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1001가지 천일의 꿈

글. 김선자 교장선생님(서울천일초등학교)

학교 담장을 가득 채운 담쟁이 넝쿨이 붉은빛 옷을 갈아입기 위한 채비를 하던 지난가을, 교장공모제를 통해 천일 가족과 만나게 됐다. 첫 출근길, 교문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는 설렘과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슈바이처 박사는 성공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며 오히려 행복이 성공의 조건이라 여겼다고 한다. 나 또한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첫 대면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저는 선생님들의 꿈을 응원하는 교장이 되고자 합니다. 교사가 꿈을 꿀 때 학생들도 함께 꿈꾸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꾸는 선생님, 행복한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우리 천일 아이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 자신의 꿈과 건강, 그리고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힘껏 지원하는 교장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학교장의 일과는 생각보다 분주했다. 30년 넘은 낡은 학교 시설, 위험한 통학로, 교육 격차, 지속적인 학급수 감소 등 누가 봐도 초임교장의 역량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는 천일 가족의 애정 어린 목소리를 듣고 나니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가을단기방학을 보내고 돌아오니 학교 혁신과 관련한 공모사업 공문이 접수되어 있었다. 학교운영과 교육과정, 수업, 그리고 교육공동체 문화의 혁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적 변화를 도모할 기회였다. 그렇기에 우리 천일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연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고민이 됐다.

고맙게도 선생님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적극적이었다. 업무분장을 혁신해서 선생님들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어떤 멋진 선생님이 하는 말. “교장선생님! 만약 이번 공모학교에 지정되지 않더라도 업무분장을 이대로 운영하실 건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공모학교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오랜 관행이 있다면 바로잡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업무 대신 수업에 집중하면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야말로 교육 혁신의 본질이라는 생각에서다. 지금 하는 ‘책 읽기와 중간놀이 시간’, 두 가지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견을 비치니 여러 선생님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투표를 위해 다시 모였다. 놀랍게도 79%의 교사가 찬성했다. 우리는 찰떡파이를 나누며 찰떡같이 붙자고 다짐했다. 회의실을 나서자 선생님 몇 분이 쪼르르 뒤따라 나오며 “교장선생님, 축하 파티 안 하나요?”라고 물었다. “좋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정도는 먹어줘야겠지요?” , “그럽시다. 모두가 먹고 싶어 하는 그 아이스크림처럼 모두가 오고 싶은 학교를 한번 만들어봅시다. 아주 멋지게!” 해맑게 웃는 선생님들의 얼굴이 정말 예뻤다. 초임교장을 믿어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방학을 앞둔 12월, 행정실장님이 상기되어 들어온다. “교장선생님,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신청한 예산을 준다는 공문이 왔습니다.” 그저 감사했다.

행복은 현재에 존재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과거에 존재했던 고마움을 ‘기억’하며, 미래에 다가올 기쁨을 ‘기대'하는 마음 상태라고 했던가. 일과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며 문득 뒤돌아보니 학교 담장 가득한 담쟁이 넝쿨 위로 흰 눈이 흩날린다. 푸르고 붉은빛으로, 때로는 흰 눈을 맞으며 사계절을 견디는 담쟁이 넝쿨처럼 우리 천일 가족도 1001가지 즐거운 이야기를 담아 제각기 아름다운 빛깔로 꿈을 빚어내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겠지. 서두르지 않고 서로를 지탱하며 말없이 벽을 오르는 담쟁이 넝쿨이 결국 높은 벽을 넘어서듯 우리 천일도 그렇게 ‘모두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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