어 일방적 조약을 강요하며 침략의 서막을 올렸다. 그해 김구는 이 땅에서 태어났다.

그도 10대를 거치며 기존 유교 질서 속에서 입신을 추구했다. 양반이 아닌 그에게는 바람을 잡으려는 손처럼 허망할 뿐이었다. 매관매직이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오히려 그 시절에 키워진 기득권에 굴하지 않는 당당함과 기존 질서에 대한 변혁의 저항정신은 그의 미래에 펼쳐질 운명과 겹쳐 있었다.

타락한 학정은 조선에 새로운 종교를 낳았다. 동학이었다. 사회질서는 필연적으로 변혁된다는 후천개벽(後天開闢)과 누구나 천주를 마음에 모시면 군자가 된다는 만민평등을 주장했다. 1894년 동학과 농민은 혁명으로 일어나 집강소를 통해 민주주의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황해도 동학 접주로 활동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다음해 조선 침략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조선의 왕비를 궁궐에서 시해하고 시체를 불태웠다. 위정척사도, 개화사상도, 동학사상도 왜침을 막지 못했다. 그는 대동강 하류 황해도 치아포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 일인을 살해했고, 사형수가 됐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지배층은 부패한 사익 추구로 썩어갔고, 국가 흥망에 대한 민중의 절실한 각오는 적었다. 애국 사상 고취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그는 황해도 교육 사업에 중요 인물이 되어 힘썼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구식 양반들이여 깨어라! 상놈들도 깨어라!”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황해도 동향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주감옥에 갇혔다. 1910년 8월 29일 결국 나라를 강제로 일제에 빼앗겼다. 국내외를 망라한 정치적 비밀결사가 조직됐다. 광복전쟁을 꿈꾸는 신민회였다. 그도 참여했다.

일제는 곧바로 한국 통치를 방해할 부담스러운 존재로 기독교인을 지목하고 안악사건, 105인사건을 조작했다. 세 번째 투옥이었다. 그리고 1911년 9월, 결국 17년 형을 받았다. 고통은 컸으나 절망은 없었다. 현실과 타협해 변절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름은 아홉 구 자로, 호는 백범으로 고쳤다.

독립은 선언에서 시작한다. 미국이 독립한 것은 13개 식민지 대표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결의하고 선언한 1776년 7월 4일이다. 한민족도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했다. 전국이 만세로 들끓었다. 김구가 상하이에 도착한 4월 13일, 그날은 민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날이었다.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으로 시작했다. 민국 5년에 내무총장이 됐다. 민국 9년 국무령이 됐으나 정부의 이름마저 유지하기 어려웠다. 청사 임대료도 지불하지 못할 정도였다. 일제는 ‘만보산사건’을 조작해 한중 두 민족의 감정을 악화시켰다. 어렵고 절박한 상황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1931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가 도쿄에서 일왕에게 던진 폭탄과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제 침략자들에게 던진 폭탄은 침체된 독립운동에 새로운 기폭제가 됐다. 쾌거였다.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 정부와 중국인의 감정이 좋아졌으며 국내외 동포들의 믿음이 확실해지고 재정도 늘어났다.

그는 임시정부의 주석이 됐고 충칭에서 광복군을 창설했다. 미군과 국내 침공 합동 비밀훈련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의 항복으로 참전 준비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1945년 11월 23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으나 국내 동포들은 임시정부 환영이라는 문구로 열렬하게 맞이했다. 27년 만의 환국이었다.

서울시교육청 정문에서 조금만 가면 경교장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비극적 죽음과 한민족의 새로운 고난, 굴절된 역사왜곡이 시작된 장소다. 현행 헌법 전문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로 그가 끝까지 지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받들고 있다.

책은 그 시대의 불의와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성경을 민족어로 직접 보급하면서 탄생했다. 한민족에게 가해진 지난한 건국 100년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나라를 향한 비약의 100년을 위해서는 역사를 온전히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은 늦더라도 청산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낳은 어제를 돌아보고 미래를 낳은 오늘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책을 선택해야 한다면 가장 앞자리에 서야 할 책이 <백범일지>다.

<백범일지>

김구 저 | 배경식 풀고 보탬 | 너머북스 펴냄

<백범일지> 텍스트를 분석하고 인간 백범에 관해 새롭게 정리하며 그의 다양한 모습을 수록한 이 책은 작가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에서 새로 만든 <백범일지>를 올바르게 풀어 썼다. 새로 쓴 <백범일지>는 원문에 최대한 가까운 번역과 역사학자의 해석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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